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맨션의 대대적인 외벽보수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24시간 커텐을 친 상태로
지내고 있다. 오늘도 아침 9시가 되자
왔다갔다 일하시는 분들의 발소리가 분주했다.
[ 깨달음, 우리는 안 보이겠지? ]
[ 응 ]
[ 안 비치는 커텐이니까 괜찮아 ]
[ 그래도 왠지 불안하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자꾸만 시선이 따라
움직여서 각자의 방에 커튼을 새로 하나씩
더 달기 위해 급한대로 이케야에 다녀왔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작업 스케쥴과 자재에
관한 2개의 판넬 게시판(안내판)이 놓여있다.
전체적인 공사과정과 한달별,주간별, 그리고
날마다 하는 일의 과정들이 공지되어 있다.
오늘은 어떤 작업을 하며 내일은 무엇을 할
예정이고, 세탁물을 베란다에 내 놓을 수
있는지에 관한 것도 각층, 각방별로 적어져있다.
다른 게시판에는 페인트의 색상, 천장의 자재,
마감처리 색상까지 샘플들을 제시해 두고
입주자들이 알기 쉽게 해놓았다.
매일 작업과정들의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는 걸 볼 때면 참 친절하다는 생각이든다.
집으로 돌아와 통풍이 잘 되고 자외선차단,
꽃가루방지도 한다는 속 커텐을 달고
작업하시는 분들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베란다에 놓아 둔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빨래 건조대, 접이식 의자, 큰세숫대아 등
은근히 베란다에 놓아둔 물건들이 많아
거실로 하나씩 넣어두고 마지막으로 상추와
깻잎 화분을 조심히 거실 가장자리로 옮겼다.
[ 깻잎은 아직 애기인데 상추는 지금 먹어도
될 것 같아, 진짜 많이 자랐다.. ]
[ 응, 샐러드하면 맛있을 거야 ]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추에 코를 박고
뜯어 먹는 깨달음,
[ 뭐 해? 먹는 거야? ]
[ 그냥 냄새를 맡아보려고 한국냄새 나는지 ]
[ 한국냄새는 안 나지 ]
[ 깻잎에서는 났어 ]
[ 깻잎은 한국 오리지널 야채고 향이 있으니까
나겠지만 상추는 원래 향이 별로 없잖아..]
[ 그래도 왠지 날 것 같은데..안 나네...]
그렇게 우린 주말의 오전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에 언제나처럼
자신의 방에 들어가 서로의 시간을 보냈다.
난 밀린 공부를 좀 해야해서
열공모드에 들어갔다.
나이 50을 넘겼어도 배워야하고 알아야 할게
세상엔 참 넘쳐나는 것 같다.
새로운 책을 펼칠 때마다 나보고
[ 사서 고생하는 징한년]이라고 했던 친구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난 책을 가까이 하고 있을 때가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3시간쯤 흘렀을까,,깨달음이 와서는
심심하다고 한국프로를 보여달라고 했다.
[ 그러니까 한국어를 알면 당신이 혼자서
사이트에 들어가 볼 수 있잖아 ]
[ 공부 하고 있어.. 조금씩.. ]
[ 진짜 하고 있는 거지? 뭐 보고 싶은데? ]
[ 그거,,트롯트,,,마지막회 안 봤잖아 ]
티브이에 연결을 해주고 난 다시 내 방에
들어와 있는데 얼마 안 되서 또 불렀다.
화질이 안 좋으니 좋은 사이트로 바꿔달라고,,
결승전에 오른 5명이 각자 노래를 부르는데
무엇 때문에 슬픈지 공감이 잘 안됐지만 깨달음은
수건까지 챙겨와서 눈물을 닦고 있었다.
[ 뭐가 그렇게 슬퍼?,,하나도 안 슬픈데..
당신은 스트레스가 없겠어.. 이렇게 펑펑
우니까 스트레스도 다 해소 될 것 같애 ]
[ 말 시키지마..노래 안 들려..]
[ ......................... ]
미스트롯이 결정되고 효콘서트를 한다는
예고가 나오자 티켓 없겠지라고 바로 묻는다.
[ 없지,,한국에서도 구하기 힘들거야 ]
[ 저런 콘서트에 한 번 가보고 싶어..]
[ 알았어 ]
[ 나 다른 거 틀어줘, 신동엽이 사회 보는 거]
불후의 명곡을 틀어주고 방에 가려는데
같이 보잔다.
[ 공부해야 돼 ]
[ 밤에 하면 되잖아, 같이 보면 더 재밌어,
그리고 노래 가사,,번역 좀 해줘..
그래야 온전히 노래의 감정이 느껴지잖아,,
아까도 무슨 내용의 가사인지 알고 싶었는데
당신이 안 나와서 그냥 가사 뜻도 모르고
넘어가버렸잖아,,]
그래서 난 옆에서 깨달음의 동시통역사가
되어 미스트롯을 다시 돌려 노랫말 의미를
설명해주고 가사해석까지 2시간을 넘겼다.
설운도씨가 부른 LOVE(윤현석)를 듣고는
원곡자가 부르는 것도 듣고 싶다고 해서
또 찾아 틀어주고,,
[ 깨달음,,, 재밌어? 좋아? ]
[ 응, 너무 좋아, 나는 이렇게 주말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쉬는 게 행복해 ]
[ 그 마음은 충분히 알겠는데 당신이 한국어
공부를 좀 하면 당신이 혼자서 마음껏 듣고 싶은
음악, 보고 싶은 프로 찾아서 볼 수 있잖아,
나 시키지 말고 ]
[ 아니야, 당신이 알기 쉽게 번역해주고
가수들의 개인사도 말해주니까 노래와
가사가 귀에 더 착착 잘 들어 와서 좋아 ]
[ 삔질거리지말고 제대로 공부 좀 하라고!! ]
[ 난 당신처럼 공부에 취미가 없어..
그리고 나 한국말 꽤 많이 알고 있어..
못 읽어서 그렇지..]
[ ............................ ]
어떻게해야 깨달음이 흥미를 가지고 한국어에
열중을 할지 방법을 못 찾고 있다.
한국에 가서 살게 되면 어학원에 다니면서
제대로 배울거니까 지금은 대충만 할거라는
깨달음을 어찌 가르쳐야할지 당최 모르겠다.
내가 길을 잘 못들인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고쳐야할지,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할 것 같은데 깨달음이
요리조리 잔 꾀를 부려서 진전이 없다..
내 잘못이 크다..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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