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대충 씻고 신칸센에 올랐다.
난 바로 눈을 더 부칠 준비를 했고
깨달음은 도면 체크를 시작했다
[ 수정할 게 많아?]
[ 음,,내가 하라는대로 안 해 놨건든,
직원들이 말을 안 들어서 큰일이야,.
그래서 내가 하는 게 더 빨라...]
오전 일찍 나고야에서 미팅이 있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까지 깨달음은
도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전 미팅이 끝나고 시댁으로 가려는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후에 다른 현장의 관계자와 미팅을
한 곳 더 해줘야할 것 같다는...
[ 혼자 괜찮겠어? ]
[ 응, 나는 괜찮아 ]
[ 집은 찾아갈 수 있어? ]
[ 내가 애야? 걱정말고 버스시간 촉박하니까
난 이쪽으로 갈게, 당신은 일 끝나면 와]
어찌해야할지 갈등하는 깨달음에게
내가 먼저 가 있겠다고 했다.
[ 어쩌면 오후 5시 넘을지도 모르는데
그 시간동안 뭘 할 거냐? ]
[ 그냥 얘기하고 놀지..내 몸 상태가
썩 그리 안 좋으니까 청소같은 건
못해드리고,,그냥 이런저런 얘기하면 돼 ]
[ 그래도 힘들텐데....]
[ 빨리 가, 내가 알아서 할게 ]
그렇게 깨달음은 다음 미팅 장소로 가기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했고
시댁행 버스를 탄 나는 깨달음이 없는동안
무슨 얘기를 하며, 뭘 사드릴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
오후 1시를 지나서야 버스에서 내렸고
바로 마트에 들러 먼저 카네이션을 골랐다.
그리고 깨달음이랑 항상 샀던 반찬거리들을
떠올리며 장바구에 넣었다.
[ 저 왔어요~어머님~ ]
[ 오,,케이짱 왔구나,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깨달음이 바쁘면 케이짱 혼자서라도 빨리 올지
모른다른 생각을 했거든, 고맙다 ]
아버님은 우리들의 움직임을 보고 계셨다는 듯
금세 알아맞추셨다.
[ 꽃이 이쁘구나, 근데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무거울텐데, 얼른 케이짱한테 마실 것좀 내 줘]
[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주방에 들어가 사 온 것들은 냉장고에 넣고
녹차를 하나 꺼내 안방에 앉았다.
깨달음이 갑자기 오후 미팅이 잡혀서 늦을 거지만
저녁식사 시간에는 올 거라는 얘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건강하셨는지부터 여쭤 보았다.
여전히 기침과 요실금이 아버님을
괴롭히고 있고, 어머님은 점점 기억들이
흐려져서 어제도 지갑을 찾다가 못 찾아
비상금을 꺼내 사용하셨다고 한다.
깨달음의 사업진행 과정도 더 상세히 말씀 드리고
여행 가서 다툰 일, 친정 식구들에게 있었던 일,
깨달음 어릴적 교통사고 당했던 것과
고등학교시절의 에피소드,
생각보다 대화의 소재는 많았고 전혀 지루함이
없이 3시를 넘어가고 있을 무렵,
아버님이 보시던 신문에 햄버거 찌라시를 보다
문뜩 내가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버님, 햄버거 하나 드실래요?]
[ 뭐? 이 햄버거 ?]
[ 네, 제가 좋아해서 그러는데 저도 하나 먹고
아버님이랑 어머님 것도 하나 사드릴려고요]
[ 음,,한 번도 안 먹어봐서 우린 몰라..]
[ 그래요? 그럼 내가 가서 맛난 걸로 사올게요]
[아니다, 우린 괜찮으니 너만 먹고 와. 미안하구나,
점심을 먹었다고 해서. 우린 그런 줄만 하고
배 고플텐데 어서 먹고 오너라 ]
한걸음에 달려가 새우버거와 테리야끼를 사와
먹기 좋게 잘라 접시에 담았다.
[ 케이짱 이건 뭐야? ]
[ 아, 감자 튀김이요,
여기 케찹에 찍어 드셔보세요]
[ 이것은 쥬스냐?]
[ 아, 콜라에요, 콜라도 처음이세요?]
[ 응, 사이다만 마셔봤지 콜라는 처음이란다 ]
[ 햄버거에는 사이다보다 콜라가 궁합에 맞아요]
[ 어때요? ]
[ 참 맛있구나,,,이렇게 맛있는지 몰랐네.]
[ 입맛에 맞죠? 느끼하지 않으시죠?]
[ 응, 전혀 안 느끼해.세상에..이런 맛이 있구나..
새우도 맛있는데 이 테리야끼 버거가 일품이네..
진짜 케이짱 말대로 콜라하고도 아주 잘 어울려...
이렇게 세트로 파는 거냐?]
[ 네,,세트도 있고 단품으로도 팔아요 ]
[ 야, 처음 먹어보는 건데 이렇게 맛있다니..
신기할 만큼 입맛에 맞네...]
[ 아버님,,죄송해요,,제가 진작 이런것도
사드릴 것인데..안 드실거라 생각하고,,]
[ 아니다,,케이짱 덕분에 이런 것도 먹어보고,,
우리 같은 노인들은 먹어보려고 생각을 안 했지,
근데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다.그래서 미국사람이
배가 나오고 뚱뚱한가 보구나.
이렇게 맛난 걸 매일 먹으니..
당신도 입맛에 맞지? ]
[ 이 새우버거는 새우가 탱탱하고 맛있고..
테리야끼는 소스가 아주 감칠맛이 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사 먹어 볼 걸 그랬다.
나는 애들만 먹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 감자튀김은 케찹을 찍어야 맛이 더 사네..
정말 케이짱 덕분에 평생 처음 이런 것들을
먹어볼 수 있어 고맙구나..]
[ .............................. ]
찌라시를 보여드리며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내 목소리가 잠겨왔다.
오후 6시 20분, 깨달음은 집에 도착을 했고
오자마자 사 온 선물들을 불단에 올린다음
함께 저녁을 먹었다.
[ 아버지, 우리 내일 아침 도쿄로 바로
올라가야 될 것 같아...]
[ 왜? 하룻밤 더 있는다고 하지 않았어?]
[ 그럴 생각이였는데 일이 생겨서
내일 바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애..]
[ 그래..일이 있으면 가야지..]
저녁을 마친 우린 마트에 다시 가서
또 필요한 것들은 가득샀다.
계산대에 선 깨달음이 장바구니에 물건들을
휙 한 번 보더니 한마디 한다.
[ 구미(젤리)를 왜 이렇게 많이 사?]
[ 아까 아버님이 내가 먹으려고 샀던 구미를
하나 드렸더니 너무 맛있다고 그러셨어..
이것도 처음 맛 보는 거라고,,]
[ 그래? 안 딱딱하대?]
[ 응,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쫄깃하고
과즙향이 진해서 맛있다며 드셨어..]
그렇게 먹거리를 냉장고에 가득 넣어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린 도쿄로 올라와야했다.
[ 아침도 못 먹고 미안해서 어쩌냐,,]
[ 아니에요, 어서 들어가세요,
저희는 차에서 먹으면 돼요]
[ 이번에도 돈을 너무 많이 쓰게 했어..]
[ 그런 말씀 마시고 얼른 들어가세요~]
아픈 다리로 배웅 하시는 어머님이 더 이상
못 나오시게 우린 서둘러 인사를 드렸다.
신칸센에 올라 샌드위치를 먹다가
깨달음이 다시 물었다.
[ 햄버거를 그렇게 잘 드셨어?
나는 전혀 생각을 못했네..]
[ 세상에 이런 맛이 있는지 몰랐다고
많이 놀라하셨어, 부모님이 늙기는 했지만
입맛은 그대로인데 우리가 생각을 못했지 ]
깨달음도 90을 넘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햄버거를 드시고 구미(젤리)를 맛있게
드실 거란 생각을 못한 듯 했다.
나역시 그랬다.
드실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맛집을 가기 위해 예약을 하고,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한다.
특별한 날엔 코스 요리를 주문해 먹고
전국 방방곡곡 맛집을 돌아다녔으면서
부모님들은 못 드실 거다, 입에 안 맞을 것이다,
싫어하실 거다라고 단정지어버리고
사드릴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드시고 싶고, 궁금해 했을 세상의 맛을
우린 우리 편할대로 부모님에 드시게 할
기회를 주지 않고 우리만 즐기는데 바빴다.
우리 입에 맛있고, 단 것들은
부모님 역시도 맛있게 드실 수 있다는 걸
바보처럼 이제서야 알았다.
어릴적 부모님은 늘 생선 대가리만
빨아 드셔서 몸통은 안 드실 거라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는데
지금도 여김없이 부모, 노인에 대한
편견의 눈으로 어르신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였다.
[ 반성 많이 해야겠네..우리..근데 당신도
대단해, 그걸 사 드릴 생각을 다하고,,]
[ 우리 친정엄마가 의외로 젊은이들 음식을
잘 드셨거든, 해외를 가셔도
뭐든지 한 입 먹어보시려고 하셨어.
그래서 괜찮을 것 같은 생각에서 사 드렸고,
한번도 안 드셔 보신게 믿겨지지 않았어.
너무 좋아하시니까 도리어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구,..]
효도라고 말하기엔 너무 어리석고 당연한
것이지만 부모님 입맛도 우리와 똑같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http://keijapan.tistory.com/818
( 자식은 부모 마음 절대로 모른다)
이번에 잡채와 북어국을 해드릴 시간이 없어서
너무 안타까웠지만 다음에는 크레페, 피자,
파스타, 와플 등 우리가 즐겨 먹었던 것들,
세상에는 맛있는게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되도록 모두 맛 볼 수 있게
해드려야겠다. 살아계시는 동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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