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우리 시댁에 다녀왔다.
서방님도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와 주셨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아버님이 좋아하는 장어덮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두 분이 필요한 것들
적어놓은 메모지를 받아
우린 마트로 향했다.
쇼핑한 물건들을 가지고 시댁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들은 이젠 쓸 일이 없는 모든
살림살이들을 버리기 위해
정리를 시작했다.
시댁에 올 때마다 버리고 있지만 묵은 살림들이
많다보니 치워도 표가 좀처럼 나질 않는다.
깨달음은 안방을 난 옷장에
넣어진 옷가지를 모두 재활용 봉투에 넣었다.
2층에 올라가봤더니 쥐들이 다녀간 흔적만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빈집,,, 빈집이 되어가는 과정이
리얼해서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묵묵히 물건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깨달음이 상기 된 목소리를 날 부른다.
[ 이것 봐 봐,, 내가 초등학교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이 나왔어~연필꼿이도 있어...
오,,,기억이 생생하네~...]
먼지로 뒤범벅이된 장난감을 내게 보여줬다.
[ 귀뚜라미야? ]
[ 응 ]
[ 아버지가 실로 묶어줬는데,
이게 그대로 있네..]
[ 실로 왜 묶었을까? ]
[ 잊어버리까봐 그랬겠지...50년도 지난
장난감을 뭐하러 이렇게 챙겨 놨을까...]
감회에 젖은 얼굴로 깨달음이
장난감을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감나무에 감들을
모두 따야해서 앞마당으로 나갔는데
감도 새들이 반이상을 먹고 가버린 탓에
온전한 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쁘고 반질반질한 감을 몇 개 골라 쇼핑했던
물건들과 함께 저녁 면접시간에 맞춰 갔을 때
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는 아버님을
만날 수 있었다.
[ 아버지, 우리 내일 아침에 일찍 가야 돼 ]
[ 그래..그래야지..]
[ 근데,,아버지 왜 테레비 안 봐? ]
[ 테레비 보려면 카드를 사야되는데
돈이 다 떨어졌어..]
[ 그래? 어머니한테 있잖아...]
[ 응,,알고 있는데 그냥 귀찮아서
요즘은 테레비도 안 본다.. ]
[ 여기 돈 놓고 갈게, 아니 내가 카드 사올게]
카드를 사기 위해 깨달음이 병실을 빠져나가자
아버님이 내게 얼른 돈을 주신다.
[ 얼른, 넣어라,,우린 돈 필요 없으니까..
돈이 떨어졌다는 건 잔돈이 없다는 소리였단다 ]
[ 알아요 아버님, 그래도 이것은 그냥 넣어 두세요
카드 아니여도 혹, 필요한 거 사시면 되니까..]
[ 돈 있다니깐..그냥 멍하니 테레비 보고 있기가
싫어서 안 샀을 뿐이란다..]
한사코 내게 돈을 내미시는 아버님을
가볍게 뿌리치고 서랍장 밑에 얼른 넣었다.
카드를 사서 돌아온 깨달음이 어머님의
적금만기 서류들을 보며
앞으로의 재산관리에 관해 지난번에 했던
얘길 다시 한번 알기 쉽게 설명해 드렸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신칸센을 타기위해
역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아버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 응,,아버지,지금 타려고 해..
다음달에 또 올거니까 걱정마시고,.,,
응? 알았어, 잠깐만,,]
나에게 전화기를 내민다.
[ 케이짱,,고마웠어....]
[ 네,,아버님,,또 올게요. 그 때까지
건강하게 잘 계시고 먹고 싶은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
[ 케이짱,,어제 케이짱이 가고 나서
계속 눈물이 났단다...]
깨달음이 나에게 전화를 넘겨줄 때부터
아버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 울지 마세요. 그리고 아버님, 약해지시면
안돼요~저랑 약속했잖아요~ ]
[ 응,,내가 케이짱 덕분에 지금껏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맙고 미안하구나..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데 자꾸 케이짱을
더 보고 싶다는 주책맞은 욕심이
생겨서 미안하구나..]
[ 왜 그런 말씀 하세요, 100살까지 사신다고
저랑 약속 하셨잖아요, 그러시려면
몸 관리도 잘 하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계세요. 그럼 저와 100살까지 만날 수
있으니까 걱정 마시구요~]
[ 응,,근데,,자신이 없구나..]
[ 그런 말씀 안 하시기로 했잖아요~
그리고 아버님,,깨달음을 소중히 잘 키워주셔서
감사드려요..어제 안방 청소하다가 아버님이
지금까지 고히 간직해 두신
장남감 봤어요..너무 감사드려요. 아버님,.]
[ 아니다, 케이짱이 고생이 많지...]
더 얘길 하면 왠지 나까지 눈물을 쏟을 것 같아
깨달음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깨달음은 아버님을 참 많이 닮았다.
깨달음이 갖고 있는 정적인 모습,
인자한 모습, 눈물이 많은 것 역시도
전부 아버님하고 똑같다.
어릴적부터 살갑게 아들을 챙기고
세세하게 관심을 갖은 것도 실은
어머니가 아닌 아버님이였다고 했다.
깨달음이 혼자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할 때도 한달에 한번씩 오셔서
잠자리가 불편한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
엄마처럼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사주고 그러셨다고 했다.
깨달음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모두 기억하시고
만날 때마다 먹을 수 있게 도시락으로
준비를 하셨고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깨달음 친구들에게도 맛보게 하셨단다.
큰 아들이여서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확실하지만 아버님에 따뜻한 인성이
그대로 깨달음에게 전달되었음을
아버님을 만날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낯설어 할 때도
외국에서 시집 온 며느리 입장에서 사고하시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 주셨던 우리 아버님..
아들의 손때가 묻은 장난감을 안 버리고
그대로 보관해 두신 아버님의 애뜻한 부정이
생각하면 할수록 찡해져온다.
깨달음을 바르고 착하고 순하게 키워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다.
정말 100살까지 건강히 살아계시도록
기도를 많이 드려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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