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인

일본인이 한국 라면을 먹을 때

by 일본의 케이 2021. 5. 21.
728x90
728x170

2주 전부터 깨달음이 코리아타운을 한 번 가자고

했지만 난 가야 할 이유를 찾지 않았다. 

그곳에 가야만이 살 수 있었던 한국식재료나

냉동식품들이 요즘은 웬만한 대형마트에 가면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산 고춧가루를 비롯해 냉동만두,

김치까지 한국 브랜드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된장, 조선간장, 액젓처럼

코리아타운에서 구입해야 할 것도 분명있다. 특히

 깻잎, 애호박, 호박잎, 시래기처럼

 구하기 힘든 채소들은 그곳에 가야 하는데

요즘은 깻잎이 먹고 싶을 땐 오오바(大葉)로

애호박은 즈끼니(ズッキーニ)로

대신해서 요리를 하곤 했다. 

그래서도 특별히 가야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 깨달음, 왜 가려는 거야? ]

[ 그냥,, 심심해서..]

[ 뭐 살 거 있어? ]

[ 아니.. 없는데.. 그냥 오랜만에 가고 싶어서 ]

백화점 가듯이 그냥 가 보고 싶다는데 

굳이 묻기도 그래서 같이 나왔다.

평일이어서인지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점심시간이어서인지 식당에는

삼삼오오 직장인들이 눈에 띄었다.

깨달음은 식당 앞의 메뉴들을 하나씩 체크하듯

훑어보았다. 한국 마스크도 놓여 있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등장? 했는지 잘 모르겠는

이름 모를 캐릭터 인형도 팔고 있었다.

[ 올 때마다 변하는 것 같아 ]

[ 응,, 새로운 가게도 많이 생겼네 ]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고소한 냄새들이

솔솔 풍겨 나오자  까치발을 하고

가게 안을 슬쩍 내다보는 깨달음.

728x90

[ 깨달음,, 뭐 먹고 싶어? ]

[ 먹고 싶은 건 많은데... 그냥 가야겠지? 

지금 긴급사태 선언 중이니까..]

[ 먹고 싶으면 먹어, 여기까지 왔으니까 ]

[  짬뽕이랑 군만두가 먹고 싶은데..그냥 참을래 ]

코리아타운을 어슬렁어슬렁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한국 식품매장에 들어섰다.

여기까지 온 김에 미리 사 두고 싶었던

꽃소금, 초고추장, 당면, 부침가루를 넣고

깨달음은 찾았더니 냉동만두 쪽에 가 있었다.

[ 깨달음, 먹고 싶은 거 있음 여기에 넣어 ] 

[ 지지미 사면 좀 그러겠지? ]

[ 음,,, 지지미 빼고 만두류만 사 ]

[ 알았어 ]

주부처럼 이것저것 만져보고 뒤집어 보면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우습다.

300x250

그리고 이 매장에 올 때마다 깨달음이 발걸음을

멈추고 만지작 거리는 양은냄비.. 내가 사지 말라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항상 날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며 사고 싶다는 어필을

강하게 하지만 이번에도

난 노!라고 분명히 말했다.

[ 여기다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데...]

[ 사지 마,,]

[ 딱 혼자 먹기 좋은 사이즈네...]

[ 내려놔...]

[ 내가 계산할 건데? ]

[ 그래도 사지 마..]

고집을 부려도 안 통한다는 걸 알고 있는 깨달음이

바로 포기하고 라면 코너로 자리를 옮겼다.

[ 짜파구리 라면 있어? 집에 ]

[ 응, 아직 남았어. 신라면도 ]

사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 없이

라면들을 유심히 쳐다봤다.

예전에는 과자코너에서 뭘 먹을지 몰라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였는데 과자를 끊고 난 후부터

  라면 코너에  눈을 돌린 것 같다.

내가 계산하고 돌아올 때까지 깨달음은

같은 자리에 서서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다.

[ 뭐 샀어? ]

[ 응, 해물짬뽕 라면 ]

[ 이리 줘. 계산하고 올게 ]

무거워진 쇼핑백을 둘이서 나눠 들고

우린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역으로 향했다.

길을 걷는데 깨달음이 왜 양은 냄비를

사면 안되냐며 물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꼭 그 냄비에 먹더라며

원래 라면은 거기에 끓이는 게 아니냐고

자기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보라고 했다. 

몸에 별로 안 좋다고 했더니 그럼 왜

드라마에서는 그 냄비에 넣고 끓이냐고

건강에 안 좋으면 그러지 못할 거라며

날마다 먹는 것도 아니고 가끔 먹는 라면인데

가장 맛있게,  분위기도 살려가며

먹고 싶었단다.

https://keijapan.tistory.com/1407

 

한국남자에게만 있다는 매력

참 오랜만에 만나는 미호 상이다. 서로 바쁜 것도 있고 코로나19로 사람 만나기를 주저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꼭 자길 만나주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만나서 얘

keijapan.tistory.com

아무튼,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고 답하자

지금 한국 라면이 얼마나 인기인지

모르냐고 따지듯 물었다.

[ 원래 한국 음식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인기에 상관없이 계속 먹었잖아 ]

[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코로나로 다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인스턴트 라면 매출이

두배 이상 뛰였어, 그중에서도 한국 라면은

맛의 종류가 다양해서 엄청 인기란 말이야,

골라먹는 재미가 있어서 ]

[ 아,,, 그래...]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몇 년 전, 불닥 볶음면이 이곳에서도 일부

매운맛 마니아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고,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가 뜨면서

유튜버들이 한국 라면 먹방을 즐겨하고 있다. 

일본인 입맛에 맞는 라면으로 추천을

하기로 하고 다양한 재료들을 토핑으로

올려 먹기도 한다.

쿠사나기 쯔요시(草彅剛 )도 짜파구리를 

끓이는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고 실제로

치즈라면, 참깨라면, 미역라면, 감자라면,

그리고 설렁탕, 곰탕 라면을 일본인이

선호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라면들도 인기가 상승 중인 걸 몰랐다.

https://keijapan.tistory.com/1455

 

일본속, 신한류 붐은 일고 있었다

내 주변의 일본인 친구, 동료들 중, 서너 명은 예전부터 한류에 빠져 있었다. 원조라 말하는 배용준 시절의 한류 1세대부터  지금의 BTS까지 다양하게 한국문화를  발 빠르게 접하고 공유하며 즐

keijapan.tistory.com

[ 그래서 라면 코너에 그렇게 오래 서 있었어? ]

[ 그래, 거기 있는 라면들을 한 봉지씩 사서

그 냄비에 끓여 먹고 싶었어 ]

[ 해물짬뽕 라면 샀잖아 ]

[ 그것 말고, 칼국수 라면이 멸치맛도 있고

사골맛도 있었어 ] 

[  알았어, 다음에 가서 사고 당신 좋아하는

비빔냉면 샀으니까 골뱅이 넣어서

만들어 줄게 ] 

[ 싫어, 아까 내가 산 해물짬뽕 라면 먹을래 ]

[그래.. 그럼..]

집에 도착해서 내가 라면 물을 올리고 있는데 

옆에서 또 말을 걸었다.

아까 그 냄비 앞에 서 있을 때, 다른 일본인들이

냄비 밑에 있는 쇠젓가락을 사면서 한국 라면은

쇠젓가락으로 먹는 거라면서 사더라고

다들 그렇게 해 보고 싶고 더 맛있게 보이니까

사는 것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배우들이 먹는 음식을 똑같이 먹어보고

그러는 것도 작은 행복이라고 했다.

[ 짜파구리가 왜 세계적으로 인기였는데? ] 

[ 알았어..깨달음..]

[ 라면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나 식당에서도

그 냄비에 찌개가 나오잖아  ]

[ 그러긴 하지 ]

[ 그니까 나쁜 게 아니야, 나쁘면 안 팔지 ]

[ 그러겠지.. 근데 되도록이면 그냥

스테인리스 냄비에 끓여먹는 게 좋다는 거지 ] 

내가 몇 번 같은 설명을 해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표정을 하며 다음에 가면

기어코 그 냄비를 살 거라 했다.

깨달음은 라면도 라면이지만 그 냄비에

먹고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이다.

나야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왠지 사는 걸

제지하고 싶었다.

근데. 그냥 아니,, 사 줘야 될 것 같다.

다들 한국 드라마처럼 그렇게 해보고 싶어

양은 냄비도 사고 쇠젓가락도 산다는데

뚜껑에 올려 후후 불어 먹으며

행복해하라고 사 줘야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