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에 도착한 우린 바로 헤어졌다.
깨달음은 현장에 가야했고 난 그 미팅이
끝날 때까지 시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야한다. 깨달음은 연말을 앞 두고,
미리 점검해야할 현장이 많아져
이동, 출장이 잦아졌다.
대략 몇시에 끝날지 예상은 하고 있지만
상황의 변화에 따라 우리는 서로 따로따로
움직이자고 미리 말을 해둔 터였다.
나고야역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쌓인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나도 그들처럼 연말 기분을
사진 속에 담았다.
지하매장에 들러 좋아하시는 간식거리를
몇 가지 사고 소고기 덮밥도 사고,,깨달음에게
연락이 없어 혼자서 점심을 먹었다.
정작 본인은 혼밥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가끔 지나는 사람들이 날 힐끔 거렸다.
쇼핑과 식사를 끝내고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사고
커피숍에 앉아 따끈한 코코아를 마시며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자꾸 봤던 것 같다.
우리가 같이 타려던 버스시간이 다가오는데
깨달음에게서는 연락이 없었고 난 그냥 혼자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2시간에 한대씩 있는 버스를 지금 타지 않으면
더 늦여질 것 같고 미팅중일지 모르는
깨달음을 재촉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깨달음에게서 역시나
자긴 다음 버스를 타야될 것 같다며 먼저
가라는 카톡이 왔다.
시골길은 한적하다 못해 고요하다.
어둠 속에서 혼자 캐리어를 질질 끌고 있는 나는
피부에 스치는 바람만큼 쓸쓸함을 자아냈다.
체크인을 하고 그냥 그대로 침대에 누워
도쿄에 돌아가 해야할 스케쥴 표를 꺼내
조율을 하다가 문득 지금 난
이 낯선 호텔방에서 뭘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 며칠전 깨달음과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신칸센을 약 2시간,
시외버스로 또 2시간, 이래저래 5시간
걸려 시댁에 온 이유는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찾아 뵙자는 이유 때문이였다.
깨달음은 8시를 훌쩍 넘어 피곤한 얼굴로 들어왔고
우린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다음날 스케쥴을 짰다.
[ 근데 백화점에서 뭐 샀어? ]
[ 아버님이 좋아하는 생선조림이랑 앙코빵 ]
[ 응,,고마워,,피곤하지? ]
[ 아니, 나보다 당신이 더 피곤하지..]
[ 한달에 한번씩 오는 건 역시 피곤하네,
광주 가는 것보다 훨씬 더 걸려..]
어쩔 수 없지, 아니 당연히 와야지라고
대답해야하는데 난 그냥
그 말들을 삼키고 말았다.
이번달에 우리가 다시 시댁을 찾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솔직히 아버님이 언제오냐는
전화를 자주 하셨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시부모님이 계시는 요양원에
갔을 때 어머님이 또 혼자 방에 계셔서
아버님방으로 모시고 갔다.
때마침 담당 간호사가 건강체크를 위해 방문을 했고
어머님과 조근조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깨달음과 아버님은 창가에서 망원경으로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예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와 어머님이 하는 얘기에 귀를
신경이 쓰였는데 전혀 막힘없이 조리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하시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종합적으로 두 분은 건강하신 편이고,
가끔 어머님이 기억을 잃곤 하시지만 아버님이
옆에 계셔서 힘이 된다며 아버님 손을 잡고
오래 사셔야 한다며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신다.
간호사가 돌아가자 아버님은 어머님 때문에
쌓인 불만을 털어놓으셨다.
자신도 요즘 심장이 자꾸 아파서 언제 죽을지
불안한데 어머니가 자꾸 깜박깜박 거리고
괜한 헛소리를 하니까 힘이 빠진다며
자신이 놓여진 지금의 환경이 힘드시단다.
[ 아버지가 엄마한테 뭘 얼마나 해주는데?
요양사들이 다 해주잖아 ]
[ 식사하러 갈 때, 휠체어 밀어주고,
뭐 그런거지.직접적으로 내가
하는 건 별로 없는데...]
[ 그게 그렇게 힘들어? 휠체어 미는게? ]
[ 대화가 안 되는 것도 짜증스럽단다 ]
그래도 엄마를 챙길 사람은 아버지 밖에
없으니까 그러러니하고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깨달음이 아버님을 달래지만
이미 어머님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서인지
좀처럼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신다.
[ 아버지, 부부는 원래 서로 챙겨주고 그런거야,
엄마가 지금껏 아버지 챙겼으니까 지금은
아버지가 좀 봐 줘도 되잖아 ]
[ 나도 힘들어,,,깨달음,,]
[ 그래도 아버지가 엄마를 이끌어야지, 매주
열린다는 가라오케도 같이 데리고 가고,
공작시간에도 도와주고,,안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엄마를 나 몰라라 할 거 아니야 ]
[ 그건 아는데,,나도 내 몸 하나 간수하는 것도
겨우겨우 하는데 니네 엄마까지,, ]
[ 그럼, 어떡하면 좋겠어? 어떻게 하고 싶어? ]
[ 아니,,나도 스트레스가 많다는 거지 ]
[ 아버지, 그 마음은 아는데 특별히 답이 없어,
아버지도 알잖아 ]
[ 알아,,그니까 빨리 죽어야 할텐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되고..]
간호사에게 부탁을 해서 아버님 손이 가지 않게
하겠다고 깨달음이 얘기를 마무리를 했고
어머님이 할 일이 생각났다며 자신의 방으로
가고 싶다 하셨다. 그렇게 어머님 방에
옮겨 가자 어머님은 겨울용 옷가지를
자신의 손이 닿는 곳에 놓아 달라고
하셨고 깨달음은 옷을 하나씩 펼쳐
들어 올리면서 이것이 좋은지, 저것이 좋은지
어머님에게 확인을 시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난 쓸데없이 어른들이
자주 말하는 자식중에 딸은 한명 있어야
한다고 했던 의미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어머님의 속옷을 꺼내는 깨달음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내가 두꺼운 것과 얇은 것,
실내용, 외출용으로 따로 분리해서 넣어드렸다.
그리고 두 분께서 필요하다고 하신 것들을 사서
넣어드리고 우린 요양원을 나왔다.
우리 시아버님이 변하셨다. 되도록이면 자식들에게
민폐를 주지 않으려 애를 쓰셨는데
치매증상을 보이는 어머님에 대한 스트레스가
한계에 다달았는지 깨달음에게 자주 전화를 해서
오지 않겠냐고, 언제 오냐는 말씀을 하신다.
얼마나 힘드시면, 얼마나 짜증이 나시면
그리고 무엇보다 속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도 큰아들인 깨달음을
찾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화하면 한시간만에 올 수 있는 서방님은
서글서글 하지 않고 사무적이라 하셨다.
그래서도 깨달음에게 얘기하기 편하셨을 것이다.
이렇게 아버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난 이번에 좋은 며느리가 되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많이 찾아뵙자고, 살아계실 때
잘 하자고 했는데 어찌보면 착한 며느리
흉내를 내 왔던 게 아닌가 싶다.
( 아버님, 저희 생각보다 많이 바빠요,,
보고 싶어서 부르실 때, 얘기하고 싶어서
부르실 때마다 저희가 올 순 없어요 )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나도 어쩔수 없는 며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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