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상에게
과연 소포가 무사히 잘 도착했을까?
웬 소포인가 싶겠는데 나는 지금 아버지 고향인
쿠마모토(熊本)에 와 있어.
왜 갑자기 왔냐면 아버지가 다음 달에
갑상선암으로 입원을 하게 됐는데 병원
들어가기 전에 고향에 한 번 가고 싶다고 그래서
회사에 연차 내고 왔지.
쿠마모토는 알다시피 말고기가 유명해서 조금
보냈는데 정 상 입에 맞을지 약간 걱정이 되지만
정 상은 요리를 잘하니까 어떻게든
만들어 먹을 거라 믿을 게.
올 해로 85살이 된 아버지는 이제
눈도 어둡고, 귀도 보청기 없이는
대화가 힘든 상태이지만 난 하나도
고생스럽게 생각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렇게 아버지가 나를 의지해 줘서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하루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절벽끝으로 내몰리는 것 같아서
두렵기도 하고 슬퍼지는데
이렇게 고향에 모시고 온 내 자신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칭찬해 주고 싶어
이런 딸이 어딨겠어, 그렇지?
정 상이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내게 했던 말들이 요즘은
새록새록 떠올라서 혹시 내게도
아버지와의 이별이 갑작스레 찾아온다면
어떻게 보내드릴 수 있을까 벌써부터
염려가 되네..그래도 잘 해내겠지?
난,, 아버지한테 받은 만큼 다 돌려줄 때까지만
살아계셨으면 좋겠어. 남자 혼자서 딸 키우느라
고생하셨으니까 내가 그걸 보답해 드리고 싶어.
그때까지 기다려 주시겠지?
20살까지 키워준 것도 고마운데 어른이 돼서도
내가 신경 쓰이게 많이 했거든,,
너무 많은 희생을 해왔어. 싫은 내색 없이.
아버지만큼은 못하겠지만 살아계시는 동안
꼭 갚아드리고 싶어. 다 갚아드려야 돼.
욕심 같아선 배로 돌려드리고 싶어.
내 가슴이 슬픔과 눈물로 물드는 걸 아버지도
바라지 않을 테니까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줄 때까지 기다려주시겠지?
아버지 재우고 술을 한 잔 했더니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말이 두서가 없네, 취했나 봐..
아무튼, 별 거 아니지만 맛있게 먹어주고
혹시나 입에 안 맞으면 친구나
이웃에서 줘도 돼. 알았지?
미치코 (美智子)의 편지 끝엔 아버지 수술이
잘 되면 삼겹살 먹으로 코리아타운에
가자는 문장이었다.
아버지께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미치코,
아버지가 다 갚을 때까지 기다려줄 거라
믿고 싶은 미치코, 세상에 단 둘뿐여서
홀로 남는 게 두렵다는 미치코.
부모님이 일찍 이혼을 하고 5살 때부터
아빠와 단 둘이서 성장하면서 단 한 번도
엄마를 찾지 않았고 지금도 보고 싶지 않다는
미치코의 효도스타일에 많은 생각이 들았다.
일본인이 끊임없이 저축을 하는 이유
거실 노트북 위에 6만엔이 놓여있었다. 2만5천엔은 여행경비로 우리가 매달 적립하는 돈인데 나머지는 무슨 뜻인지 몰라 샤워하고 나온 깨달음에게 물었다. [ 이거 뭐야? ] [ 지난번에 외식할 때
keijapan.tistory.com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건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더 사랑을 받으려 갈구했으며
내 욕심만큼 받지 못한 걸 분하고 억울해 왔던
나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단순히 나는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는
단편적인 생각을 해왔는데
부모에게 받은 건 사랑이든, 물질이든
돌려줘야 한다는 발상이 있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른 점
[ 어느 누구도 말리려고 하지 않았어.자기 눈앞에서 사시미 칼을 들고왔다 갔다 하는데 그냥 남의 일처럼보고만 있었던 거야, 세 명이나 찌르고나서도 또 찌르려고 주변을 서성였다는데그걸
keijapan.tistory.com
그게 천륜에서 오는 사랑일지라도
돌려주고, 갚아야 한다는 사고를 갖는 게
일본적인가 싶기도 하고 가족간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전혀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상의 사랑 (無償の愛)을
돌려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
미치코의 편지는 내가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 마음자세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無償の愛)
'도쿄역에서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톡 속에 숨겨둔 사랑 (0) | 2025.05.28 |
---|---|
장례식장에서 다짐을 했다 (0) | 2025.03.26 |
당연하지, 난 한국인이니까 (0) | 2025.03.12 |
하네다공항 도착로비에서-1 (0) | 2025.02.27 |
신주쿠에 부는 북풍을 맞으며 (0) | 2025.02.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