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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남편에게서 시아버지가 보일 때

by 일본의 케이 2019.05.17

시부모님이 계시는 요양원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우린 도쿄로 

돌아오기 전에 다시 인사를 드리러 갔다.

하룻밤 더 있으면서 못다한 집안정리를

더 해야하는데 시간적으로 여의치않았다.

때마침 아침 식사를 하러 가시려는 중이여서

기다리려고 하는데 아버님이 당신은 식사를

안 해도 된다면서 방으로 다시 

휠체어방향을 돌리셨다. 

전날 못 드린 것들을 전해드리고 깨달음이 

앞 마당에 핀 꽃들, 그리고 금귤이 얼마나 

열렸는지 사진으로 보여드리며 설명을 했다.


그리고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밤쿠엔을 드렸더니

전날 우리들이 사다놓은 먹거리들도

많은데 뭘 또 사왔냐며 미안해 하셨다.

[ 빨리 가거라. 그리고 고맙다 ]

[ 아버님, 또 올게요 ]

[ 그래,,케이짱,,내가 고마워하는 거 알지? ]

[ 아버님, 이제 그런 말씀 마세요

자주 못 와서 제가 더 죄송해요 ]

[ 아니다, 그리고 어제 깜빡했는데 엄마 옷장에

있는 기모노를 꼭 케이짱이 처분해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구나. 

싼 것도 있지만 값나가는 것도 몇 벌 있어 ]

[ 네..아버님,,]

깨달음에게 맡기지 말고 꼭 나보고 처분하라고

또 당부를 하셨다. 


아침식사를 하실 수 있게 우린 그 정도에서

 끝내고 어머님이 기다리는 식당으로 아버님을

모셔다 드리고 깨달음이 두 분께 번갈아서 

아픈곳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라.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전화해라.

돈 필요하면 전화해라라고 하자 알겠다고

하시는데 아버님은 고개만 숙인채 시무룩하게 

있다가 밖에서 사진 찍고 있는 나를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시는데 그 눈빛이

깨달음이 슬플 때 짓는 표정하고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 아버님, 또 올게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

어린 아이를 떼어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그렇게 또

 우린 요양원을 나섰다.


우리 아버님은 깨달음을 많이 닮았다. 아니

깨달음이 아버지를 쏙 빼닮은 게 맞는 말이다.

외모는 물론 점점 행동하는 게 닮아서

깨달음을 보면 아버님이 보일 때가 있는데

이날은 아버님에게서 깨달음이 보였다.

전날, 짐정리를 하면서 깨달음이 2층 방에서

가져온 앨범을 펼쳐놓고 설명을 했었다.


큰아들인 깨달음을 5살 때부터 자신의

 오토바이에 태워 임업을 하셨던 아버님 숲에

 데리고 가 큰 통나무에 앉혀놓고 장난감과

과자를 두고 일을 하셨단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는 아버님은

아들이 조각에 흥미를 보이자 최고로 좋은

조각도를 선물하셨다고 한다.

깨달음을 도쿄에 있는 대학을 보내두고

한달에 한번씩 그 먼길을 올라와 잠자리도

 확인하고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영화관에 데리고 가고 그랬다.

그 당시 아버님이 꼭 사 주셨던 돈까스가

지금도 자기 인생에서 제일 맛있다고

 기억하고 있다.

시어머니는 세세히 자식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였다고 깨달음이 자기가 나이를 먹어보니

알겠더라며 엄마가 해야할 일을 아버님이 

 하셨는데 정이 상당히 많았음을 느낀다고 했다.

(깨달음이 어릴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


식사를 하려고 첫숟가락부터 기침을 하는 것도,

집 안에 들어온 작은 벌레를 죽이지 못하고

밖으로 잘 내보내는 것도, 

오물조물한 작은 캐릭터 인형들을 모우는 것도

나 온 배 때문에 바지를 다시 수선해야 된다고

 시어머니가 한마디 했을 때 뱃살을 접어서 

바지에 넣으면 된다고 자신의 뱃살을 잡고

벨트 안으로 넣는 시늉을 하면서 

피식피식 웃으며 귀엽게 꾀부리는 것도

 영낙없이 깨달음이 그대로 물려받았다.

동물 다큐를 보며 맹수한테 쫒기는 사슴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자기가 애가 타서 응원하는 것도,

식사하다 음식(반찬) 떨어트리면 살아있어서

밥상에서 도망가는 거라며 재미없는 소릴 

하는 것도,,과자와 아이스크림 좋아하는 것까지

점점 깨달음이 아버님의 행동과 말투에

 닮아가고 있다. 정 많고, 썰렁한 유머를 

자주하지만 가끔 정말 도를 닦고 온 사람처럼 

바른 소릴 하는 것도 똑같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3년되던 해,참 많은 위기가 있었고 

서로가 결혼을 후회했을 때

아버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결혼생활이라는 게 자신이 60년 가까이 해보니

인내가 가장 필요하더라고 참는다는 건

무디고 어리석음에서 오는 게 아니라며

조금씩, 조금씩 참다보면 세월이 지난 후

자기 자신에게 그 인내가 [득]으로 돌아오는 게

많다며 깨달음이 엄마를 닮아 고집스러운

 점이 있는데 자신을 봐서라도 깨달음을 

너그럽게 봐줄 수 없겠냐고 하셨다.

(건강하실 때 아버님 모습)


언제나 며느리인 내 편에 서서 응원하겠다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일본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늘 마음을 써 주셨다. 

우리가 목욕을 하고 있으면 항상 새 수건을

준비해 주신 것도 아버님이셨다.

가을이면 단감을 택배로 보냈다하시면서도 도쿄 

가는 신칸센 안에서 맛보라며 내 손에 

단감 몇 개를 쥐어 주시던 아버님, 

시댁에서 내가 밥을 제대로 못 먹는 걸 보시고

밖에서 맛있는 거 먹고 오라고 깨달음 몰래

만엔짜리를 주시던 아버님.

남에게 배풀고 관심 갖으며 정을 나눌줄 아는 

따뜻하고 섬세한 인성을 깨달음도 가지고 있다. 

썰렁한 유머를 하고, 아이처럼 까불고

별로 슬프지 않은 드라마를 보면서 통곡하고

몰래 과자를 숨겨서 먹는 걸 볼 때마다

 아버님이 보여서 놀라긴 하지만 그래도

 인자하고 좋은 성품을 고스란히 물려주신 게 

참 고맙고 감사하다.

친정아빠와 같은 순 없지만 난 우리 아버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계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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