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도 깨달음은 회사에 나가 도면을 치느라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갑자기 일이
밀려들 때면 깨달음은 주말이나 휴일
상관없이 회사에서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다.
지금껏 휴일에도 바쁠 땐 일을 우선으로 하는
깨달음 스타일에 한 번도 불만을 갖지 않았던
나는 오늘도 샌드위치 도시락을 챙겨주었고
깨달음은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오후 4시, 나는 집에서, 깨달음은 회사에서
출발을 해 만난 곳은 토리노이치(酉の市)가
열리는 신주쿠(新宿)의
하나조노 신사 (花園神社)였다.
토리노이치(酉の市)는 애도 시대 때 중국에서
농민들을 위해 올리던 수확제를 기원으로
매년 11월에 진행되는 축제이다.
근대사회에 넘어오면서 사업번창을 목적으로
곰발바닥 모양으로 생긴 쿠마테 (熊手)을
판매하는 축제가 되었다. 복을 긁어 모은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쿠마테 (熊手)는 행운, 장수,
금전운, 명예, 교통안전, 가내평안까지
자신들에게 필요한 희망사항을 담아
필요한 장식들로 꾸며 구매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업이나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이 축제의 주인공임은 변함이 없다.
[ 올해 쿠마테는 헌납했어? ]
[ 응,, 곧 있으면 모아서 다 태울 거야.]
매년 몇십만 원 주고 산 쿠마테를 1년만
장식해두고 매년 새 것으로 산다는 자체가
엄청난 낭비라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지금껏 10년간 난 아깝다는 말은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사업번창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깨달음에게 종교적이든 현실적이든
이성적으로 얘기를 할 필요가 없었기에
기분 좋게 구매를 해왔다.
[ 내년이 범띠여서 올해는 호랑이 장식이
많이 달려 있네 ]
[ 그러네..]
우리가 5년째 같은 곳에서 구매를 한 덕분에
아저씨는 우릴 금방 알아보고 깨달음 회사명이
적힌 팻말을 집어 들고는 올 해도 코로나
때문에 힘들지 않으셨냐며 내년에는
사업이 더 잘 되시라고 운기이 좋은 것들만
모아, 모아 만들었다며 골라보라고 하셨다.
나를 한 번 쳐다보면서 뭘 고를지 몰라
망설이기에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걸로
골라보라고 했더니 복을 몰아오는 7명의 신,
칠복신 (七福神)이 달린 쿠마테를 골랐다.
깨달음이 원하는 장식들을 붙이고, 붙이고,
또 붙이기를 계속한 뒤 직원분들이 모여
사업번창을 기원하는 성대하고 요란한?
삼삼칠 박수를 받고 신사를 빠져나온 후,
우린 회사로 돌아와 쿠마테를 두고 나왔다.
[ 깨달음,,제품 번호는 알지? ]
[ 카탈로그를 가져와서 금방 찾을 거야]
[ 아, 회사에서 쓸 책상도 필요하다며? ]
[ 응, 가 보고 있으면 살 생각이야,,]
깨달음 대학동기였던 친구가 회사를 접으면서
직원을 깨달음에게 부탁해왔다.
그래서 필요한 사무용품들이 있었고
나는 나대로 꼭 사야할 게 있어
무지루시(無印良品)로 향했다.
시댁에서 가져온 그릇들을 수납하기 위해서는
좀 큰 사이즈의 수납장이 필요했다.
냄비, 파티용접시, 쟁반, 다도세트까지
시어머님 주방엔 포장도 뜯지 않는
그릇과 주방용품이 꽤나 많았다.
깨달음이 일단 미리 봐 둔 상품이
있어 주문하는데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고 직원용 사무용품은 그 직원에게
직접 고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매장을 나왔다.
[ 저녁 먹고 갈까? ]
[ 집에 가서 먹어도 될 것 같은데 ]
[ 아니..그냥 귀찮으니까 먹고 가자 ]
맥주를 마실 거냐고 묻길래 별로 안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오늘 여러 가지로 고맙단다.
[ 고마워할 게 뭐가 있어. 당연히 내가 할 일인데 ]
[ 비싼 쿠마테도 사주고, 그리고,, 주말인데
어제와 오늘,,회사에서 일만 하고...
괜히 미안해지네......]
[ 괜찮아.미안해 하지 마....]
우리 주말에도 함께 움직일 스케줄이 없으면 각자
자기 방에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깨달음이 회사를 간다고 해도
내겐 특별할 것도 서운한 것도 전혀 없다.
[ 깨달음,, 일도 중요하지만,, 건강이야,, 알지?
오랜만에 바빠져서 당신은 좋겠지만,
건강관리하면서 일했으면 해 ]
[ 알았어. 근데 내가 아까 쿠마테 살 때
칠복신을 왜 골랐는지 알아? 거기 7명의
신 중에 주로진(寿老人)이라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인물이 있는데 그분이 건강,장수를
상징하거든, 그래서 건강하게 내년 한 해도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에서
그 걸 고른 거야 ]
[ 잘했어 ]
식사를 하며 깨달음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내년 스케줄을 말하면서 내년엔 왠지
많이 바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 바쁘면 좋지만 그래도 우선은 건강이야 ]
[ 알지..근데 요즘 나는 꿈도 좋은 꿈을 자주 꾸고
몸 컨디션도 너무 좋아, 지난달, 건강검진에서도
내 나이보다 10년은 젊게 나왔어..
완전 건강하대. ]
아무튼, 너무 과신하면 안 되니까 적당히.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하길 바란다고 했더니
무엇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여름이 지나고부터
일 뿐만이 아니라 여러면으로 자기 주변에
기분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기고 있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깨달음이 오늘에
좋은 기운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게
연하장을 또 사겠다고 했다.
[ 그만 사,, 내가 이미 샀어,, 깨달음.. ]
[ 아니야,, 이렇게 좋은 기분일 때는 다른
사람에게도 함께 나눠줘야 돼.
행운은 나누 가져야 더 좋은 거야 ]
술도 안 마셨는데 깨달음은 왠지 들떠 보였다.
코로나로 근 2년간 회사 재정이 힘들었던 만큼
바빠지기 시작한 요즘이 깨달음에게는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인 것 같다.
올 연하장엔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가 아닌
행운을 드립니다라고 쓸 거라는 깨달음..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깨달음이 지금
느끼는 행복과 행운을 모두에게
나눈다고 하니 난 그대로 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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