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곳곳에 닌자가 나타난 걸 보면
분명 시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인데도
밖은 자꾸워 어두워지려고 하고 있었다.
[ 닌자 캐릭터 봤어? ]
[ 응, 닌자처럼 빨리 빨리 가야 되는데
내 생각이 그런지 이 전철이 늦게 달리는 것 같애]
[ 아니야,,괜찮아, 어쩔 수 없지..]
아침 8시 신칸센을 타고 교토에 도착을 한 뒤
바로 미팅이 있었다.
점심무렵이면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근처 호텔 시찰이 예정에 없던 곳까지
하다보니 완전히 스케쥴이 뒤로 밀렸고
교토에서 시댁까지 가는 교통이 은근 불편해서
아쉬운 시간들이 더 흘러가 버렸다.
요양원에 도착하자 역시나 문이 닫혀있었고
옆에 적힌 비상연락처로 전화를 드리자
안에 계신 분이 얼른 문을 열어주셨다.
인사를 드리고 갔는데 아버님 방에 침대가
한개 뿐이였고 어머님과 방을 따로
쓰고 있다고 하셨다.
[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
[ 아니..어머니가 추위를 많이 타잖니..
에어컨 바람이 싫다고 해서,나는 더위를 못참고.]
[ 언제부터요? ]
[ 한달쯤 됐어...]
아버님이 가르쳐준 호실로 가봤더니
어머니가 혼자 우두커니 앉아 계시다가
우릴 보고 활짝 웃으신다.
[ 왜 혼자, 계시게 되셨어요?
테레비도 없고,,,아무것도 없는데..]
[ 응,,저 방은 너무 추워서 내가
잠을 못 자겠길래 방을 따로 쓰기로 했단다.
잠만 따로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저 방에 가서 같이 테레비도 보고 그래.
잠만 따로 잘 뿐이야,,걱정 말아라 ]
깨달음이 아버님 방으로 가자며 쇼핑수레를
조심히 밀어드리려고 하자 괜찮다고
혼자 하신단다.
아버님 방에 들어가서도 어머님은 침대쪽이 아닌
옷장쪽에서 에어컨 바람을 피하려 자리하셨고
깨달음은 두분의 거리감이 낯설어선지 번갈아
두분을 보기만 할 뿐 뭐라고 말을 걸지 못했다.
[ 아버님, 어머님, 두 분 좋아하시는
장어구이 사왔어요. 저희가 좀 빨리 왔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따끈할 때 한 입
드셔보실래요? ]
도시락을 얼른 꺼내 어머님 아버님께 드렸는데
어머님은 안 드신다고 하고, 아버님은
조금 드신다고 해서 얼른 보조 의자로
테이블을 만들어 드렸다.
[ 진짜, 맛있다~케이짱이 사오는
장어구이는 진짜 맛있어...]
아버님은 맛있게 드시는 데 어머님은
자꾸만 쉐타의 옷깃을 여미셨다.
[ 따로 지내니까 외롭지 않으셔? ]
깨달음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 외롭기는,아침부터 같이 있다가 잠만 따로 잘 뿐인데]
[ 나는 추워서 이 방에 못 있겠어...
그래서 아직도 겨울 옷 입고 있잖니...
니기 아버지는 더위를 많이 타서
에어컨 없이는 못사니까....]
[ 그 외에 불편하신 거 없으세요? ]
[ 응,,,역시...식사내용이 부실해...]
어머님이 지난번에 하셨던 말씀을 또 하셨다.
[ 그렇지 않아도 그거 해결하려고 상담을 했는데
두분만 특별식처럼 원하는 음식을 해드릴 수
없다고 했어..다른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 알아,,,그래서 너희들이 2주에 한번씩
간식이며 과일이며 보내주잖아,,
그걸로 충분하단다...]
깨달음은 서방님과 했던 얘기들을
차분히 설명을 해드렸고
벽시계가 막 8시를 막 넘기고 있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 아버님, 어머님, 내일 또 올게요.
오늘은 이만 가야 될 것 같아요..]
[ 응,,그래..내일 또 보자구나,,]
깨달음이 지갑에서 1만엔씩 꺼내 두분께
드려려고 하자, 싫다고 하신다.
[ 아버님, 만엔은 받으셔도 돼요.
백만엔도 아니고 만엔이에요, 만엔! ]
[ 여기 있으면 돈이 필요 없다고 했잖니..]
[ 알아요, 그래도 밑에 1층 자판기에서
드시고 싶은 거 참지 말고 사 드시라고
드리는 거에요. ]
[ 오느라 차비 들었는데 돈까지 받으면 안돼 ]
[ 아니라니깐요. 출장차 오다가 들린거니까
돈 안들었어요. 그리고 아버님,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워주셨잖아요,
그니까 받으셔도 아무 문제 없어요.
당당하게 돈 좀 주라 하셔도 괜찮아요]
[ 안돼..그건 안 돼지... ]
안 받으시면 내일 안 들리고 가겠다고 내가
선포를 하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받으셨다.
어머님은 받으시고 당신 방으로 가시겠다고
일어나셨다.
깨달음이 문을 열어드렸고, 우린 두분께 다시
인사를 드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두분이 정말 각방을 쓰실지 몰랐다고 하자
내가 제주도에 있는 동안, 깨달음이 출장 왔다가
잠깐 들렸을 때 서방님도 오셨는데
어머님이 돈이 없어졌다고
돈을 훔친 게 아버님이라고 몰고 가셨고
가만히 있다가 도둑놈 취급을 받은 아버님이
기분이 나빠 같이 못 산다고 다투셨는데
결국 이렇게 따로 각방을 쓰게 된 거라고 했다.
지난주에는 서방님께 어머님이 전화를 해서
모든 통장에 있는 돈을 찾아 오라고
당신 돈이 어딨는지 모르겠다면서
횡설수설 하셨단다.
[ 아까 아버지는 안 받으려고 괜찮다고
계속 사양하셨는데 엄마는 얼른 받아서
옷 속에 넣고 보자기로 싸고 그랬잖아,,]
[ 아,,그랬지...]
[ 근데,대화하시는 것을 보면 전혀 치매 증상을
못느꼈어.우리 아빠가 치매여서 내가 잘 아는데...
전혀 치매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
조리있게 말씀하시고,,기억력이 생생하셨잖아,
2주마다 우리가 보낸 것들도 다 기억하시고,,]
[ 아니야,,, 돈에 집착하고, 돈이 없어졌다고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초기에 들어왔어..
24시간 요양원에서 식사 때와 운동시간
외에는 앉아서 테레비만 보시니
멀쩡한 사람도 치매가 오게 생겼어.. ]
우린 잠시 말을 잃고 차만 마시다가 먼저
내가 물었다.
[ 혹시,,당신,,두분 모시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나한테 솔직히 말해도 괜찮아,,
모시겠다고 확실히 말은 못하겠지만
일단 당신이랑 생각해 볼 수 있으니까..]
[ 그런 마음은 전혀 없어,, 모신다고 해도
절대로 도쿄에 오실분도 아니고,,,
평생 사신 곳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고
자식들에게 신세 안 지려고 애쓰시는
분이잖아,,아까 만엔도 억지로 받으셨고,,
혹, 두분중에 먼저 누가 돌아가셔도 지금의
요양원 생활은 계속될 거야,,,]
깨달음은 본인 부모님의 얘기여도 아주
냉냉하고 담담하게 말을 했다.
그게 현실이고, 그 외에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서...
[ 그럼, 우리가 뭘 해드려야 될까? ]
[ 돌아가실 때까지 드시고 싶은 거,
맛있는 거 드실 수 있게 많이 보내드리고
사다 드리는 것 밖에 없지...]
[ 그러네...]
친정엄마에게도 우린 엄마가 좋아하는
과자나 사탕을 보내는 것밖에 못해드리고 있다.
노부모에게 자식으로서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같이 살거나, 가까이 살면서
자주 살피고 얼굴 보여드리며 돌보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린 실천하지 못하고 외면한 채
이렇게 안타까워만 하고 있다.
두분을 모실 수도 없고, 아니 모시지도 못할 거면서
괜히 착한 며느리 흉내를 내보려고 했던
난 참 못나고 못된 며느리다.
죄송합니다..아버님,,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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