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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올 크리스마스 선물은 못 들어준다

by 일본의 케이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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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이 점점 빨리지는 깨달음이 오늘도

나보다 일찍 들어 와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한 눈에

들어왔고 깨달음은 나를 처다보지도 않은 채

[ 어서 들어 와]라고 건성으로 말을 걸고는

 트리 장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교회를 다닌지 2년이 다 되어가는 깨달음이지만

크리스마스는 예수사마의 생일날일뿐

그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지 않은 채 여느

 일본인들이 그렇듯, 케익을 사서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를 축제의 날로 즐긴다 생각하고 있다.

마치 발렌타인이나 할로인처럼... 

옷을 갈아입고 다가가자 12월 1일날 했어야하는데

좀 늦은 것 같다며 큰 루돌프 사슴을 두마리

사서 폼나게 장식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했다.  

 


조명이 워낙 긴 것이여서 몇 번을 둘러 감고서야

장식이 끝났다. 

[ 거실 불 꺼 봐 ]

[ 조명 패턴이 7가지인데 다 분위기가 달라서 좋아, 

지금 이게 은은하고 좋지? ]

[응, 좋아 ]

[ 캐롤송도 좀 틀어 줘 봐 ]

[ 알았어 ]

캐롤에 맞춰 깨달음은 어깨를 한 번 흔들다가

조명을 만졌다가를 몇 번 하더니 베란다 야경을

물그러미 보기도 하고 생각에 빠진 얼굴을 했다.

[ 깨달음, 크리스마스 선물은 뭐가 좋아? ]

[ 갖고 싶은 거 없어 ]

[ 나는 있는데? ]

[ 뭐? ]

[ 손지갑, 지난번에 봤던 거..]

[ 알았어, 사 줄게 ] 


자기도 실은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는데

현실 불가능한 것이여서 포기했단다.

[ 뭔데? ]

[ 어머님 집에 가고 싶어] 

[ ................................ ]

현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상당히 무리한

선물요청이여서 된다, 안된다는 대답을 못해줬다.

[ 가서 뭐 하고 싶은데? ]

 [ 그냥,,쉬고 싶어..어머님 집에서..뒹굴뒹굴,

근처에 있는 만두가게에도 가고, 시장도 가고

무등산 근처 식당도 가고, 꼬막이랑 홍어도 먹고,]

[ 먹는 거 뿐이네..그리고 여기서도 충분히

 당신 뒹굴뒹굴 하고 있거든 ]

[ 아니야,,어머님 집에서는 내 맘대로 하는데

여기서는 당신이 눈치 주잖아,,]

[ .............................. ]

(엄마집에서 깨달음 모습)


하긴, 엄마집에만 가면 따끈따끈한 거실에서 

깨달음 전용?쿠션을 들고 다니면서 

여기서 뒹굴, 저기서 뒹굴거렸고 그러고 있는

깨달음을 우리 엄마는 이쁘다, 잘 한다,더 쉬어라, 

하면서 맛있는 것을 계속해서 내 주셨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서는

한 손엔 과일, 한 손엔 리모콘을 잡고 

티브이 프로를 돌려가며 봤으니 깨달음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였을 것이다. 

[ 내가 그렇게 눈치 줬어? ]

[ 아니,,꼭 눈치라기 보다는 어머님 집처럼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안 난다는 거지..그리고

 우리 거실은 넓지도 않아서 뒹굴거리기가

좀 불편하다는 거야,, 아, 내년 설날에 

가족들 모이지 않을까? ]

[ 못 모이지..코로나 때문에...]

[ 그러겠구나.]


설날에 모여서 조카들에게 세배도 받고

용돈도 주고 그랬던 지난 기억들이 떠오른다며

이렇게 자유롭게 오갈 수 없다는 걸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아서인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리움이 더해간단다.

[ 우리가 언제 설날에 맞춰 갔었지? ]

[ 벌써 5년전이야,,]

[ 그렇구나,,한 2년 된 것 같은데..]

[ 누가 들으면 당신이 한국사람인 줄 알겠어,

나는 마음을 비웠어.그니까 당신도 비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 그리움이 짙어가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고, 새해를 곧 맞이할텐데

한국에 한 번 가야되지 않을까하고 머릿속으로 

늘 생각하고 있었다. 1월엔 엄마생신, 2월엔 

아빠 제사가 있어서 스케쥴을 조율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https://keijapan.tistory.com/643

(한국 설날을 직접 체험한 남편의 반응)


한국에 매년 두번씩, 때론 세번,네번을 다녀왔었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갈 때마다 아쉬움만 남긴 채 다음을 기약했는데

지금은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이 되고 말았다.

온 가족이 모여서 한솥밥을 먹고 특별한 얘기가 아닌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을 얘기하며 웃고 울었던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이곳에서 아무리 한국식으로

 음식을 해 먹어도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허허로움은 메워지지 않았다. 


[ 못 간다고 하니까 더 가고 싶어..]

[ 알아,,나도 그래..]

[ 나는 일본인이니까 관광비자로밖에 못 가는데

관광은 입국이 지금 안 되잖아,,]

[ 그러긴 한데 당신은 내 배우자입장으로 

들어갈 수는 있는데 2주간 격리 되어야 돼..]

[ 난,,회사를 2주간 못 비우잖아,,]

[ 깨달음,,그래서 못 가는 이유이기도 해..]

[ 어떡해...]

이게 현실이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재확인 할 때마다 깨달음은 풀이 죽는다.

지금이라도 당장 한국에 가려고 

무리를 한다면 못 갈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런 한국행이 우리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기에 모두가

코로나 걱정없이 편히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보니

 작년에는 크리스마스를 엄마집에서 보냈다.

그래서도 깨달음이 더 한국에 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 

https://keijapan.tistory.com/1332

(우리가 더 미안해요. 엄마)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경치좋은 곳에 찾아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그런  

일상들이 이제와 생각해보니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시간이였는지 모르겠다.

내년 구정에 맞춰 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멋지게 해주고 싶은데 

2021년, 2월이면 코로나로부터 우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그러기엔 왠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다.  

올 크리스마스 선물은 깨달음이 원하는 걸

해줄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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