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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일본 시어머니가 처음으로 보여준 모습

by 일본의 케이 2019. 5. 14.

주말을 이용해 우린 시댁에 잠시 다녀왔다.

 도착해서 바로 깨달음은 집주변을

살피고 사진을 찍었다.

3월에 퇴원하신, 어머님과 아버님이 다시

예전에 함께 계셨던 요양원으로 옮기셨고

깨달음은 일관계로 몇 번 찾아뵙지만

난 가지 못해 이번에 같이 오게 되었다.

다시 요양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안정을 찾으셨고

걱정했던 어머님의 치매증상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오늘 우리가 시댁을 찾은데는 안부인사와 함께

집안정리를 위해서였다.

깨달음이 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 그냥 이 집을

 두려고 했는데 처분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섰는지 정리를 해야한다고 했다.


사진을 다 찍고 난 후, 집 안에 들어서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미리 준비해 온

 연막살충제를 놓는 일이였다.

파리, 모기, 바퀴벌레, 진득이, 거미 등등,

눈에 보이지 않는 집벌레들을 잠시나마 

잠재우기 위한 것이다. 완전박멸은 힘들지만 

우리가 작업을 하는 동안만큼은

온갖 해충들이 나오지 않게 하기위해서이다.

몸에 뿌리는 차단제도 2통을 사서 준비를 했고

먼저 1층과 2층에 있는 옷장과 찬장 등

연기가 속속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모두 열었다.


[ 웬만한 건 다 버려야하니까 당신이 봐서

괜찮은 거, 필요한 게 있는지 잘 봐 봐 ]

2층에서 깨달음이 내가 있는 아랫쪽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 나는 모르지, 당신이 잘 알지 않아?] 

2층으로 올라갔더니 2층에 있는

사진첩 빼놓고는 남길 게 없다고 했다.  

[ 당신이 썼던 저 작은 책상도 버릴꺼야?]

[ 응, 이 집을 허물게 되면 이 안에 있는

물건들도 함께 처분을 하니까

정말 필요한 것만 몇가지 챙기면 돼.

아무리 추억이 묻어있는 것도 이젠 소요없어 ]

이젠 소용없다는 말이 공허로웠다.


연막제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자 집을 나가려는데 

깨달음이 잠시 마당에 있는 잡풀들을 보겠다며

나보고 먼저 카페에 가 있어라고 했다.

최루탄처럼 따갑고 매캐한 냄새가 서서히  

목구멍을 자극했고 깨달음에게 빨리

 나오라고 다그쳤다. 약 1시간정도 벌레를 

소멸시키는 동안 우리는 점심을 해결했고, 

요양원에 가져갈 먹거리들을 샀다.


다시 시댁으로 돌아와 우린 침묵 속에서

모든 서랍과 물건들을 하나씩 다시 꼼꼼히 살피고

남겨둘만한 것이 있는지 묵묵히 작업에 임했다.

 서류, 문서, 그리고 손지갑이나 장롱밑에 둔 

봉투속 지폐들,,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옛날 

돈들이 꽤 많이 나왔다. 

해가 질 무렵쯤 우린 집을 나서며 깨달음이

불단에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렸다.

요양원으로 향하는 택시안에서

불단은 남겨 둘거냐고 물었더니

절에 가져가서 처분할 생각이라고 했다.


요양원에 도착해 바로 어머님에게 가서

어머니날 기념으로 산 카네이션을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신다.

(일본은 어머니, 아버지 날이 따로 있음)

입원 전까지 아버님과 3층에서 함께 생활하셨는데

 작년에 양쪽 고관절수술을 수술하신 뒤로 어머님은 

돌봄이 많이 필요한 2층으로 방이 옮기져있었다.

깨달음이 사 온 것들을 보여주자 아이처럼

좋아하시면서 갑자기 당신의 다리를 

보여주겠다고 바지자락을 걷어 올리셨다.


[ 붓기가 많이 빠졌단다. 예전에는 이 다리가

무릎에 물이 차는 바람에 항상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부었는데 많이 빠졌어 ]

너무도 갑작스런 행동이여서인지 깨달음도

좀 놀랬고, 계속해서 어머님이 바지를 걷어

올리려고 하니까 깨달음이 다리를 만져드리면서

 고생했다고 이제 붓기가 빠져 다행이라고

쓰담쓰담하며 바지끝을 내려드렸다.

그리고 일주일전에 배탈이 나서 설사를 

계속했으며 약을 먹어도 좀처럼 낫지

 않았고 화장실을 갈 때마다 무서웠다고

아이처럼 말씀 하셨다.

깨달음은 뭘 잘 못먹었느냐, 이젠 괜찮냐,

요즘은 뭐가 먹고 싶은지 친절하게 물었다.


[ 응,,토마토쥬스가 마시고 싶구나]

[ 그렇지 않아도 케이가 엄마 토마토 쥬스

좋아하신다고 사 가지고 왔어 ]

[ 아,,그래... 고맙구나,,.]

예전같으면 나한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또하고 또하셨을텐데 이 날은 아주 짧았다. 

아들에게 자신의 종아리를 보여주고

양말에 넣은 핫팩이 딱딱해서 발가락이

아프다며 양말도 벗어 보여주는 행동이

  아주 낯설으면서도 안쓰러웠다.

실은, 요양원에 들어서면서 깨달음이 사무실

직원과 얘기를 나누는동안 내가 먼저 어머니 

방으로 갔었는데 문을 열고 인사를 드려도

 잘 못 알아보시는 듯 했었다. 마스크를 벗고

 저라고, 케이짱이라고 다시 인사를

 드렸는데 한참을 바라보다가 알아보셨었다.


3층 아버님 방에 갔더니 아버님은 

케이짱이 지난번에도 안 와서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다며 일부러 얼굴 보여주러 와줘서

고맙다고 지긋히 날 쳐다봐 주신다.

[ 아버님, 지난번에 제가 바빴어요,]

[ 그래, 바쁘면 안 와도 돼. 난 늘 고맙게 

생각한단다. 여기 오는 게 시간과 돈과 마음이 

함께 오는 건데 지금까지 자주 와줬잖니. 

그래서 너무 고맙단다 ]

깨달음은 오늘 집에서 필요한 것들만

몇 가지 정리해 두었다고 집을 처분하게 되면

모든 살림을 다 버리게 될 거니까 아시고 계시라고

설명해 드렸고, 요즘 어머님과의 사이는 괜찮은지.

어머니가 엉뚱한 소리를 가끔 하더라도

화내거나 짜증내지 마시라고 그러면

아버지가 힘들다고 조곤조곤 말씀을 드리자,

고개만 끄덕끄덕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겸염쩍게 웃으셨다.


우리 시어머니는 아버님과 달리 잔 정이 없으신 

분이였다. 말 수도 적고, 항상 점잖하고

 일본인답게 자신의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았던 분이였다.

그래서 나와의 관계도 아주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사이였다. 서로가 너무 가까이 가면

피곤하고, 늙었다고 자신들을 너무 챙기면

부담스럽다고 하셨을 정도로 자기관리와

헛된 감정소비 같은 걸 하지 않았었다.

나 역시 심플한 인간관계를 좋아했기에

시어머니를 대하는데 아주 편했었다.

그런데 오늘 어머님이 깨달음에게 보인 

모습을 보고 그냥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쳤다.


우리 친정아빠도 치매가 오면서 며느리가

누군지 못 알아보기도 하고 자신의 

막내딸까지 헷갈려하셨다.

하지만 당신의 첫째딸, 그리고 아들은

끝까지 기억하셨던 걸 생각하면

우리 시어머니도 자신의 기억속에 자리잡은

큰 아들의 자리만 더 커져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요양원을 나오기 전에 다시 어머님 방에 들러

 건강하시라고 작별 인사를 드리는데

 어머님 시선은 깨달음에 고정되어 있었다.

첫 아이(딸)을 사산으로 잃으시고 어렵게 얻은

큰 아들 깨달음, 어릴적부터  깨달음을

  예뻐해서 둘째 아들인 서방님이 지금도 

서운한 마음을 갖고 계실 정도라고 하니..

그 사랑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자꾸만 엷어져가는 어머님의 기억 속에서도

 선명하고 또렷히 남아있는 아들의 자리..

정신이 온전했을 땐 단 한번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흐릿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아들에게 투정도 하고 기대려 하신다.

그게 이치이기에 어머님의 기억 속에

내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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