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알 수 없는 봉투가 놓여있었다.
대부분, 큰 싸움을 한 다음날이나
깨달음이 내게 특별히 부탁할 사항이 있을 때,
아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이렇게 노트북에 편지를 올려놓는데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침 약속이 있어 외출을 하고 돌아와
천천히 열어보았다.
결혼해서 7번째 맞이하는 생일을 축하하고
나와 함께 있을 때가 정말 행복하다는
좀 과한 애정표현이 적힌 편지와
돈이 들어 있었다.
왠 생일인가 했더니 내 음력생일이 아닌
양력으로 쓰는 생일을 기념한 것이다.
결혼하고 매해 음력과 양력을 가르쳐 줘도
깨달음은 한 번 입력된 생일날만
기억할 뿐, 음력은 언제인지 모르고 넘어간다.
점심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다.
[ 내 생일은 11월 초야,,음력,,]
[ 아,,그래? 해년마다 두번씩 해야하네 ]
[ 아니야, 음력생일 때만 하면 되는데,,
그리고,,무슨 생일축하 선물이 돈이야?
지금까지 없던 패턴이네....]
[ 음,,,같이 쇼핑할 시간이 없어서,,,,
당신 필요한 거 사라고,,]
[ 축하주, 케잌, 축하송도 그냥 생략한 거야?]
[ 응! 당신도 바쁘잖아, 시간도 안 맞고,,]
[ 음,,그렇긴 한데 왠지 허전하네...
그냥 돈을 되돌려 줄테니까 다음에 시간 내서
생일다운 그런 생일을 보냈으면 좋겠는데? ]
[ 그래? 그럼 편지는 읽었어?]
[ 응, 읽었어 ]
[ 알았어, 일단 조금 생각을 해볼게]
그리고 이틀 후, 깨달음이 내게
꿀상자를 내밀었다.
[ 위가 안 좋은 사람은 이렇게 벌집, 밀랍이랑 함께
먹으면 좋다고 그래서 내가 주문했는데
오늘 회사로 도착해서 가져왔어
당신 이거 찾았잖아,, ]
[ 그렇지 않아도 사려고 했는데, 진짜 고마워 ]
[ 먹어 봐~]
[ 완전, 오리지널 꿀맛이야~]
[ 나 잘 했지? ]
[ 응, 많이 고마워..]
[ 그럼 이건 생일 선물로 해도 되겠지?]
[ ............................ ]
[ 왜 맘에 안 들어? ]
[ 아니,,고마운데 이걸로 생일 선물 한다는게
좀 그렇지 않아? ]
[ 왜? 당신에게 필요한 게 가장 좋은 선물이잖아 ]
[ 알았어, 당신도 한 입 먹어볼거야? ]
[ 나는 위가 튼튼해서 괜찮아~
이 꿀은 달콤한 내 마음이야, 이거 봐 봐~]
갑자기 하트를 만들어서는 내 눈앞에 갖다 댔다가
떼였다가 까불어서 멍하게 보고 있었더니
팔 아프니까 빨리 사진찍으란다.
[ .............................. ]
[ 알았어,,그만해..]
[ 아니야,, 당신이 질려할 때까지 하트를
날려줄게]
[ 충분하니까 그만 하세요..]
[ 진짜 생일 선물로 뭐 갖고 싶어? ]
[ 없어,,그냥 나는 같이 식사하면서 와인 한잔
하고 싶었을 뿐이야,,]
[ 갖고 싶은 거 없어? ]
[ 응,,]
[ 역시 당신 갱년기 시작되면서 모든 욕심을
버린게 확실한 것 같애..]
[ 욕심이라기 보다는 모든 의욕이 사라진 듯한
무기력증이 제일 힘들어....
근데..지금은 벗어나려고 하지...아니,,
더 이상 이렇게 쳐져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여기저기 다시 움직이잖아..]
[ 좋아지고 있는 거지? ]
[ 이겨내려고 하는 거지..]
빤히 날 쳐다보던 깨달음이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티브이 볼륨을 줄었다.
[ 역시, 당신은 정신력이 대단한 것 같애...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하는데 당신은
오기와 끈기로 이겨내잖아,,]
[ 그거 칭찬이야? ]
[ 응,,,난 마음이 약해서 금방 쓰러지는데
당신을 보면 참 강한 사람이라 느껴, 그건 그렇고
생일 선물을 그럼 한국 가는 걸로 할까? ]
[ 어차피 12월에 조카 결혼식 있어서 가잖아,]
[ 그것 말고, 어머니 만나러 광주 가자,
당신이 저번에 크루즈 갔을 때 어머니한테
잘못한 것 같다고 속상해 했잖아, 그니까 같이
가서 어머니에게 효도해 드리자, 어때? ]
[ 좋은 아이디어네..근데,,언제 가? ]
[ 11월, 당신 음력 생일날에 가자 ]
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깨달음과 나는 서로의
스케쥴을 살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여러 모임이
겹혀 있었지만 우린 과감히 날을 잡고
서둘러 예약을 했다.
http://keijapan.tistory.com/1013
(엄마를 속상하게 만든 효도여행)
[ 고마워,,깨달음...]
[ 이제 생일 때마다 선물로 한국행을 택하면
당신도 좋고 나도 좋겠다, 그치? ]
[ 당신도 가고 싶었어? ]
[ 응, 광주 내려가면 나 혼자 어머니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잖아, 그니까 나도 좋아,
당신 생일선물도 되고 효도할 수 있어
일석이조잖아~~
근데,,이번에 광주 가면 뭐 먹을까?
지금부터 리스트를 짜서 다 먹고 와야지...
아,[생활의 달인]에서 나온 맛집 좀
검색해서 나한테 말 해 줘. 전라도지역 맛집들
모두 찾아서 다 돌아다니면서 먹고 오자~
지금 검색해 볼 수 있어? 무슨 종류의 맛집이
있는지 알고 싶어,, 면인지 빵인지, 밥인지
구별해서 3박4일동안 다 먹고 오려면 스케쥴을
짜야할 것 같애, 아~~벌써부터 기대된다~
먹을 게 너무 많을 것 같은데 뭐부터
먹어야 될까~~]
[ .............................. ]
[ 당신 혹 예전부터 광주행을 생각했던 거
아니야? 먹방투어 하고 싶어서? ]
[ 아니야~순수하게 당신 생일 선물을
생각하다가 문뜩 떠오른 거야~
당신이 갖고 싶은 게 없다고 하니까......]
내가 지긋히 쳐다봤더니 입을 쭉 빼고
또 까불면서 하트를 날린다.
[ 센 츄카 하니다(생일 축하합니다)
센 츄카 하니다, 하트 후~~~~]
100% 아내의 생일에 맞춰서 생각한
선물이라고 하기엔 약간 불순함이 담긴 듯했지만
참 많은 면에서 고마워하게 만드는 깨달음이다.
올 해도 깨달음은 기억에 남은 생일선물을
준비해 주었다. 너무 고마워서인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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