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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6개월, 블로그를 쉬었다 -1

by 일본의 케이 2024.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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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쉬고 2주가 지나서 제일 먼저

연락을 해 온 건 여동생이었다.

바쁜 건지, 무슨 일 있는 건지 물었다.

이웃님들에게 메일이 오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 무렵부터였다.

딱 한 달이 지나던 날, 한국에서

후배를 만났을 때 궁금한 게 있다며

왜 갑자기 블로그를 안 하는 거냐고 물었다.

[ 음,,, 단순히 쉬고 싶었어, 안식년 같은,,]

[  무슨 일 있었어요? ]

[ 아니...]

[ 그만두면 그만두겠다고 분명 공지를

할 사람인데 그런 말도 한마디 없고

쉰다는 말도 없고,,, 도대체 뭔 일일까

싶었는데  그만둔다는 공지가 없었으니

그냥  언젠가 무슨 말이 있겠지 했네요  ]

[ 맞아,, 니가 제대로 내 맘을 읽었네..

그냥 기간을 정하지 않은 상태로

무작정 쉬고 싶었어... 무기한대로,,,,]

 

굳이 말하자면 

휴식이 필요했던 이유는 꽤나 많았다.

 이 블로그가 12년을 넘게 같은 주인공

둘이서 출연을 하다 보니 케이와 깨서방이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너무 고착되어 있어서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케이는 까칠하고 병치레가 잦은 아줌마로

깨달음은 한국과자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저씨로 다들 알고 있지만

케이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건강에 별 문제가 없고 깨달음은

한국 과자를 안 먹은 지 상당히 오래됐다.

 

블로그를 쉬는 동안 난 두 팀의 이웃님을

도쿄에서 만났다.

남편과 처음으로 도쿄에 놀러 오셨다는 분은

저희 집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이틀간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꽤나 많은 얘길 나눌 수 있었다.

[  블로그,, 그만 두실 건 아니죠?   ]

[ 그건 아니고, 정말 쉬고 싶어서요,,

저,, 한국에 가면 호텔이나 식당에서

 불편한 거나 불만 있어도 그냥 아무 말도

못 하고 나와요, 혹시나,, 케이나 깨서방

아시는 분들 있을까 싶어서...

이미지 관리하느라고,,ㅎㅎ]

[ 그러시구나.. 나도 깨서방님 금방

알겠더라구요 ]

[ 좀 오버스럽다 하시겠지만,그런 것에서도

좀 자유롭고 싶었어요 ] 

 

 후배에게 난 이런 말을 했었다.

깨달음과 결혼을 하던 그 해부터

지금까지 일본인 남편과 함께하는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나와 깨달음에게 어떤 형태로

남게 될지 모르겠다고.

 

우리 블로그가 왜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물론 주인공인 깨달음 인기가 주된 이유겠지만

늘 변함없이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은 것에 대해 너무도 감사할 일이지만

기약 없이 습관처럼 별반 다를 것 없는

반복된 일상들을 그냥 기록으로 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그만둔다면 나는 과연

글을 쓰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라고

자문을 해보면 그럴 수는 없었다.

 

실은, 블로그를 쉬었던 6개월간

다른 곳에 난 글을 남겼다.

케이가 아닌, 깨달음도 등장하지 않은 

그냥 50대 후반 아줌마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번뇌와 생각들을.

 수의가 높은 성적인 얘기나 정치 얘기,

정말 최악의 일본인, 한국인들에

험하고 잔혹한 얘기들을 이것저것

의식하지 않고 써내려 갈 수 있어서 좋았다.

포장하지 않은 아주 날 것 그대로 

내 생각들을 그 날 있었던 사실을

리얼하게  써내려갈 수 있어서 편했다.

 

하지만 그런 글은 이곳 티스토리에선

아니  [케이의 일본생활]에서는

담을 수 없어 답답함과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어도 언어순화도

시키고 에둘러 표현해 부드럽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쓰다 보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각색된 글만

남게 되는 게 많았다.

6월달, 2주에 걸쳐 , 난 깨달음에게 조금은

심각하게 이런 내 고민들과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티스토리는 자기 얘기만 위주로 쓰고

다른 곳에서는 정말 쓰고 싶은 것들을

쓰면 되지 않겠냐고 그런다.

[ 블로그에 사용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두 개나 하라고? ]

[ 그럼, 그냥 인스타만 해 ]

[ 하긴 인스타가 편하긴 하더라..

그 때 그 때 바로 바로 올리고 글도

길게 쓸 필요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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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 오랜된 고민거리지만,,쓸 소재가 없어,

특히 당신에 대해 더 이상 쓸 게 없어.

지금껏 맨날 좋은 얘기만 해서, 당신이 얼마나

나쁜 구석이 많은 사람인지

얘길 해도 안 믿을 거야 ]

[ 그럼, 쓰고 싶으면  써, 나쁜 거 ]

[ 정말 못 된 인간성도 모조리 써? ]

[ 그래 써, 괜찮아 ]

내가 안 쓸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쓰라고 하면서도 진심이 아니었다.

[ 정말, 쓴다 ]

[ 써,, 근데.. 누구 욕하는 거 쓰면 그걸 

읽는 사람은 기분이 좋을까?  읽어서

기분 좋은 것만 쓰는 게 좋지 않아? ]

[ 그래서  당신과 있었던 큰 사건은 아예 적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되도록이면  나름 포장하고

좋게 좋게 편집해서 썼잖아,,

그니까 항상 개운치 않았다는 거지..

글 쓰는 사람으로서, 특히 나는 팩트를

중시하고 리얼리티 한 사실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포장지로 가려서 쓰니까,,그걸

지금 10년이 넘게 하고 있잖아,,]

 

[ 그럼 있는 그대로 쓰면 되잖아 ]

[ 좋은 것만 쓰라며? ]

[ 나는. 당신이 스트레스받지 않은 상태에서

했으면 해.. 그니까 쓰고 싶은 거

개의치 말고 그냥 써,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

[ ............................... ]

결론은 나질 않았다.

그냥 무기한으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던 게

사실이지만. 6개월 동안 보내주신 메일과

댓글, 방문록에 글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깨달음도, 나도 

 더 이상 쉬면 안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좁혀졌다.

[ 깨달음, 정말 당신에 대해 낱낱이 쓴다, 알았지? ]

[ 써,,그래도 너무 나쁘게는 쓰지 말아 줘 ]

[ .......................... ]

여러분은 도대체 왜 저희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겁니까?

새 소식이 올라오기를 왜

그리도 기다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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