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9시, 대형슈퍼가 오픈할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이번에도 우린 청소를 해드리기 위해
청소도구와 쓰레기봉투를 사러 가는 중이였다.
건널목 앞에서 깨달음이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기도?를 했다.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지상보살(お地蔵様-오지조사마) 불상이였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원을 구원해 준다는
지상보살,,,
불상이 빨간 턱받이를 하고 있는 이유는
사산, 유산된 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함이라고 한다.
기도?가 끝난 깨달음에게 아이 있냐고
갑자기 웬 기도를 하냐고 물었다.
실은 자기가 태어나기 1년전, 누나가 한 명 있었는데
태어난지 한 달만에 병사를 했단다.
그 얘긴 어머님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던 얘기였다고 하자
그냥 별 이유는 없지만 명복을 잠시 빌고 싶었단다.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시작하기 전
오늘은 이불장을 깨끗히 정리해 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어머님과 버릴 것과 놔 둘 것을 얘기중인 깨달음.
이불장 문을 열 때마다 뻑뻑해서 열리지 않았다고
어머님이 불편함을 호소하셨고
어머님에게 공기빼는 법을 가르쳐 주는 깨달음.
내가 좀 거들려고 하니까 그냥 앉아 있어란다.
어머님이 내려가시고 버릴 이불들을 분리시킨 뒤
건조기로 먼저 30분이상 하나씩 건조시킨 다음
압축비닐에 넣어서 수납하기 편리하게 하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난 주로 쓸고, 닦고, 잡고, 버리느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보조역할을 했다.
그렇게 3시간을 넘기자 깨달음이 질렸는지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한국 어머님집 같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음식 먹으며
쉴 수 있는데 여기는 자기집이니까
자기가 해야하고,,나한테 시키기는 좀 미안하고,,,,
그래서 하기는 하는데 몇 시간을 이러고 있으니
밖에 놀러 가고 싶다고 혼자서 중얼중얼하며
몸을 비비 꼬아가면서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했다.
[ .................... ]
그렇게 힘들면 나머지는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나한테 시키고 싶어도 자기가 한국 갔을 때
어머님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았기 때문에
나한테 시킬 수 없다고,,,,,,
이럴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일 좀 할 것 그랬다며
또 [ 아이고~ 아이고~]를 외쳤다.
[ ....................... ]
그랬다. 한국에 가면 깨달음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고
편하게 아주 편하게 쉬었다.
내가 눈치를 줘도 아랑곳 하지 않았으며
우리 엄마도 깨달음에겐 아무것도 못하게 했고
그저 맛난 것 만들어서 먹어봐라, 쉬어라, TV봐라하시면서
최상의 대우만을 받아왔다.
이제서야 자기가 한국에서 얼마나 나태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는지 세삼 고맙고
후회스러운 모양이였다.
그렇게 오후시간이 다 지나갈무렵, 이불정리가 모두 끝나고
어머님께 보여드렸더니 그 많던 이불이
이렇게 줄어들었냐고 너무 좋아하셨지만,
깨달음은 피곤해서 눈이 더 축~ 쳐지고 몸도 흐물거렸다.
그렇게 청소효도?를 마치고 난 우린
피로를 풀기 위해 근처에 있는 온천탕에 들렀다.
맥주를 시원하게 한 잔하면서
남자들에겐 역시 처갓집이 최고라며
다음에 한국에 가면 어머님께 진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려야겠단다.
며느리인 내가 해도 됐는데 왜 강하게
나한테 하라고 시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하라고 하면 정말 할 생각이였냐고 눈을 크게 뜨고 되물으면서
자기도 하기 싫은데 남의 집 이불정리하는 게
뭐가 좋겠냐고, 그냥 자기가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자기가 했단다.
그리고 이불 정리를 하면서 느꼈단다.
며느리들이 왜 시댁을 싫어하는지,,,,,
자기집 일도 귀찮고 하기 싫은데
제사, 명절, 생일 같은 행사 때마다
며느리 노릇 할려면 피곤하겠더라며
싫은 이유가 충분히 이해됐단다.
듣고 있다가 난 별로 며느리로서 스트레스가 없다고 그랬더니
자기가 대신 일을 다하는데 당신이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냐며
[ 고맙지? ]라고 목에 힘을 주었다.
[ .......................... ]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 가면 지금처럼 편히 장모님댁에서
빈둥거리며 쉴 생각이니까
한국에서는 당신이 일을 하고
시댁에 오면 자기가 모두 맡아서 하겠다며
각자, 자기집 일은 본인들이 하는 게
서로에게 편하고 보고 있는 주위 사람들(부모님, 형제)들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단다.
하라고 시킬 필요도 없고 해주기를 바랄 필요도 없이
그 집사람들이 해버리면 제일 순조롭게 일이 진행된다고
맥주를 한 잔 더 시키면서 시댁과 며느리와의
관계성에 대해 자기나름대로 분석을 해가며 약간 흥분기미로
목소리를 높여 얘길 계속했다.
오늘 깨달음은 많은 걸 생각했던 것 같다.
아들입장, 며느리 입장, 그리고 부모님들 입장까지...
솔직히 난 시댁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지만
깨달음이 저런 생각을 해줘서 많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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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좋은 글 쓰라는 격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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