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출근을 하자 바로 집안일을
서둘러 끝냈다.
구에서 나온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산부인과, 치과, 내과를 돌아다녀야 해서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구청에서 지정한 병원에서만 진찰을
받을 수 있기에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그리고 전철로 이동해야 하는 곳으로
예약을 했다.
한동안 안 왔던 병원인데 또 이렇게
와서 보니 침울한 기억들만 떠올랐다.
예약은 했지만 늘 번호표를 뽑아야 하는
시스템이기에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다.
휠체어를 아주 능숙하게 밀고 다니는
30대 후반쯤에 남자는 카운터에서
간호사와 무슨 얘길 나누다가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이번에는 정수기 쪽으로 가서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간호사가 그 곁으로 가서는 소변이
너무 적다면서 1시간쯤 후에 다시
받아올 수 있냐고 물었다.
사람들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던 건
휠체어 운전을 잘하는 것도 있었지만
한쪽 다리가 없이 왼쪽 바지가 묶여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를 보며 다들 각자 상상을 했을 것이고
나 또한 아직 젊은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추측해 보았다.
그나저나 아픈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끊임없이 번호표 뽑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기다린지 정확히 10분이 지나
내 차례가 됐고 5분 만에 진찰은 끝났다.
다음은 치과를 가야 해서 다시 집 쪽으로
걸었다. 깨달음에게서 연락이 왔던 건
내가 치과를 들어설 때였고
정기검진 외에 스케일링도 예약을
한 상태여서 시간이 좀 걸렸다.
약 40분의 진료가 끝나고 깨달음에게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저녁에 외식하잔다.
아직 산부인과 검진이 남아 있으니
끝나면 연락을 하겠다고 하고
나는 전철을 탔다.
집에서 좀 거리가 있었지만 여의사가
있어서인지 산부인과 병동은
젊은 아가씨들이 가득했고
그 속에 몇 명의 중년 아줌마들은
나처럼 구에서 실시하는
정기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이었다.
[ 어땠어? ]
[ 아직 결과는 다음 주쯤에나 나온대,
근데.. 어딜 가나 내과, 외과 할 것 없이
환자들이 넘쳐나네.. 종합병원이어서인지..]
[ 나이 들면 몸이 불편해서 병원을 찾고
젊은이들이 병원을 찾는 건 마음이
아파서 찾은 거겠지..,,,]
[ 맞아,,..]
나는 내과에서 봤던 휠체어 탄 청년
얘길을 하며 그가 다리를 잃게 된
스토리를 멋대로 상상한 걸 말했다.
내 얘길 듣던 깨달음이 외국인이었냐고 물었다.
[ 아니, 일본인이었어. 이름도 ]
[ 요즘, 건설 현장에 50%가 외국인 노동자인데
일본어가 서툴러서 지시를 잘 못 알아듣고
일을 하다가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사망사고까지 나는 경우가 많거든,,]
[ 아,, 그래..]
우린, 앞으로 나이를 들면 들수록
병원신세를 질 일이 많이 생길 테니
되도록이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다짐 같은 걸 했다.
[ 해외에서 아프면 더 서럽다고 당신이
그랬으니까 지금처럼 몸 관리 잘하고
오래오래 이렇게 맛있는 거 먹으러
돌아다니자 ]
[ 응,,]
작년부터 난 병원을 다니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서
1년에 한 번 종합건강을 하는 걸로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 아,, 근데 내가 한국에서 살 게 되면
내가 외국인이 되네..]
[ 그러지...]
[ 난 괜찮을 거야, 한국 음식도 뭐든지
잘 먹고 적응을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
[ 그럴 거라 믿어,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 공부 좀 더 열심히 해 ]
[ 아,, 그 말하지 마,, 스트레스받아서
병 나,, 열심히 하고 있단 말이야,,,]
[ ........................... ]
몸이 아프면, 마음과 정서까지
허허롭고 피폐해졌다. 특히나 해외에서
병원을 찾다 보면 낯섦에, 오롯이
혼자임에 서러움이 더했던 기억이 있다.
이젠 다시 건강을 되찾았으니
매일매일 감사하며 살 생각이다.
깨달음도 나도 나이 들면서 찾아오는 병은
어쩔 수 없겠지만 지금처럼
관리하며 서로를 챙겨주다 보면
잘 이겨낼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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