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에는 너무 멀 것 같아 전철을 탔다.
오다이바 팔레트타운(お台場パレットタウン)이
이번 달에 영업을 종료한다.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멋진 장소로
선정되기도 했던 팔레트 타운은
쇼핑몰, 디지털 아트 뮤지엄,
모빌리티 체험관, 대관람차로 구성된
대형 엔터테인먼트 복합시설이었다.
작년 12월부터 순차적으로 영업을 종료했고
이달 3월 27일 모든 시설의 영업을 끝낸다.
1999년에 설치된 대관람차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람차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 관람차를 타면 도쿄타워, 도쿄 스카이트리,
레인보우 브릿지. 도쿄 게이트 브릿지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곧 사라진다.
결혼전부터 깨달음과 나에게 참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 주던 곳이었기에 폐관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가봐야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시간을 냈다.
도쿄 내에 유일한 아웃렛 몰이 있던
비너스 포트는 명품 브랜드는 거의 없지만
나이키, 뉴발란스, 퓨마 등이 입점되어 있어서
깨달음과 맞춤으로 운동복을 샀던 곳이었다.
2층은 18세기 유럽 거리를 연출한 관내에
분수광장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객들에게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 날도 여전히 6명의 여신 사이로 물줄기가
힘차게 흘러내렸고 우린 잠시 그 앞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를 경청했다.
[ 깨달음,기분 탓인지 왠지 휑한 느낌이야..]
[ 응,, 사람들도 별로 없고,, 매장들도
문을 닫은 곳이 많네..,
저기 저 레스토랑 생각나지? ]
[ 알지..]
[ 내가 당신 업어줬잖아, 술 취해서]
[ 술 취해서가 아니라 그때, 내가 너무 괴로워
하루종일 울어서 탈진 상태였지..]
[ 그 때 뭐가 그렇게 힘들었지? ]
[ 교수님하고 갈등이 최고치였지..]
[ 아,그랬지..한국 가족들이랑 친구들도
여기 왔었나? ]
[ 왔었지, 한국에서 오면 오다이바(お台場)는
기본코스처럼 들렸으니까.. ]
[ 또 이렇게 기억 속에 추억들이 사라지네..]
[ 그러네..]
내가 유학생이었던 시절, 아빠의 기억이
온전할 때 동생네가 마지막 여행으로 모셔온 곳이
도쿄였고 이곳에서 바비큐 뷔페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애틋하고 따스했던 추억들이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문을 닫는단다.
반짝이는 일루미네이션 사이 사이로
이벤트와 마지막 기획전을 하고 있다는
전단지가 보였다.
철 지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루돌프는 조금 지쳐 보였다.
말없이 관내를 한 번 둘러보고 우리 건물을
빠져나와 건담이 놓인 다이바시티로 걸었다.
다음 주면 사라질 건물을 뒤돌아보며
대관람차가 없어지는 게 좀 아쉽다고 했더니
술 먹고 타서 엄청 어지러웠던 것과
앞 관람차에 탄 10대들이 진하게 키스를
하던 게 기억난다는 깨달음.
[ 난,,그 생각이 안 나는데? ]
[ 당신은 졸고 있었지.]
[ 졸렸는데 왜 탔지? ]
[ 술 김에....]
[ ................................. ]
옆에선 벌써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고
공사현장을 두리번거리던 깨달음이 부지가
어마어마하다며 놀랬다.
[ 이 자리에 뭐가 생기는 거라고 했지? ]
[ 도요타에서 이벤트 홀, 대형 경기장 같은
아레나가 세워질 계획이야, 대공연도 하고..
실내 원형 경기장이라 생각하면 돼..]
[ 그렇구나..]
깨달음이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아기자기한 작은 장식품들을
몇 가지 사고 식사를 하러 갔다.
[ 오다이바도 자꾸만 변해 가는 거 같아.
저 레인보우 브릿지 빼놓고.. ]
[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20년이나
지났으니 변하는 게 당연하지....]
[ 근데 우린 왜 이곳에만 오면 만취됐었지? ]
[ 바다도 보고, 분위기가 좋아서,,근데 그 당시
나보다 당신이 훨씬 많이 마셨지..]
[ .................................. ]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술을 그리도 퍼 마셨는지
그런다고 해결된 것도 아닌데
술기운을 빌어 잠시나마 잊고 싶어
자꾸만 알코올 속으로 숨으려 했던 것 같다.
깨달음 등에 업혔던 그날은 인권위원회에
신고하겠다고 교수님들과 토론을 펼쳤던 날,
바로 그날이었다.
그런 다음 날은 숙취를 빼내기 위해 가까운
온천에(お台場 大江戸温泉物語)가서
머릿속을 비우고 기운을 차렸던 온천도
작년 6월에 문을 닫았다.
유카타(浴衣)를 입고 노천탕을 왔다갔다하며
깨달음과 땀을 뺐는데 이젠 없다.
어디는 문을 닫고, 어디는 또 새롭게 오픈을 하고
어제는 벌써 과거가 되고 오늘은 또
내일의 과거가 되어간다.
추억은 이렇듯 하나씩 하나씩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앞으로도 잊고, 잊혀지고, 새로운 기억들이
자리잡으며,,,살아가겠지..
조금은 아팠던 유학시절, 그리고 가족, 친구,
깨달음과 함께 했던 추억들을 묻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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