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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출장길에 남편이 사온 선물

by 일본의 케이 2019.04.04

코트를 말끔하게 입고 깨달음은

공항청사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삿포로에 출장을 가야했고 벚꽃 구경을 하느라 바쁜

도쿄와는 달리 위치상 가장 위에 있는 그곳은

아직도 눈이 조금씩 내린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삿포로 출장을 가고 있는 여직원이

추워서 얼어 죽는줄 알았다는 언질에 

크리닝 해둔 겨울코트를 다시 꺼내 입은 것이다.

[ 안 춥겠어? ]

[ 응 , 추우면 핫팩 사서 붙히면 돼 ]

맞은편에 앉은 나를 한번도 쳐다보지 않고

핸드폰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 깨달음.

몇시 비행기에 돌아올 건지 물으려다 그냥 말았다.


깨달음을 보내고 난 곧장 화방으로 향했다.

작년, 제주도를 다녀온 뒤 다시 작품을 했고

올 해는 개인전을 다시 해야할 것 같아서

필요한 도구들이 몇가지 필요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일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였는데 갱년기가 찾아오면서

자꾸만 필름이 끊어지 듯, 삶의 의욕도 상실하고

무기력증으로 개인전을 잡아 두고도 손이

 움직여지지 않아 취소를 해야할 정도로

 난 꽤나 심한 갱년기를 겪어가고 있다.

작년 제주도를 다녀온 후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예전처럼 밤을 새고 하는 열정은 

덜하지만 무엇보다 다시 손을 움직이려고 하는

  의지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럭저럭 갱년기의 내 모습에

익숙해졌고 나만의 대처방안도 알아내서

많이 좋아진 상태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오고, 공부를 하면서 틈틈히 

개인전을 열었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명함을 내밀기엔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난해한 내 작품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래도 작업을 할 때면 

기분이 많이 좋아진다.

디자인 출신이 내게 일러스트를 해보라고

권하셨던 교수님은 일본에서 손꼽을 만큼

유명한 분이셨다.

하루에 100장씩 그리면 자기처럼 될 거라고

어설픈 내 그림에 많은 칭찬을 해주셨다.

내면에 있는 것들을 거짓없이 표현하라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끄집어 내라고

그래야만이 작품 속에 니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며 자신이 아끼는 책을 내게 빌려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교수님 생각에 잠겨 옛 작품들을

꺼내어 보고 있는데 깨달음에게서 연락이 왔다.

[ 어디야? ]

[ 응, 잠시 쉬려고 커피숍이야, 요기도 할 겸 ]

[ 나도 지금 공항인데 빨리 끝나서  지금

직원이랑 라면 먹고 있어 ]

예정과 달리 일정이 빨리 끝나 비행기편을

변경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오후 7시에 집에 도착한 깨달음이

나에게 작은 쇼핑백을 들고 흔들흔들 거렸다.

[ 뭐야? ]

[ 그냥 오다가 하나 샀어 ]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눈에 띄여서 하나

샀다면 두 손에 올려 내민다.

[ 왜 그래? 무슨 날이야? ]

[ 아니,,그냥,,결혼기념일도 그냥 넘어가고

뭐 갖고 싶냐고 해도 없다고 해서

그냥 내가 맘대로 샀어 ]

물욕을 버리고 싶어 버린 건 아니였지만

갱년기와 함께 난 모든 욕구를 상실했었다.

삶의 의욕마저 없어져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할 정도로 심각해지자

제일 큰 걱정을 했던 건 깨달음이였다. 


그 누구보다 욕심도 많고 삶의 의욕이 넘치며

 활동적이였는데 그 모든 욕구와 욕망들이

 사라지며 작아져가는 나를 바라보며

깨달음도 힘들어 했었다.

[ 나,오늘 화방 갔다 왔어, 도구 사려고 ]

[ 그래, 잘했네 ]

[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이젠 좋아졌잖아 ]

[ 알아, 그래서 화이팅하라는 이유로

아니, 잘하고 있어서 고맙다고 산 거야 ]


[ 예쁘네..]

[ 맘에 들어? ]

[ 응 ]

한번 해보라는 말도 하지 않고 깨달음은  

멀쓱하게 내밀고는 일찍 자겠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에 올려진 귀걸이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슬픈 마음이 들었다. 

원래 자상한 깨달음인줄 알고 있었지만 

출장길에 아내를 위해 선물을 

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2주전에 호흡곤란을 일으켰던 아내가

짠한 생각이 들었을까..

남들보다 심하게 앓고 있는 갱년기가 

안쓰러웠을까...

아니면 다시 작업을 시작한 모습이 보기 좋아서

열심히 하라고 준비한 것일까..

무슨 말로 깨달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할까,,

건강하고, 의욕이 넘치는 아내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줘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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