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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은..

일본의 장례식에서 가장 슬펐던 두가지

by 일본의 케이 2022.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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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보름이 지난 오늘,

깨달음이 32장의 사진을 내 카톡으로 보내왔다.

장례를 치르고 도쿄로 돌아온 우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했고

한 번도 어머님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깨달음이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 사진을

내게 보내온 것이다.

마음이 조금 정리된 것일까.,,아니면

이제 어머님을 보내드리겠다는 뜻일까..

한 장, 한 장,, 다시 보니 엊그제 일처럼

너무 생생해 소름이 돋았다.

난 일본에서 장례식을 치러본 게 이번이

처음이어서 생소한 게 많았고 절차도

불교식이다 보니 모르는 게 많았다.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일본의 장례문화는

우리네와 비슷한 듯 많이 달랐다.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갔을 때

이불이 덮고 계신 어머님 얼굴엔 하얀 실크천이

놓여 있었는데 가족들은 그 천을 들어 올려

어머님 얼굴을 확인하며 한 마디씩 했지만

난 차마 보지 못했다.

내가 친정아빠 장례식을 치를 때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염을 하기위해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 계신

아빠와 마주하는 것이었다.

움직임이 없는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는 게 고통스러울만큼 슬펐다.

그런데 이곳은 관이 한국과 다르게 입관을 하고

나서도 얼굴 부분이 창문처럼 열리게 되어 있어

가족이나 친척들이 오시면 언제든지

볼 수 있었다. 어머님 얼굴이 보일 때마다

내가 울어서 깨달음이 못 보게 했었다.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고인의 주검을 눈으로 몇 번이고

확인시키는 것 같아 너무도

잔인하고 아프게만 느껴졌다.

헤어짐을 인정하라고, 받아들이라는 듯

마지막 모습을 보고 또 보고

작별인사를 거듭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화장터로

향하며 홀로 남으신 아버님을 위로해드렸다.

위패를 들고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시는

아버님 눈에도 마른 눈물이 맺혀있었다.

화장을 하기 위해 간단히 묵도를 하고는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어머님 얼굴을

보는 거라며 또 열어 보여주시는데

모두가 소리죽여 눈물을 흘렸다 

화장을 기다리는 동안 차를 마시며

서방님 내외와 한국의 장례문화와

다른 점들을 몇 가지 얘기했다.

깨달음은 자신이 처음으로 경험한

한국 장례식을 설명하며 문상객이 밤늦게까지

찾아오셔도 시간과 관계없이 오시는 분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음료를 대접한다며 

일본은 정해진 시간외에 식사 제공이 되지

않는데 참 인상적이었다는 했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관리자분이

 화장이 끝났다길래 따라갔더니

뜨거운 불길이 채 가시지도 않은 

어머님 유해 앞에 우릴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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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열기가 그대로 전달되며

강렬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시켰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란 것도 잠시,

기다랗고 큰 쇠젓가락을 들고 서 계신 분이

장남부터 한 명씩 자기 쪽으로 오라더니 

 유골을 보며 연세를 많이 드신 분이셨냐고

묻고는 골다공증이 있으셨던 것 같다며

여기가 무릎뼈, 여기는 골반,

쇠골 부분, 턱 부분이라며 설명을 했다.

그리고 다리 쪽부터 큰 유골은 젓가락으로

 잘게 부순다음 깨달음이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전달했다. 그렇게 모든 가족들이

조금씩 유골을 나눠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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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종교문화

오늘도 깨달음은 옷을 바르게 챙겨 입고 비장한 얼굴을 하고서는 교회를 따라 나섰다. 작년 7월말에 호기심 반, 심심풀이 반으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오늘로 딱 반년이 넘어섰다. 교회 입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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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머님을 절에 모시고

우린 바로 도쿄로 돌아오는 신칸센에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어느 장례식이나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과정인데 처음으로 경험한

일본 장례식은 크리스천인 내게 종교적인

면에서도 색다른 게 많았다.

한국은 입관을 하기 전, 염을 할 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볼 수 있지만 이곳은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언제든지 볼 수 있고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기 직전까지 고인의

얼굴을 보며 작별 인사를 나누게 했다.

또한 화장을 끝낸 유골을 모든 자식들이

직접 유골함에 담게 하는 것도

우리와는 꽤나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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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얼굴을 끝까지 보게 하는 것과

유골을 직접 담는 절차가 처음 겪는 내겐

낯설면서도 가장 큰 슬픔으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코츠아게(骨あげ)를 하면서

일본인들이 음식을 젓가락으로 주고

받는 걸 보면 왜 질색을 했는지

그 이유도 이해하게 되었다.

 

한일커플 사이에 의외로 많은 트러블

협회 후배들을 만났다. 이젠 서로 협회 일을 그만 두어서 자주 만나기 힘들지만 올 해들어 신년 모임을 가졌다. 가볍게 건배를 하고 그간에 있었던 얘길 나눴다. 다들, 배우자가 일본인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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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너무 다른 일본인들의 종교개념

지난 연말, 조카 결혼식을 위해 한국에 갔던 깨달음이 태어나 처음으로 교회를 갔다.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도 있었고 동생네 가족들이  다 함께 가는 분위기다보니 깨달음도 얼떨결에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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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다르니 장례방식도 다른 게 당연한데 

 극히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건 스님이

범문을 하시는 동안 모두가 무릎을 꿇고

듣는데 무릎 꿇기가 익숙하지 않은 나는

10분 정도 지나자 마비가 와 제대로

서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필요했었다.

49제까지는 슬픔이 가시도록 깨달음에게

어머님 얘길 안 할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사진을 보내줬으니 조심히

꺼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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