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인지
산책 나온 사람들이 거의 없다.
햇살이 있는 동안 얼른 다녀오자며
우산을 챙겨 나왔다. 서쪽하늘엔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오는 동안 우린 말이 없었다.
곧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데 뭘 준비해야 하나,,
물먹는 하마를 몇 개 더 사둬야겠고,,
또 오늘 저녁메뉴는 뭐가
좋을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걸었다.
[ 역시 숲이 있으니까 공기가 다르지? ]
[ 응 ]
짹짹거리는 새소리 사이로 깨달음이
말을 걸었다.
[ 깨달음,,저녁은 뭐 먹고 싶어?]
[ 오코노미야끼 ]
[ 그래..알았어. 저기 다리 건너 마트에서
장 보고 갈까? ]
[ 응, 알았어 ]
대화는 늘 이렇게 끝난다. 요즘 들어 부쩍 우린
대화가 짧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닌데 아주 단조로워졌다.
20분쯤 더 걷다 마트에 들러 몇가지
구입하고 나오는데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깨달음이 커피숍 쪽으로 나를 밀었다.
[ 우리 커피 마시고 가자 ]
[ 그래. 비도 오고,,]
캐러멜 마키아또에 샌드위치도 함께 놓여있다.
[ 왜 샀어? ]
[ 그냥,, 심심할까 봐..]
깨달음은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고 나는 빗줄기가 언제나 그칠까해서
자꾸만 밖을 내다봤다.
[ 깨달음,, 우리 권태기인가? ]
[ 갑자기 왜 그래? ]
[ 그냥,,]
[ 왜? 지겨워? ]
[ 아니,, 아무 감정이 없어서...
사는 게 무미건조하다고나 할까..]
[ 다른 부부들도 다 그러지 않을까? ]
[ 당신은 어때? ]
[ 나는 아주 좋아, 안정적이라고 할까..
예전처럼 말다툼도 이젠 전혀 없고,, 그래서
난 행복해. 당신은 안 행복해?]
[ 행복한 건지.. 잘 모르겠어 ]
대략 일주일에 한 번쯤은 말다툼을 했던 것 같다.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깨달음에게
왜 그러냐, 왜 자꾸 잊어버리냐며 말씨름을
했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러니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 고쳐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정한 것도 아닌
그냥 그 문제에 대해 언급을 안 할 뿐이다.
같은 주제의 다툼을 거의 10년 동안 해왔기
때문에 서로 지친 것도 있고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졌다.
그렇게 한숨 한 번 쉬고 넘어가버리니
서로 얼굴 붉힐 일이 확실히 줄었다.
그 외에 변한 게 있다면 각자 자기 일, 취미에
더 많은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화도 짧아진 것 같다.
쉬는 날이면 깨달음은 하루종일 한국 드라마
보느라 시간을 보내고,,난 내 방에서
내 일을 하느라 식사시간 외에
거실로 나가지 않을 때도 많다.
https://keijapan.tistory.com/1398
[ 10년 살면 다른 부부들도 다 이러겠지? ]
내가 되물었다.
[ 그러겠지.. 뭐 특별한 게 있겠어? 그리고
코로나 전에는 함께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맛집 찾아다니며 먹으러 다녔는데
지금 전혀 그러질 못하니까
사는 재미가 없는 거겠지..]
사는 재미.. 맞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였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 상황에서
사는 재미 같은 사치스러운 생각은 잊은 채
버티고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그저
하루하루가 별 일 없이 지나감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데 내가 배부른
투정을 한 꼴이되었다.
[ 그럼, 지금 내 이 심리적 상태가
코로나 블루라는 거야? ,,,]
[ 특히 당신은 한국에 못 가서 더 그런 것도 있고
백신을 언제 맞을지 여기서는 답도 안 보이니까
초조하고 불안감이 더 해서 그럴꺼야.]
https://keijapan.tistory.com/1409
[ 당신에게 아무런 느낌이 없는 건 뭐지? ]
[ 그건, 서로가 익숙해져서겠지, 가족이니까 ]
[ 맞다. 우리 가족이지.. 그럼, 우리 부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네 ]
[ 응, 우리 부부뿐만이 아니라 코로나가 끝나야
모든 사람들이 이 우울감이랑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
[ 당신도 우울했어? ]
[ 그렇지. 회사도 그렇고,,재밌는 일이
생길래야 생길 수 없는 현실이잖아, 지금이 ]
솔직히 깨달음이 회사 일로 고민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우울했다는 건 몰랐다.
https://keijapan.tistory.com/1275
[ 깨달음, 당신은 나랑 살면서 뭐가
재밌었어? ]
[ 다 좋았는데 여행다니는 게 최고였지 ]
[ 나도 그래, 여행제한이 풀리면
우리 하와이 가자 ]
[ 먼저 한국 가야지 ]
[ ...................................... ]
여행 얘기가 나오자 언제 그랬냐싶을 정도로
둘이서 텐션을 올려 한참을 떠들었다.
머릿속이 멍하고 감정선이 무뎌진
시간들이 지속됐던 건 코로나가 가져다준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권태기처럼 무감각해진 내 세포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깨달음 손을 한번
잡아보려고 했더니 옆 테이블에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얼른 뿌리쳤다.
권태기가 맞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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