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우리 교회에 한국과 타이완에 있는
자매교회에서 1년에 한번씩 열리는 친목
교류행사 참석을 위해 각 나라에서 23명씩의
성도들이 방문을 했다.
예배를 마치고 쇼핑을 하기위해 신주쿠로 나와
식사를 하는데 깨달음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이런 시끄러운 상황인데 일부러 일본에 와 줘서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분들께
식사대접을 하고 싶었는데... ]
[ 그랬어? 그럼 미리 말을 할 걸 그랬다.
근데 왜 아까 한국팀이 찬양할 때 울었어?]
[ 한국어로 부르니까 괜히 더 멜로디가 슬프게
들리는 것 같고 특히 광주에서 왔다고 하니까
왠지 더 뭉클했어 ]
깨달음은 종교의 힘이 대단하다, 서울도 아닌
광주에서 어떻게 자매교회가 됐을까,
광주 어디쯤에 있는 교회인지 신기하고
친근감이 든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즐거운 시간은 보낼까.
뭘 먹는지도 궁금해 진다며 약간 고조된
상태로 얘길 계속 했지만
난 그냥 조용히 듣기만 했다.
한일관계가 어지러워질수록 내 가슴에서
자꾸만 커져가는 뜨거운 그 무엇이
나를 침묵하게 했다.
식사를 마치고 쇼핑을 끝낸 우린 깨달음이
팥빙수를 먹자고 해서 신오쿠보(코리아타운)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35도를 웃도는
한여름인데 치즈핫도그를 먹기위해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가며 기다리는 10대,
20대의 행렬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였다.
커피숍에 들어가기 전에 꼭 만두를 또 사겠다는
깨달음의 고집을 못 뿌리치고 두봉지를 샀다.
[ 집에 아직 한 봉 있는데 왜 또 사자는 거야? ]
[ 떡만두국이랑 해먹으면 금방 없어지잖아,
온 김에 사다 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
[ 그렇게 먹었는데 질리지 않아? ]
[ 응, 난 맛있는 건 안 질려 ]
커피숍에 들어와서는 팥빙수를 주문하고
갑자기 얼굴에 꽃받침을 하기도 하고 자기가
만들 수있는 제일 큰 하트를 양 팔을 접어가며
만들기도 하고 기분이 상당히 업 된 상태였다.
[ 그런 모양 만드는 건 또 어디서 봤어? ]
[ 한국프로 어디에선 가 본 것 같애]
[ 당신,요즘 여성 호르몬이 대량 분비되는 것 같애]
[ 왜? ]
[ 울기도 잘 하고 감성에 취해있는 것도 같고..]
[ 나도 잘 모르겠는데 몇 년전부터 내 DNA에
정말 한국인의 피가 있는게 아닌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어 ]
지난번 한국에서 짧은 3박4일을 보내며
잠깐 친정엄마를 보기위해 광주에 내려갔던 날,
동생네가 준비해준 점심을 먹기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동생이 요즘 무슨 노래 듣자고 물었고
미스트롯 본 후로는 송가인의 노래를 많이
듣는다고 하자 [한 많은 대동강]을 틀어줬는데
한참 잘 듣고 있던 깨달음이 나한테 티슈를
달라며 뒤를 돌았는데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엄마랑 여동생은 그걸 보고
무슨 일이냐고 놀랐고 나는 그냥 티슈를 건냈다.
[ 엄마,,원래 잘 울어, 걱정 안하셔도 돼]
[ 그래도 뭔일이다냐,가사도 모를 것인디]
[ 감성으로 가슴으로 느낀대 ]
[ 오메..별일이네...깨서방이 운께 나도
괜히 눈물이 나네..]
그렇게 마무리가 되려고 했는데 다음곡
[ 단장의 미아리 고개 ]가 흘러나오고 노래 중간에
송가인이 읊조리는 마지막 대사 [ 여보~~]가
불러지자 깨달음은 곡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서럽게 우는
깨달음을 보고는 운전을 하던 제부가 놀래서
두 손을 꼭 잡아주기도 하고 티슈를 몇 장이나
다시 건네주며 안타까워했다.
엄마와 동생도 너무 서럽게 우는 깨달음 따라서
같이 울다가 왜 저렇게도 서글피 우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 원래, 한국 노래를 들으면 잘 울어.이 은미,
박 정현 노래를 들어도 백지영도 그렇고,,
꼭 송가인이여서가 아니라 잘 우는데
송가인 노래는 지금껏 들어왔던 노래와 달리
들으면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고 그래서
아파서 운대..]
[ 희한하네..한국인의 한을 알까? ]
[ 나름 알고 있다고 하는데 모르겠어.
너무 감성적인 면이 많아서도 그러는 것 같애 ]
일본에 돌아온 후, 제부는 그 날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부부싸움을 크게 한 게 아니야,
아니면 혹 형님 마음에 무슨 슬픔이 있는게
아니냐며 걱정을 많이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서울에서 마지막날, 종로의 모 보쌈집에서
깨달음이 한국에서의 시간을 돌아다보며
왜 자기는 한국에 관한 모든 것에 이렇게
민감하고 감성적으로 반응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말 자신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섞였는지
모르겠다는 얘길 꺼냈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100% 일본인이라 지금껏 생각하고 살았는데
나와 결혼을 하고서부터 의문이 깊어갔단다.
자기에게 한국인의 피가 섞일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할아버지(아빠쪽)이 의심스럽단다, 할아버지는
그 마을에서 최고로 바람둥이로 소문이 났던
멋쟁이였는데 술과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
마을 처녀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할머니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단다.
혹 그 당시, 재일교포 중에 예쁜 한국 아가씨와의
사이에게 자신의 아빠(시아버지)를 낳은 게
아닌가 싶다며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단다.
아빠가 양자로 엄마집으로 장가로 온 것도 그렇고
어릴적 학교도 안 보내주고 고생을 엄청 많이 했던
것을 보면 그런 이유에서가 아닌가 싶단다.
어머니쪽은 전혀 한국과 관련된 것이 없는데
유일하게 의심되는 곳이 그 할아버지쪽이라며
그게 아니라면 그 윗대 할아버지도
놀기 좋아했다고 하니까 그럴 수도 있단다.
자신의 예측이 진실이면 자기는 4분의 1, 아니
8분의 1이 한국인이라며 근거도 확실히 않는
추측만으로 자신의 출생을 파헤쳤다.
요즘에 와서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도대체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이 알 수없는 슬픔과
서글픔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자신의 DNA속에
숨겨진 진실을 밝히고 싶은 생각이 강하진다며
언젠가 시간이 되면 차분히 자신의 루트를
조사해 보고 싶다고 했다.
8년전, 결혼식 날,
깨달음은 한복을 입으면서 처음으로 울었다.
한복을 입는 순간, 너무나도 복잡한 감정들이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면서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한참을 슬퍼했다.
그 이후, 해년마다 깨달음은 눈물을 보이는 횟수가
잦아졌고 그 슬픔의 정체를
모른체 지금껏 지내왔다.
그런데,,요즘은 자신의 내면과 자신의 몸 속에
흐르는 피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한다.
8년을 같이 살지만 나도 깨달음을 잘 모르겠다.
추측과 상상만으로 만들어진 거라 생각하다가도
행여나, 혹시나,,정말 출생에 그런 사연이
있어서 이 남자가 이렇게 한국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착각할 때도 있다.
그저 중년을 넘어 노년의 길에 접어들어섰기에
그러는 것 뿐이라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냉정하게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상상의 나래 속에 자신이 어쩌면 한국인의 피가
섞었을지 모른다는 달콤한 꿈을 조금 더 꾸도록
잠시동안만은 조용히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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