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약속이 있었던 깨달음은 저녁 9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난 내 방에서 일을 하다가 들어왔냐는 인사를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있는데
똑똑 노크소리가 나고 문을 살짝 열어
뭔가를 통로 바닥에 놓고 갔다.
[ 이거 뭐야? ]
[ 응, 받았어, 아마 냉장고에 넣어야 할 거야 ]
그 말을 남기고 깨달음은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고 난 쇼핑백을 열었다.
프랑스과자와 비닐에 쌓인 정체불명의 음식..
반찬 냄새가 풍기는 걸 봐서는 음식이
분명한데 누가에게서 받아올 걸까..
하나씩 조심스레 풀어봤더니 생선조림,
죽순나물, 족발이 들어있었고
생선조림에는 작은 비닐에 국물까지 따로
담겨져 있다. 다시 두껑을 닫고
샤워를 마친 깨달음에 물었다.
[ 응, 그 신주쿠 요리집 마마가 줬어,
당신이 족발 좋아한다고 그랬던 걸 아직도
기억하는 것 같더라구, 내가 갈 때마다
당신 데리고 오라고 난리야 ]
[ 아, 그 신주쿠 요리집 마마? 건강하셔? ]
[ 응 ]
원래는 女将さん(おかみさん)이라는 예칭이
있지만 우린 편하게 마마라 부르고 있다.
그 마마는 작은 요리집(小料理屋)을
경영하고 있는데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엄마의 집밥을 먹을 수 있고 정종도
한 잔씩 할 수있는 곳이다.
이자카야와는 분위기도 조금 다른 일본
가정식요리를 손님들 취향에 맞게 내 놓으신다.
그 날 메뉴가 담긴 큰 요리접시를 카운터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손님들이 골라
먹기도 하고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은
별도로 주문을 하기도 한다.
내가 치료중일 때 입맛이 없어 거의
밥을 못 먹고 헤매고 있을 무렵,
깨달음이 생선조림을 잘하는 곳이라고
몇 번 데리고 갔었다. 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아주 심플하면서도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을 제대로
살려 낸 요리들이 깔끔하고 정갈해서
갈 때마다 만족하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내가 가끔 가게를 찾으면
코리아타운에서 제일 맛있다는
김치를 사왔다고 쓰윽 한접시 테이블에
놓고 가시곤 했다.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치료가 다 끝나고 갔던 날은 피골이 상접한
나를 보고 아직도 환자얼굴 하고 있다며
뭐가 먹고 싶냐고 뭘 해 주면 좋을지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며 신경을 써주셨다.
사람을 대하는 게 너무 정적이여서
혹 재일동포인지 깨달음에게 물었더니
아니라고 대대로 요리집을 해오셨던
분이라며 이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모두가
마마의 인성과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반해서 늘 손님이 많다고 했다.
그 후로도 자주 갔었는데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며 가질 못했다.
[ 근데,,그 마마가 아직까지도 날 기억하시고
이렇게 당신 편에 보내신 거야? ]
[ 응, 저 생선이랑 죽순은 오늘 메뉴로
만든 것이고 족발은 당신 주려고 일부러
만들어 놓으셨다고 그랬어 ]
[ 죄송해서 어떡해...]
[ 괜찮아, 내가 한 달에 한번씩 가서
술 마셔 주잖아 ]
그래도 뭔가 감사의 마음을 직접 전하고 싶어
뭘 드릴까 고민하고 있었더니
한국에서 가져온 김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 아니, 연세가 70이 넘으셨으니까 홍삼정 같은
영양보충제를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
홍삼을 드린다고 내 말에 눈을 크게 뜨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되묻는다.
[ 깨달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꼭 그렇게 말을 얘기해야 돼? ]
[ 아니, 마마가 받으면 부담스러울까 봐 ]
[ 부담스러울만큼 큰 것도 아니야,
당신이 크다고 생각해서 그렇지.
내가 아플 때도 그렇고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기억하고 일부러 족발까지
만드셨다는데 그 마음과 정성과 시간을
생각하면 과한 것도 아니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때는 마음이 가는대로 하는 거야 ]
내가 몰아부치듯 말을 해서인지 깨달음은
역시 통이 큰 여자라고 다음에 시간내서
같이 가자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화제를 바꿔 나한테도 작은 요리집을
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 당신, 요리하는 거 좋아하잖아, 요즘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한다더라고 ,
갑자기 당신도 하면 잘 할 것 같아서]
[ 일본에서 하라고? ]
[ 아니,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
한번도 생각을 안 해봐서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면서
한번쯤 생각해 보란다. 한국에서 하게 되면
은근 인기 있을 것 같다면서 혼자 상상에 빠져
메뉴로는 불고기, 해물파전, 잡채, 갈치조림,
나물, 도토리묵, 전, 육개장을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메뉴 갯수를 세면서 흐뭇해했다.
난 한번도 생각을 안 해봐서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마마처럼
따뜻하게 사람들을 대할 자신도 없어
깨달음에게 무반응으로 내 의사를 표현했다.
한국만큼 이곳도 음식점, 유흥주점이
넘쳐나고 그저 한끼를 때우기 위해 찾는
가게들도 즐비하다.
하지만 한끼를 먹고 나오더라도 왠지
몸과 마음이 모두 충족되는 곳,
나도 모르게 발길이 닿아 가고 싶은 곳이
한 군데쯤은 있기 마련이다.
벌써 일본생활 20년을 향해가고 있는데
갈 때마다 포근한 엄마의 집밥을 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 있어 참 고맙고 다행이다.
너무 늦지 않도록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마마를 만나러 가야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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