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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블로그 권태기에 서 있는 우리 부부

by 일본의 케이 2019.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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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나서자마자 깨달음은 점심으로 피자를 

먹자고 했다. 며칠전부터 먹고 싶었다며..

집 근처 이탈리안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서는 각자 방에서 옷정리를 했다.

화창한 봄기운이 가득한 이곳은 연일

 20도를 맴돌고 있다.


속옷부터 와이셔츠, 양복, 그리고 평상복까지

모두 봄, 여름 옷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깨달음은 낮잠을 잘 거라

내게 한마디 하고는 자기 방문을 닫았다.  

난 거실에서 블로그의 글쓰기 화면을 열어둔 채

 한참을 그냥 멍하게 있었다.

특별히 쓸 내용도 없고, 사진 정리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한 것도 아닌데 

좀처럼 글이 써지질 않았다.


그렇게 두어시간쯤 지났을까 가벼운 노크소리와 함께

빼꼼히 고개를 내민 깨달음이 거실에 노트북이

 켜져 있는 상태인데 알고 있냐고 물었다.

[ 아,,그래..내가 정신이 없네..]

[ 블로그는 다 썼어? ]

[ 아니...쓸 게 없어서...]

[ 그럼 안 쓰면 되잖아,,]

[ 근데..매일 기다리시는 분들이

꽤 많아서 써야 되는데 잘 안 되네..

아무래도 나 블로그 권태기 온 것 같애 ]

[ 권태기? ]

올 해 들어서 난 블로그 권태기에 빠졌다.

글을 쓰는 목적, 이유가 자꾸만 불투명해지고

식상해졌음을 내 스스로가 느끼고 있었다.

반복된 일상을 적어나가는 것에 싫증이 

난 것도 있고 그렇다고 새로운 소재를 

찾는 것도 지금의 생활에서는

어려운 일이고 이래저래 자꾸만 글 쓰는

시간을 멀리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 그럼, 다른 걸 해 봐, 유튜브 같은거..]

[ 유튜브,,하면 재밌겠지만 뭘 올리냐?

당신이랑 내가 뭐 할게 없잖아 ]

[ 그건 그러네...]

깨달음도 말해 놓고는 암담했는지 혼자

검색을 열심히 하다가 먹방이나 노래, 

이색장기, 마술, 동물들도 인기가 있는 것 

같다면서 우리 부부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가

자기가 한국음식 먹는 걸 하면 어떻겠냐고 한다.

[ 안돼..당신이 먹방 할 만큼 엄청난 양을

 먹는 사람이 아니잖아 ]

[ 그렇지..그럼,,한국말 배우는 거 할까? ]

[ 그런 테마도 한일커플들이 이미 다 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

그렇게 우린 정말 유튜버가 될 것처럼

뭐가 재밌을까 무슨 테마가 흥미로운지

쓸데없는 얘기들을 했다.

[ 일본에 있는 이자카야를 돌아다니면서

술이랑 안주를 소개하는 것도 재밌겠다,

옛 일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을

탐방하는 것도 좋고,,]

[ 우리가 한일커플이니까 힌일커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재밌어 할거야 ]

[ 그럼,역시 먹방인데 내가 많이 못 먹고,

 그렇다고 매운 것을 잘 먹는 것도 아니고,,

아, 당신이 한국어를 광주 사투리로 알려줘,

그럼 내가 그대로 따라할게, 재밌지 않을까?

 전라도 사투리를 배우는 일본사람은 

없지 않을까? ]

[ 그렇겠지..일부러 배우진 않겠지만 

별로 재미 없을 것 같은데... ]

[ 이건 어때? 당신이 요리코너를 하는 거야,

일본요리와 한국요리를 섞은 퓨전 요리

 같은 거?그럼, 내가 옆에서 맛있게 먹고 

평가를 하는 거야 ]

 [ 음,,그것도 별로야,,,]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 그럼, 내가 한국 노래를 한 곡씩 부르는 

것은 어때?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케를

 좋아하니까 사케를 소개하고 그에 맞는

안주를 당신이 만들어서 먹는 것도 좋은데.. 

아니면 내가 한국요리를 만들어 볼까?

아니야,,그냥 평범한 한일커플의 일상을 

보여주는 게 질리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그래도 좀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하니까

뭐가 좋을까....

내가 한국에 관련된 뭔가를 하는 게

흥미로울 것 같은데..뭐가 좋을까..

건축에 관한 얘긴 재미 없을테고,,

역시, 전라도 사투리를 배우는 게 웃길

같은데..당신 생각은 어때? ]

[ ........................ ]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는 깨달음..

정말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인지 알 수없지만

생각만 해도 재밌을 것 같다며 혼자 킥킥 

웃다가 다시 심각하게 생각에 빠졌다.

테마도 문제지만 장비도 필요할 것이고

그냥 찍어서 올리는 게 아니라

편집과 코멘트, 자막처리도 넣어야한다고

했더니 할 것 같으면 제대로 갖추고 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유튜버 관련 책이 나왔던데

서점에 가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한다.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 내가 지금 약간의 블로그 권태기에 빠져 있긴

 하지만 유튜버는 되지 않을 거야, 영상 찍고

 편집하고 그럴 열정도 시간도 없고

 SNS 노출은 이 블로그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 아,그렇지,,당신은 사생활 노출을 많이 

싫어하는데 몇 년동안 이렇게 블로그에서

보여주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근데, 당신이 권태롭다고 하니까 방향을 좀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거야.

뭐든지 의무적으로 하면 재미없잖아,

자신이 즐기면서 해야지 재밌지..]

[ 알아,,나도,,]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 것도 권태기 극복의

한 방법이 아니겠냐고 다시 글 쓰는 게

 재밌어질 때까지 임시 휴업같은 걸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 응, 생각해 볼게 ]


뭔가를 꼭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노트북을 열었던 것 같다.

그냥 평범한 일상을 일기처럼 써 내려가면 

되는데 좋을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들을 

떨쳐버리지 못해 제 풀에 지쳐버린 것 같다.

일본에는 무엇이든 계속하면 나중에 힘이

된다는 뜻에 (継続は力なり)라는 격언이 있다.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해 나가는 건 

힘이 된다는 말이다. 햇수로 8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지금껏 블로그를 하면서 받은 사랑이 

너무 많기에 조금은 지치고 권태로워도

이 또한 지나가는 시간들이니 힘들 땐

잠시 쉬면서 재충전을 하는 것도 

한 방편이 아닌가 싶다.

[ 근데,,정말 유튜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애]

다 끝난 얘기를 또 깨달음이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

[ 안 한다고 했잖아, 하고 싶으면 당신이 해.

하지만, 정말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고려는 한 번 해 볼게 ]

꼭 재밌는 테마를 찾을 거라며 

유튜브 영상을 정신없이 보는 깨달음.

정말, 유튜버가 되자고 하는 건 아닐지 

갑자기 걱정이 되지만 난 그냥 

블로그를 계속하겠다고 우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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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꽤 오래전부터 읽으셨던 분들은 이미 

느끼셨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괜한 욕심들이 절 혼란스럽게 했고

부질없는 잡념들이 절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반성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겠습니다.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서 제 글을 기다리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지금처럼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댓글창 열었습니다.

깨달음이 좋은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며

열어두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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