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이라 불리우는 신오쿠보역 개찰구에
들어서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9월이 시작된 첫주말, 여전히 한여름처럼
33도를 향해가는 날씨탓에 그녀는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만나자고 몇 번이고 약속을
미루고 미뤘는데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며
그녀가 지난주에 전화를 했었다.
런치를 같이하고 싶다고 그녀에게 난 식사는
다음에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양해를 구하고
차를 마시기로 했다.
40대후반인 메이짱은 돌싱이며 내게
그림치료 수업을 1년정도 받았었다.
3년전 이혼을 한 후로 보기 시작한 한국 드라마에
빠지면서 혼자서 한국여행을 두번 다녀왔고
요리에 관심을 보여서 내가
한국요리를 이것저것 가르쳐주곤 했었다.
그녀는 커피숍에 가기 전, 사고 싶은 게 많다며
한국마트를 먼저 가자고 했다.
야채코너에 가서는 애호박을 들고
일본에서 파는 즈키니가 아니라
이 애호박이 너무 먹고 싶었다며 바구니에 3개를
집어 넣었다가 다시 하나를 뺐다.
[ 왜? ]
[ 음,,,좀 비싸서.....]
그리고 다음으로는 깻잎을 들었다 놨다하며
또갈등하기 시작했다. 두달 전에 왔을 때보다
두배이상 가격이 뛰였다며 50장정도 살
예정이였는데 그냥 10장만 사야겠단다.
이 재료들로 무슨 반찬을 할 거냐 물었더니
애호박은 칼국수에 넣고, 애호박전을 만들어
볼 것이고, 깻잎은 장아찌를 담고 싶다고 했다.
[ 장아찌라면,,적어도 20장은 더 사야될 걸..그리고
그 레시피는 내가 안 가르쳐 줬는데 할 줄 알아? ]
[ 응,요즘은 유튜브 보면 뭐든지 만들 수 있어 ]
그녀는 깻잎을 30장으로 맞추고 배즙과 식혜,
참깨라면과 떡볶이, 참기름까지 바구니에 넣고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보고
뭔가 어색한지 피식 웃었다.
[ 나는 필요한 거 없어, 메이짱 맘대로 사 ]
[ 기분탓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참기름도
한국 참기름이 더 고소한 것 같애. ]
[ 우리 남편, 깨서방도 똑같은 소릴 했어]
[ 언젠가 케이짱이 준 참기름, 어머님이 직접
짰다는 그 참기름을 먹은 후로는 역시 한국 게
더 향이 진하고 고소한 것 같다라구 ]
계산을 하고 미리 챙겨운 보냉백에 물건들을 담고
커피숍에 들어가 우린 잠시 쉬었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감기약(쌍0탕)을 따끈하게
데워서 마시도록 알려주고, 조미김과 한국 마스크,
쥐포(깨달음 것)도 몰래 가져와
스케지북과 함께 그녀에게 건넸다.
[ 스케치북은 왜 주는 거야? 그림 그리라고?]
[ 응,,심심할 때 끄적거리라고,,]
그녀는 자기 가방에 주섬주섬 넣고는 내게 보여줄 게
있다며 핸드폰을 코 밑으로 갖다댔다.
[ 김치를 한달 전에 담았는데 너무 짜서
그냥 익혀두고 일주일전에 또 다시 담았는데
케이짱 김치보다 더 맛있어서
일본 친구들이 부러워했어 ]
[ 나눠 먹었어? ]
[ 응, 주변에 사는 아줌마 두명에게 주고 나머지는
코로나때문에 못 만나니까 택배로 보냈어]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잡채, 김밥은
거의 매일 만들다시피 하고 있고 부침개는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 안 해먹는단다.
[ 메이짱 다행이다. 요리 계속해서.. ]
[ 응,,요리를 하면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것 같애,
특히, 한국요리는 내가 몰랐던 장르인데
내 입맛에도 너무 잘 맞고, 하면 할 수록
깊은 맛도 알 것 같고 재밌어, 그리고
뭔지 모르겠는데 왠지모를 자신감도 생기고
만족도가 높아,,내가 살아있음을 느껴.. ]
그런데 요즘, 큰 고민이 있다며 자기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아무리 끓여봐도 제맛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나름 맛을 내보려고
이것저것 넣는데 그러면 그럴 수록 한국맛도 아닌
일본맛도 아닌 이상한 맛이 난다고 했다.
뭘 넣었냐고 하니까 한국 조미료 다0다와
일본 조미료 혼다시를 같이 넣었다고 한다.
[ 조미료는 한가지만 넣고 신김치를 볶아서 넣어 봐,
그리고, 한국 김치찌개에 일본 조미료를 넣으면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없지 ]
[ 아, 맞다,그래서 한국맛과 일본맛이 싸웠구나.
싸우면 안 되는데..]
싸우면 안된다는 말에 여러의미를 포함한 듯했다.
메이짱은 이혼을 하고 약간의 거식증과 우울증이
함께 찾아왔었다.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거부를 했다기 보다는 삶의 의욕을
모두 상실하고 음식을 넘기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러다 나와 함께 그림치료를 하면서
내가 가끔 해주는 요리에 흥미를 보였고
레시피를 궁금해하길래 같이 요리를 하며
알려주곤 하면서 거식증도 조금씩 나아졌었다.
[ 케이짱 덕분이야, 내가 요리에 취미가 있는 줄
몰랐어. 결혼해서도 전남편이랑 서로
직장 다니느라거의 냉동식품이나 외식이 많았거든..]
그녀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또 자연스럽게
얘길 해주면서도 이혼사유가
뭐였는지 이 날도 언급하지 않았다.
매번 그 부분을 생략하는 그녀를 위해 나도
지금까지 묻지 않았고 궁금해 하지 않았다.
얘기가 끝나고 나는 메이짱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마디 했더니
괜찮단다.
괜히 불안하고 슬퍼지려고 하면 바로
새로운 레시피를 찾아 만들고 매운맛을 보면서
극복할 수 있다며 지금은 아주 즐겁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 그림도 그리겠다며 약속하면서
애호박전을 만들면 내게 사진을 보내겠다길래
아까 산 깻잎으로도 전을 만들 수 있으니까
한번 해보라고 권했더니 얼른 유튜브를 찾아본다.
한국요리를 하면서부터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그녀....
메이짱이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편안해지는데는
얼마만큼에 시간이 필요할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외로울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 어려운? 한국요리
레시피를 알려줘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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