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가게 안은
손님들이 많았다. 35도를 넘는 더위에
온 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살인더위를 뚫고
찾아간 곳은 깨달음의 퇴원 축하를 위한,
그리고 먹고 싶어했던 감자탕을 먹기 위해서다.
[ 여기가 당신이 오고 싶어 했던 곳이야? ]
[ 응, 여기가 재일교포 여자모델(안 미카)이
절찬을 했던 곳이야, 아주 옛날에 20년전엔가
한번 왔던 기억이 있는데 그 뒤로 잊고 있었거든.
근데 지난주에 테레비에서그 모델이 나와서 자기
인생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하는데
다시 와 보고 싶었어 ]
난 솔직히 가게 입구에서부터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냥 깨달음 원하는대로 해주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 깨달음, 퇴원을 축하해 ]
먼저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골뱅이무침과
감자탕을 주문했다.
[ 메뉴가 진짜 많아, 거의 다 있어 ]
[ 깨달음,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 ]
[ 골뱅이를 일단 먹어 보고 주문할래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뭔가 더 시키고 싶은지
메뉴를 하나씩 천천히 훓어보더니만
가격이 한국의 2배가 넘는다면서 웃는다.
좀처럼 가격 얘길 안 하는데 한국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낯설다고 했다.
[우리 종로에서 정말 맛있는 거 많이 먹었지? ]
깨달음이 먼저 종로 얘길 꺼냈다.
[ 응, 당신은 뭐가 제일 좋았어?]
[ 아침 생선구이 정식이 정말 좋았어,
돌솥밥에 생선이랑 된장찌개, 반찬도 많고,
그 외에 북엇국도 뼈해장국도 다 맛있었어 ]
깨달음은 지난번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해서 잠시 이곳이 한국인가 싶다가도
일본어가 눈에 띄면 정신을 차린단다.
[ 골뱅이 무침 어때? ]
[ ...........맛있네...]
두번 집어먹고는 지난 6월에 이곳 코리아타운에
오픈했다는 [수미네 반찬]의 수미네에 갔을 때
주문했던 골뱅이 무침과 어떻게 다른지 아주
세세하게 한식 세프처럼 코맨트가
막힘없이, 거침없이 분석을 해나갔다.
https://keijapan.tistory.com/1264
(엄마의 손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 당신,,혀가 완전 한국사람 다 됐네,,]
[ 내 혀는 일반 일본인과는 다르지, 특히
한국음식은 내가 좀 알지... ]
[ 알았어.그래도 막걸리랑 어울리니까 먹어]
깨달음은 감자탕에 국물을 끼얹으며
뼈에 국물이 스며들기를 기다렸다.
[ 좀 더 국물이 배이면 맛있을 거야 ]
[ 이 국물에 살을 적셔 먹으면 맛있어 ]
뼈를 잡고 발골을 하는 모습이 귀엽다.
[ 깨달음, 어때? 맛있어? ]
[ 맛있어, 맛있는데 살이 별로 없어, 지난번
한국에서 뼈해장국 먹었을 때는 살이 엄청
붙어 있었는데 ]
[ 여기 일본에서는 살이 많이 붙은 뼈를 찾기
힘들어라구, 그래서 나도 집에서 감자탕 할때는
등갈비라 섞어서 하잖아]
[ 원래 이런 건가,,,,,]
한국에서 먹었던 돼지뼈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당연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뼈를 예쁘게, 그리고 깨끗히 발라 먹고
마지막으로 볶은밥을 주문했다.
[ 이게 그 안미카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맛있다고 그랬던 거야]
[ 그래?]
남학생이 맛있게 비벼서 드디어 완성된
볶은밥을 한술 떠 먹고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 왜? ]
[ 내가 생각한 볶음밥처럼
꼬들꼬들한 걸 원했는데 ]
[ 불을 계속 커놓고 수분을 날리면 돼 ]
약한 불을 켜 놓고 깨달음이 주문을 외우듯
주걱으로 돌리기를 한참 했는데 먹고
싶어하는 한국식 볶은밥은 되지 않았다.
[ 깨달음,이건 볶은밥이 아니라
오지야 (おじや-밥알이 그대로인 죽종류)야,,
그래서 한국식으로 안 되는 것 같애,
일본사람들이 오지야를 좋아하잖아,
그니까 안 미카도 맛있다고 했겠지... ]
[ 나는 오지야가 아니라 볶은밥처럼 밥이
고실고실하고 누룽지도 긁어 먹고 싶은데..]
[ 알아,,무슨 말인지 아는데 여기서는 당신이
원하는 게 안 만들어질 것 같애,
그리고 깨달음, 여긴 한국이 아니야,, ]
그렇지 않아도 쳐진 깨달음 눈꼬리가
맥없이 더 추욱 쳐졌다. 더 이상 설명을 해도
상황에 변화가 없을 것 같아서
얼른 계산을 하고 나왔다.
(아주 개인적인 입맛에 의한 의견이니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가게를 나와 곳곳에 있는 한국식당 간판
앞에 멈춰서서 메뉴들을 하나씩 읽어가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 깨달음, 한국마트에서 뭐 좀 살까? ]
[ 음,,,나 참외 먹을래 ]
[ 그래 참외 사자 ]
참외와 젓갈을 몇 가지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삭아삭한 참외를 먹으며 갑자기 고맙단다.
[ 뭐가? 아 퇴원 축하해 줘서? ]
[ 아니. 지금까지 집에서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줘서.오늘 다시 한번 당신한테 감사함을
느꼈어, 그리고 장모님께도 감사하게 생각해 ]
지금껏 자신이 결혼을 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먹었던 한국음식들이 얼마나 맛있고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간 것인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며 뭐니뭐니해도 집밥이 최고란다.
[ 콩나물 무침 하나만 있어도 고추장 넣어
비벼 먹다가 김에 싸 먹으면 완전 맛있잖아,
그걸 이제야 알았어.. 집에서 먹는게
얼마나 감사한지...여러가지 반찬 먹고
싶다고 해서 미안해 ]
[ 미안하긴, 나도 반찬 많은 게 좋아서 했어]
그렇게 깨달음은 다시한번 집밥에 감사,
그 집밥을 만든 이에 대한 경의를
동시에 표했다. 자신이 먹고 싶다는
한국요리를 별 어려움 없이 만들어 내주기
때문에 감사함을 잊어버렸다고 한다.
[ 맛도 중요하겠지만 음식을 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고스란히 들어가서
집밥은 특별한 가 봐, 그래서 좋아 ]
확실히 집밥의 정의를 알게 된 깨달음은
한국에서 먹었던 모든 음식맛을
온 몸이, 온 세포가 다 기억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도저히 일본인 입맛이라 볼 수 없는 깨달음은
이젠 내 손맛에 익숙해져서도
집밥이 최고라 하는 것 같다.
[ 깨달음, 내일은 떡국에 만두 좀 넣고
떡만두국 해줄까? ]
[ 응, 좋아요, 좋아요~ ]
가끔은 한국사람보다 더 까다롭게 굴 때가 있어
귀찮았던 적도 있었지만 매 한끼, 한끼,
일주일의 반이상이 한국음식인데도 감사의
마음으로 맛있게 먹어주는 깨달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될 것 같다.
'일본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가 덜 아팠으면 한다 (1) | 2019.09.16 |
---|---|
시어머님은 건강하셨다 (2) | 2019.08.21 |
결혼 9주년, 감사하며 살자 (1) | 2019.07.10 |
돈 계산법이 남다른 남편은 역시 일본인 (4) | 2019.06.30 |
일본여성이 말하는 한국남성의 장단점 (7) | 2019.06.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