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에 들어서자 오늘 산 책들을 나에게 보여주셨다.
디자인, 사진, 브랜드 창시에 관련된 책들이였다.
음료를 주문하려고 하자, 배고프니까 그냥
밥을 먹으로 가자고 한다.
그렇게 나와 근처에 있는 우동집에 들어섰다.
난 간단한 우동과 덴뿌라, 이 언니는 맥주도 한 잔 주문했다.
한 입 마시더니 나보고도 한 모금하라고 권했다.
아니라고, 오후에 할 일이 많아서 사양을 하고
식사를 하며 덴뿌라를 바싹하게 튀기는 방법들을
얘기하며 식사를 마치고
우린 우리 집으로 향했다.
오늘 함께 미팅해야할 자료들이 우리집에 있는 것과
이 언니가 꼭 우리집에서 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어서였다.
이번에 해야할 일들을 조금 설명하고,
먼저 조사할 사항들, 홈피와 함께 팜플렛 내용들도 체크를하고
연령층과 회사측의 요구사항들에 대해 얘기했을 때였다.
[ 니네 남편은 안 그러지?]
[ 우리남편은 니네 남편하고는 많이 다르다..
처음엔 안 그랬는데 점점 살아보니까 그 사람의
사고방식, 사상, 이념,,그런 것들이 보이더라...]
[ .......................... ]
느닷없는 화제전환에 좀 멍해 언니를 바라봤는데
언니는 팜플렛의 같은 페이지에 시선을 고정한채
독백하듯 얘기들을 풀어냈다.
[ 그 사람 가슴속엔 [조센징]이 있어....
우리들 한국사람들 가슴속에 [쪽빠리][ 일본놈]이 있듯이
그 사람에게도 그게 있는 것 같애.....
그래서 은연중에 무심히 그런 말이 나오나 봐.... ]
그리고 워낙에 귀가 얇은 사람이다보니 누가 뭐라고 하면
금방 그 쪽으로 휩싸이는 타입이라 그래서 더 그런것 같애.....]
너무 갑작스러운 내용이였고,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아니 팜플렛에 적힌 내용를 읽듯
내 쪽을 일부러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 요즘, 뉴스를 봐도, 인터넷을 봐도
한국, 중국 비판하는 내용밖에 없잖아.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도 이 사람을
더 그렇게 만든게 아닌가 싶어..]
말을 끓을 기회를 놓친 난 그냥 조용히 언니의 얘기를 듣기로 했다.
[ 내가 그렇듯, 어쩔수 없나봐,,, 어릴적부터 받아온 교육도 그렇고,
알게 모르게 주입된 일본인에 대한 인식들이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듯이
애 아빠도 그런게 분명히 있어...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 내가 살아보니 역시 한일커플은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아,,
특히, 요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인을 깔아뭉게는 식의 어투나 뉘양스가 많이 늘었어....
지친다..지쳐,,,니네 남편은 안 그러지?] 라며
고개를 든 언니의 눈에
눈물에 맺혀 있었다.
협회에서 알게 된 50대 초반의 언니이다.
일본에 온 지는 20년,,..
딸은 런던에 유학을 보낸 상태이고
남편분은 모 대기업의 중역을 맡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패션 디자인쪽 일을 하셨다는 점에서
나와는 얘기할 기회가 좀 많았지만
별로 말 수가 없으시고 협회 일도 아주 착실히 잘 하셔서
좋은 성품을 가지신 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렇게 가슴에 큰 고민을 담고 계실거라 생각지 못했다.
남편분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더냐고 일부러 묻지 않았다.
듣지 않아도 어떤식의 불쾌감과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언니의 눈빛과 눈물로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냉장고에서 차가운 캔맥주를 하나 꺼내 드리며
그냥 내 이야기를 했다.
배우자에게 듣는 내 나라에 대한 비판및 평가는
예민할 수밖에 없더라고
특히,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수성을 갖고 있어서
얼핏 잘못 말이 헛나가게 되거나 실수를 하면
괜시히 불쾌감이 더해지더라고
우리 부부도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로가 예민할 때가 있었고
작년, 세월호 사건 이후부터는
왠지 내가 봐도 한국이 잘못한 것들에 대해
깨서방이 쓴소리를 하면 불끈 올라오는 게 있어
그럴때마다 때려도 내가 때리고
욕을 해도 내가 할테니까 당신은 신경 쓰지 말라고
그냥 조용히 지켜봐 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는 얘기,,,
언니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캔맥주를 따서 한모금했다.
하지만, 언니가 이렇게 가슴앓이를 할 정도면
남편분에게 그 정도, 불쾌감과 모욕감의 정도를
확실히 알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언니를 보내고 책을 펴놓은 상태로 괜시리 생각에 잠겼다.
모든 한일커플들이 가슴 속에 묻어둔
아니, 굳이 손대려하지 않은 민감한 부분이기에
서로가 조심스러워하고, 암묵의 룰처럼
터치를 하지 않으려할 뿐이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상대나라에 대한 예의라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려고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역시 지금 4년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은연중에 서로의 나라를 비교하고
비판하고 무시하고 그랬던 적이 많았다.
크게 의식하지 않고 뱉어냈던 말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아마도 다른 한일커플들도 그들만이 갖고 있는
묘한 감정들이 섞여있음을 모두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어느정도 눈을 감거나 귀를 막아야할 때도 있다.
참,, 쉬운듯,,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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