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첫비행기로 삿포로 출장을 가야했다.
회사 직원들과 함께 현장의
진행상황을 파악하러 간다고 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면 조용히 혼자서 출근을 하는데
오늘은 내가 일찍 일어나서 배웅을 했더니
기분이 좋았던지 알 수 없는 기합소리와 함께
[ 갔다오게요, 에~에~에~]를
외치고 집을 나섰다.
삿포르에 도착해서는 생각보다 너무 춥다며
남자 직원은 두번이나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였다고 자기는 귀마개를 하나
사야될 것 같아 백화점에 잠시 들렸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 연락이 없다가 스카프 사진과 함께
어머니 생신때 드릴 선물을 하나 골랐다며
지금 공항에서 직원들이 식사를 하고있다고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 깨달음, 이젠 안 추워? ]
[ 응, 지금 공항이여서 따뜻해,
집에 도착하면 9시쯤 될 거야 ]
[ 저녁은 필요없지? ]
[ 아니, 따끈한 국물 먹고 싶어 ]
[ 알았어 ]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택시를 탄 시간,
도착예정 시간까지 카톡으로 알렸다.
어디를 가나 집에 돌아올 때까지 늘 이렇게
자신의 행적을 보고하는 습관은 결혼초부터였는데
지금까지 변함없는 깨달음의 좋은 버릇이다.
뭘 준비할까 잠시 고민하다 따끈한 순두부와
김밥을 싸고 깨달음이 지난번에 얼핏
흘리듯 말했던 상추튀김을 준비했다.
상추튀김은 전라도 광주에서 튀김을 상추에
싸 먹는 아주 심플하면서도
계속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다.
손을 후다닥 씻고 와서는 차려진 식탁을
보고 고개를 까딱 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 이거 내가 먹고 싶었던 거잖아, 어떻게
알았어? 고마워~~ ]
먼저 상추에 오징어튀김을 하나 올리고
청량고추와 파를 듬뿍 넣어 한 입에 넣는다.
[ 맛있어요~~죽인다~]
[ 그렇게 맛있어? ]
[ 청량고추가 완전 포인트야~ ]
입에 오물오물 하면서 손은 또 다음 쌈을 준비한 뒤
손가락까지 먹을 기세로 쌈을 한 입에
밀어 넣는데 턱이 빠질까봐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 깨달음, 턱 빠지겠다 ]
[ 역시, 공항에서 안 먹고 오길 잘 했어. 당신이
이렇게 맛있는 거 해 놓을 거라 믿고 있었지 ]
[ 그럼 직원들만 먹었어? ]
[ 응, 나는 사시미만 몇 점 했어,
여기 양념장에 청량고추랑 좀 더 넣어 줘 ]
따끈한 국물을 찾아놓고는 상추튀김 싸는데
정신이 없다. 입 안 가득 상추쌈을 넣고는
하트를 크게 만들어 보낸다.
[ 근데, 당신은 나한테 한번 먹어보라는 말도
안 하고 혼자 진짜 잘 먹어 ]
[ 이 밥상은 나를 위한 밥상이잖아,
출장 갔다온 남편을 위해 아내가 차려줬으니까
맛있게 먹어주는 게 내 임무야~삿포로가
추워서 얼어 죽을 뻔 했는데 또 이렇게
당신이 맛난 음식을 차려주니까 피로도
싹 가시고 몸과 마음이 따뜻해서 좋아 ]
귀마개는 왜 안 샀냐고 물었더니
귀에 걸어봤더니 따뜻하긴 한데 자기 나이에
하기에는 좀 디자인이 젊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순두부를 식기 전에 먹어야하니까
나한테 대신 상추쌈을 싸주란다.
[ 난 당신이 전라도 사람이여서 정말 좋아,
요리도 잘 하고, 이렇게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맛 볼 수 있잖아, 그래서 내가
홍어도 잘 먹잖아 ]
다른 지역은 또 다른 그 지역의 향토음식이
있고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는
각 지방의 고유음식들이 엄청 많다고 했더니
자긴 지금만으로도 대만족이란다.
김밥만 몇 개 남기고 모든 튀김과 순두부를
깨끗이 비운 깨달음이 추위와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졸립다고 했다.
일찍 자야겠다며 방에 들어가는가 싶더니
쇼핑팩을 내밀었다. 내 스카프도 하나 사왔다며.
이 스카프하고 또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주라며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지난달에도 일주일에 한번씩 나고야, 오사카,
홋카이도를 왕복했었다.
잦은 출장으로 심신이 지친 깨달음이
음식으로나마 피곤함을 잠시 잊을 수
있다고 하니 난 열심히 맛있는 요리를
준비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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