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 일을 하다보면 다들 같은 말을 한다.
내 말투, 행동, 손짓, 몸짓이
한국 사람 같지 않다며
일본 사람보다 더 일본 사람 같다는 것이다.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한국적인 행동, 손짓, 몸짓은 무엇이며
일본적인 움직임은 무엇이란 말인가,,
딱히 정의하긴 힘들지만 일본인 눈에 비친
나는 어쩌면 일본인 흉내를 아주 잘 내는
한국인으로 보인다는 것일 게다.
한국사람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완전 일본 사람 같으시네요…….”라고
복잡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기도 한다.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작년에 한국에서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오십견 때문에 팔을 움직이지 못해
엄마가 자주 가는 물리치료 병원에 갔다.
내가 해외 거주자다보니 보험이 없어
엄마가 간단하게 모녀관계임을 밝히고
수속을 밟았다. 잠시 후 원무과 직원이
원장실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고 약 십 분 뒤, 원장실에
엄마와 함께 들어갔는데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하고 엄마에게
내 증상을 물었다.
그래서 내가 오십견으로 왔다고 대답했더니
원장님이 깜짝 놀라시면서 한국말을 잘한다며,
일본 사람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저 한국 사람이에요.”
“진짜, 한국 사람이에요? 진짜?”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원장님이
의아해하시자 엄마가 바로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오래 살아가꼬 쫌 일본 여자같이
이상하긴 한디 내 딸이여, 한국사람...”
“…………….”
엄마의 “이상하다”는 표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난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자 원장님이
한숨 놓이시는지 자기가 왜 놀랐는지 얘기하셨다.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아까, 원무과에서 일본에서 온
환자가 있다고 해서 저는
일본인 며느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국분이셨네요. 조금 전에 이 앞에
앉아 계신 걸 보고 전 속으로 어쩜 일본 사람은
저렇게 일본 사람같이 생겼을까 하고
생각했거든요.
한국 사람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어요.
내 눈에는 완전 일본인처럼 보이던데……
그래서 들어오셨을 때도 증상을 어머님께
여쭤본 거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한국말을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사람 참 간사하죠?
아까는 그렇게 일본 사람이라고 확신했는데
또 이렇게 한국말을 하시니까
한국 사람처럼 보이네요…….”
병원을 나오면서 엄마가 나한테
내 머리 스타일이나 옷차림, 모든 게 약간
이상한 데가 있어서 그런다고,
한국 사람 같으면서도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원장님도 착각하셨을 거라고 굳이 설명해주셨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큰언니가 내게 물었다.
[ 케이야,,니 머리 어디에 했어?
일본에서 지금 유행하는 거야?]
[ 아니,,그냥 편해서..왜 이상해?]
[ 응,,아주 이상해..왜 머리를 그렇게...
야무지게 꽉 묶었어? ]
[ 흐트러지지 말라고,,]
[ 참,,희안하다..한국에서는 지금 너 같은
머리 스타일은 없어, 뭐라고 설명해야될까,,
조선족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닌..
그렇다고 한국인은 더더욱 아닌,,아주
이상한 머리 스타일이야...
누가 일본에서 산다고 안 그럴까봐
아주 칼같이 딱 붙혀서,,사무라이 같이..]
[ ...................... ]
[ 그럼 어떻게 하라고 ?]
[ 좀 자연스럽게 풀어,,훨씬 여성스럽고
얼굴도 부드럽게 보이잖아,,
그렇게 않아도 얼굴이 차갑게 보이는데
더 차갑게 보여..]
언니가 가르쳐준대로 머리를 자연스럽게
푼다음 깨달음에게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었다
[ 머리를 왜 섹시하게 그렇게 풀었어?
남자 유혹할 것 처럼?그런 헤어스타일은
일할 때나 직장에서 해서는 안 돼,,]
[ ...................... ]
깨달음의 이 말에 우리 세명 모두 할말을 잃고
난 다시 단정하게 머리를 묶었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엄마와 언니는 깨달음 몰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깨달음이 은근 보수적인 면이 있는
일본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 역시도 일본사회에 맞는 모습과 사고로
일본화?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 머리 스타일은
일본 여성들이 입사면접을 볼 때 하는
아주 깔금하고 정갈한 머리 스타일이다.
어쩌면 깨달음에게 그리고 일본사회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철저히 길들여져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한인 교회를 다녀서 일주일에
한번은 한국어로 대화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러지도 못하고,
내 주위에 한국사람이 한 명도 없다.
물론 후배와 선배가 있어도 서로가
너무 바빠서 얼굴보기가 힘들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나도 적응한 것뿐인데 너무 적응을 잘 한 탓인지
다른 사람들은 거의 일본인화 되어버린
한국인을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외모와 사고도 자꾸만 한쪽으로 치우쳐가고
있음을 조금씩 느낀다.
서로 한국말로 소통하며 천천히 상대를
알아가면서 새로운 한국 친구들을
사귀고 싶지만 이곳이 해외라는 특성상
은근 어려운 것도 있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마음을 열어야하는데
자꾸만 난 혼자 고립되어 가고
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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