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일주째 낫지 않아 깨달음의 기침은
심각할 정도이다.
[ 병원에서 뭐래? ]
[ 염증이 조금 보인대..]
[ 그니까 내가 진작에 병원 바꾸라고 했지? ]
[ 엑스레이도 찍었고, 처방약도 받았어 ]
다시 거친 기침을 하는 깨달음이
고통스럽게 보였다.
기관지쪽이 약한 깨달음은 감기가 걸리지 않아도
마른 기침을 자주 하는 편이다.
엄마가 해주신 도라지 배즙으로는
선천적으로 약한 부위가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특히, 이렇게 감기라도 걸리면 본인도 힘들어하고
보는 사람도 안타깝다.
조석으로 기온차가 심해서 감기에 걸린 거라고
했지만, 내가 봤을 때 깨달음도
이제 몸의 노화가 찾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 당신도 이젠 늙었다는 거겠지..
옛날에는 약 먹으면 금방 잡혔는데 이젠
약도 잘 안 듣는 것 같던데..]
[ 아니야,내가 먹다가 안 먹다가 해서 그래..
아,,늙은 것도 사실이지....]
씨무룩한 표정으로 깨달음은 샤워를 하러 가고
난 저녁을 준비했다.
[ 와~~삼계탕이다~, 언제 샀어? ]
[ 마침 적당한 사이즈를 있어서 샀지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깨달음이
닭다리를 들어 올렸다.
[ 완전 잘 삶아졌어~]
[ 많이 먹어, 당신 허약해진 것 같아서
마늘이랑 인삼도 많이 넣었으니까~]
[ 고마워~~]
깨달음이 좋아하는 판타스틱 듀오를 보며
삼계탕을 맛있게 먹는 깨달음에게
난 따끈한 오차도 함께 건넸다.
[ 강남 스타일 아니야? 싸이라고 해?
난 이름도 강남 스타일인줄 알았어..]
[ 응, 이번에 신곡 나왔나 봐]
[그래? ]
그렇게 티브이를 보다가 깨달음이 싸이의
연예인답지 않은 행동이 좋다며 다른 프로도
보길 원했다.
[ 얼굴도 평범해서인지 괜히 정이 가네...
그래서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은 가?
파리에서도 공연했나 봐,,]
유튜브에 장면들을 볼 때마다 연신 감탄을 했다.
[ 신곡도 요즘 인기 있는 것 같던데..]
[ 그래? 그럼 틀어 줘~]
[ 이병헌 아니야? 이병헌하고 친한 거야? ]
[ 몰라..]
[ 인간성이 좋으니까 저렇게 참가해 준 거겠지?
보면 볼수록 싸이가 매력적이네..]
[ 남녀노소 관계없이 다 좋아하는 것 같애..]
[ 근데 지금 욕 하지 않았어? 18이라고,,]
[ ................................ ]
[ 이 병헌도 18이라고 욕을 하네..]
욕이 아니라고 설명을 하긴 했지만
내 귀에도 욕으로 들리긴 했다.
삼계탕에 있는 찹쌀 한 톨까지 깨끗이 비운
깨달음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싸이의
뮤직 비디오를 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깨달음은 나고야로 출장을 가기 위해
짐을 챙겼고 난 따끈한 오차를 준비했다.
[ 어때? 어젯밤은 기침 별로 안 하는 것 같던데?]
[ 응, 약도 그렇고 삼계탕 덕분인지
아주 몸이 개운해졌어 ]
[ 이번에는 시댁에 못 들리겠네? ]
[ 응,,미팅이 많이 잡혀서 시간이 없어]
[ 알았어, 감기약 잘 챙겼어? ]
[ 응 ]
[ 역까지 같이 가자]
[ 왜? 괜찮아, 뭐하러 왔다 갔다 해~ ]
[ 아니야,,당신 가는 거 보고 싶어서,,]
이런 내가 이상했는지 알수 없는 표정을 하며
날 여러번 쳐다봤다.
[ 아프면 당신만 손해야, 당신이 매번
나한테 그랬잖아..그니까 아프지 마~ ]
[ 많이 좋아졌어..걱정 안 해도 돼 ]
신칸센 개찰구에 들어가기 전, 깨달음이
자기가 아프니까 내가 너무 잘해줘서 기분이
묘하다고 죽지 않을테니 신경쓰지 말란다.
[ ........................... ]
[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도착하면 전화 해~]
[ 알았어~]
깨달음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여름 런닝셔츠를 꺼내 파란색 꽃무늬를 놓았다.
신혼 초, 깨달음이 런닝 구별을 잘 못하겠다며
표시를 해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여름용는
파란색, 겨울용은 빨간색 꽃으로
알기 쉽게 해 놓았다.
실은, 아침에 깨달음 이마를 만져봤을 때
미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잔병치레를 원래 안 했던 사람인데
감기에 의한 기침이 시작되면 잠을 자다가도
몇 번이고 일어나 고통스럽게 기침을 한다.
쉽게 낫지 않아서 폐렴으로 갈 때도 있었고
천식으로 인해 호흡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피까지 섞여 나와서
상당히 신경이 쓰였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병원을 제대로 가질 못했다.
내겐 좋아졌다고 안심 시켰지만 몸상태가 썩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출장을 가야하고
내일 오후까지 스케쥴이 빼곡해서
시댁에도 못 가는 상황인 것이다..
사람이 몸 컨디션이 안 좋으면 모든 게 싫어지는데
깨달음은 밝은 표정으로 개찰구에 들어갔고
뒤를 돌아보며 들어가라고 몇 번이고
내게 손인사를 했다.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정으로,,의리로,,못 죽어,,못 헤어져서 등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부부는 측은지심으로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모든 사랑의 근본은 측은지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타인의 불행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끼는
마음으로 상대방에 대해 더욱 공감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는데 부부에게도
그 감정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공자는 남을 불쌍히 여기고 가엾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을 측은지심이라 했고
불교에서는 측은지심을 자비라 한다.
기독교에서는 박애라고 하고 노자는 이를
덕이라 표현했다고 한다.
말은 다르지만 본질적인 뜻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부부가 서로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살면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다고 했던
선배의 조언도 틀린 건 아니였다.
꼭 아파서가 아닌,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에
왠지 모를 연민과 짠한 마음이 밀려왔던 것 같다.
상대를 조금은 애잔하게 바라보는 그 마음이
있기에 많은 부부들이 티격태격 하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게다.
서로의 힘겨움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그것을 묵묵히 응원하고 꿋꿋히 버텨주는 모습이
고맙고, 짠하고 든든하고 그런 가보다.
측은지심이 생긴 것 보니 나 역시도
늙은게 분명한데 출장에서 돌아올 깨달음을
위해 원기회복 할 수 있는 음식들을
마련해 두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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