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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멀리 있는 딸과 친정 엄마

by 일본의 케이 2019.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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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참기름이 떨어져 지난번 한국에서

엄마가 싸 주신 병을 찾아 꺼냈는데

 얼마나 꽁꽁 싸맸는지

참기름 병이 맞는지 긴가민가 했다.

킁킁 냄새를 맡아도 모르겠고 한 손에 들고

이러보고 저리 둘러 보고 

있으니 엄마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 참기름이 몸에 좋다고 긍께 많이 먹어라,

깨서방 나물 좋아한께 많이 넣어

꼬숩게 만들어 줘라. 한병이믄 쓰것냐? 

큰 놈으로 하나 가져갈래? ]

아니라고 작은 것으로 하나 받아왔는데 그 날

일본에 돌아와 짐을 풀면서 깨달음이 한 병 더

받아오질 그랬냐고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비닐봉투 세장을 풀었는데 이번에는

 신문지가 나온다. 신문지를 조심히 열어보니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 냄새가 퍼져 나온다.

이 참기름을 짜려고 깨를 사고, 기름집에서 행여나

자신이 맡긴 국산 참깨와 중국산 참깨가 섞일까봐

기름이 다 짜질때까지 우두커니 가게 앞 

평상에 앉아 기다리셨을 우리 엄마,

뭔 참기름을 날마다 짜냐고 지나가는 동네

 아줌마가 한마디 하면 

[ 자식들이 5명이나 된께, 나눠줄라믄 뭘 해도

 많이 하고, 자주 하요]라고 언제나처럼

분명 똑같은 대답을 하셨을 우리 엄마


지난번 엄마집에 있을 때 엄마가 나에게

일본 가기 전에 꼭 해달라고, 잊지 말라고

몇번이고 부탁한 게 있었다.

성경라디오? 전자라디오? 명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성경말씀과 찬송가도 나오고 

라디오도 들을 수 있는 휴대용 라디오를 

새로 하나 구입하셨는데

조작하는 걸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도 처음보는 것이여서 뭘 어떻게 하는지 몰라

잠시 만져봤더니 듣고 싶은 성경구절이나

찬송가를 정해진 번호를 입력하면 재생이 되는

 시스템이였다.

[ 엄마, 뭐가 안 돼? ]


새로 산 라디오의 버튼이 어렵다는 것과

헌 라디오에 있는 칩을 빼서 새 라디오에 

넣고 싶은데 아무리 빼보려고 해도 빠지질 않아

돋보기를 쓰고 쪽집게로 뽑아 보려도 해도

죽어도 못하겠더라고 하신다. 

[ 엄마, 여기야, 여기 밑을 손톱으로 조금만 

잡아 당기면 나 와 ]

[ 안 된당께, 나는 손톱도 없고, 손도 굵어서 

 손가락이 들어가들 안 해.

아무리 뺄라고 용을 써도 안 빠진당께 ]

[ 좀 작긴 한데...]

[ 좀 더 크게 만들었으면 늙은이들도 혼자서

할 것인디, 당최 눈도 안 보이고,

손구락도 내 맘대로 못 움직이고,,

아무것도 못하것어....]  

엄마에게 해보라고 손을 갖다 대드렸는데

정말 엄마 손가락으로는 빼내는게 힘들었다.


젊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이런게 

어른들에게는 불편하다는 걸 새삼 또 깨달았다.

엄마가 원하신대로 칩을 바꿔 넣어 드리고

또 모르겠다는 부분을 알려드렸다.

[ 엄마, 이 버튼을 살짝만 눌러 봐, 그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거야,,

그렇게 꽉 안 눌러도 돼...]

[ 여기를 살살 눌러라고? ]

[ 응,,,]

[ 어째 내가 하믄 이렇게 안 된다냐..내가 

공부를 좀 했으믄 이렇게 안 살았을 것인디.

뭐시 뭔지를 통 모르것어...]

[ 엄마, 이건 공부하고 상관 없는거야,,]

팔순이 넘은 우리 엄마는 지금도 제대로 공부를 

못한 게 한으로 남는다고 넋두리를 하신다.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 돌보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었는데 모처럼 소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외할아버지가

공부 그만하고 밭에 가서 참새 쫒으라고 

했을 때가 가장 슬펐다는 우리 엄마.

 디지털카메라도 그렇고 핸드폰 역시 버튼을

 하나만 누르고 싶은데 옆에 버튼까지

 눌러져서 힘들다고 하셨다.


어르신들 특징이 터치하듯 가볍게 살짝 누르는 

감각이 없어 모든 버튼을 꾸욱, 긴 시간 

누르는게 습관이 되어서 전원이 

꺼져버리기도 한다고 하신다.

과자 봉투, 조리료 봉투도 쉽게 열지 못 해

 꼭 가위로 잘라야하고, 물론 병뚜껑도 못 열어서

늘 드레싱 두껑이 반쯤 열린 상태였었다.

딸한테 보내는 참기름 병은 행여나 샐까봐,

조이고, 또 조이고, 싸고, 또 싸며

깨지지 말라고 기도까지 하셨을 것이다.

물병에 넣어주면 편하지 않냐고 했을 때

 플라스틱은 몸에 안 좋고, 기름은 

꼭 병에 넣어야 향이 안 변한다고

 고집하셨던 엄마...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맡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난, 엄마에게 애뜻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진

 않았지만 시간이 가고, 내 나이가 한 살씩

 늘어감과 더불어 자꾸만 쇠약해져가는

 엄마가 눈에 밟힌다.

엄마를 온전히 내 마음에서 내려놓고 난 후부터

 엄마를 보고 있으면 안쓰럽고 애달프다.

다리가 부어 아려서 잠을 자다가도 몇 번

 깨신다고 해놓고는 아침이면 깨서방

 먹인다고 좋아하는 반찬을 하시면서도 

즐거워하셨다.

[ 저렇게 한국 음식을 잘 먹응께 이뻐,

 어째 저렇게 잘 먹은가 몰라 ]

하나라도 더 먹일생각에 밥을 다 먹어가는데도

새 반찬을 해 와서는 더 먹어라, 

한 숟가락만 더 먹어라 하신다.   

https://keijapan.tistory.com/911

(한국 장모님을 반성하게 만든 남편)

https://keijapan.tistory.com/998

(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 있다) 

그래서인지 깨달음도 늘 엄마집에 가는 걸 

좋아하고 그만큼 엄마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함께 한다.

가까이서 살면 그래도 한번쯤 더 찾아가 뵙고

불편한 것이 뭔지, 가려운 곳은 어딘지 알텐데

해외에 살고 있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내세워

그냥 넘어가 버리기도 하고,

 언니와 동생이 대신 하고 있다고 위로하며

스스로의 죄값을 덜어내고 있는게 사실이다.

살아계실 때, 잘 하자고 돌아가시고 난 후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고 다짐해도

마음뿐인 못난 딸에겐 그리움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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