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둘째 날, 전날 숙취가 남은 우린
아침부터 나가사키 짬뽕으로 시린 속을
달랬다. 마신 양으로 따지면 적었지만
맥주, 소주, 니혼슈, 와인까지
섞어먹은 탓인지 아침이 개운하지 않았다.
말없이 짬뽕 국물을 먹으면서도 깨달음은
오늘이 마지막이니 먹방을 제대로 해보자면서
뭘 먹을 건지 일단 대충 목록을 말했다.
식사를 하고 나와 쇼핑센터로 옮겨간 우린
깨달음이 새로 사고 싶다는 심플한
샌들을 사고 약간의 쇼핑을 더했다.
물가가 도쿄에 비하면 엄청 싸다면서
좀처럼 쇼핑에 관심 없는 깨달음이
적극적으로 텀블러와 메모장, 필기도구
그리고 비타민제까지 이것저것 구매했다.
그리고 전날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나카스 리버크루즈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30분 정도
후쿠오카 시내를 도는 코스로 저녁 6시 이후
좌석은 인기가 있어서 매진이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기타를 맨 아저씨가
코스를 간단히 설명을 하고는 자신은
무명가수라며 이곳에서 손님들에게 노래를
몇 곡 선사한다고 했다.
조금씩 시내를 벗어나면서 아저씨는
팝송도 한 곡 부르셨는데 깨달음이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면서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
약 30분간의 후쿠오카 시내를 돌고
배에서 내리려는데 아저씨가 후다닥
우리 쪽으로 다가오시더니 팁을 주라며
돈? 바구니 같은 걸 내밀자 깨달음이
또 나를 쳐다봤다.
[ 내가 드릴까? ]
[ 아니,, 내가 줄게... 근데 주기 싫은데...
노래가 별로였잖아..,]
[ 깨달음,, 들려,, 그냥 드리고 내리자 ]
못 마땅한 표정을 얼굴에 그대로 나타낸 채
지갑을 꺼내 천 엔짜리를 주려나 싶었는데
다시 동전지갑에서 500엔을
찾아 아저씨에게 드렸다.
배에서 내려 우린 근처 호텔로 들어가
오전의 커피타임을 가졌다.
[ 깨달음, 왜 아까 동전을 드렸어? 우리
둘이니까 천 엔 드릴 거라 생각했는데 ]
[ 좀 당황스러웠어. 원래 리버크루즈를 타면
기본옵션처럼 가수들이 노래하나보다 했는데
팁을 주라니까.. 옆에 커플들은 그냥
한 푼도 안 주고 내렸어, 원래 안 줘도
되는데 나는 그냥 준거지..가수라기 보다는
그냥 취미로 부르는 것 같던데..]
내가 검색을 해봤더니 시간대별로 다르지만
아이돌 같은 귀여운 여성이 부르기도 하고,
젊은 남성들도 버스킹 하듯, 배가
시내를 도는 동안 노래를 하고 팁을 받는 것
같다고 설명했더니 그러냐고 돈 내고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잘라 말했다.
우린 오후시간을 어떻게 보낼 건지 다시
확인하고 깨달음은 점심으로 먹을 철판구이
키와미야(極みや) 위치와
메뉴들을 미리 봐두었다.
20분정도 웨이팅을 하고 들어가 함바그와
스테이크를 주문해 자기 스타일에 맞게
굽기 시작하는데 깨달음은 약간 덜 익힌
상태로 어찌나 빨리 먹던지
한 덩어리를 더 주문했다.
그렇게 함바그 두 덩이, 스테이크 한 덩이를
먹은 후, 디저트를 먹기 위해 다시 커피숍에
들어가 블루베리 팥빙수를 시켰다.
[ 깨달음,, 우리 위장이 쉴 틈이 없지 않아? ]
[ 먹으러 왔으니 다 먹어야지. 체크해 둔 것은
다 먹고 갈 거야 ]
맛집으로 유명한 곳, 꼭 먹어야 할 곳,
SNS상에서 인기 있는 곳을 엄선해서
골라도 오늘 하루 다 못 먹는 게
억울할 정도라는 깨달음.
우린 저녁을 맛있게 먹기 위해 산책이
필요할 것 같아 커피숍을 나와 텐진역에서
나카스강을 지나가는데
조금씩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산책을 겸한 운동을 한 시간쯤 했을까,,
첫 번째는 맛집은 하카타의 명물인
토리가와 (鳥皮-닭껍질)로 시작했다.
닭껍질을 아주 바삭하게 숯불에 구워
고소하고 기름지지 않아 좋았다.
하카타 사람들은 기본 한 사람당 20개는
먹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양파, 마, 마늘,
토마토구이를 함께 곁들어
30개 정도 먹었다.
적당히 술이 오른 채로 다음은 전날에 먹은
간장맛 모츠나베가 아닌 된장맛을 먹기 위해
예약해 둔 곳으로 가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모츠와 아삭한 양배추를 안주삼아
소주를 또 마셨다.
나는 점점 한계에 와서 더 이상 음식을
못 먹겠는데 남은 국물에 면을 넣어
먹으려던 깨달음이 뭐가 생각났는지
마지막은 라멘으로 장식을 하자고 했다.
[ 깨달음,, 난,, 못 먹겠는데...]
[ 그래도 먹어, 한 젓가락이라도 먹어,
후쿠오카에 와서 돈코츠라멘(豚骨ラーメン)을
안 먹으면 예의가 아니지... ]
[............................... ]
그렇게 라멘집에 앉아 난 생맥주와 군만두를
주문했지만 배가 불러 손을 못 대고 있는데
깨달음은 라멘과 군만두를 번갈아 먹으며
한 그릇씩 깨끗이 비웠다.
참,, 많이도 먹는다 싶어 걱정되었지만 깨달음의
먹탐은 본능적인 것이어서 말려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냥 내버려 뒀다.
배가 빵빵히 불러올라 셔트의 버튼이 터질 듯한
상태로 호텔로 들어온 우린 방으로
안 들어가고 라운지에서 칵테일을 한 잔 하며
후쿠오카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8시부터 땡볕에서 30분 정도 기다려
아침 정식을 챙겨 먹고 우린 공항으로 향했다.
후쿠오카 먹방투어를 제대로 한 깨달음은
공항매장에서 명란젓을 5세트나
사 와서는 날마다 뜨끈뜨끈한 누룽지에
이 명란젓을 올려 먹을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며
후쿠오카는 맛있는 게 너무 많아서 좋단다.
[ 내가 서울에서 일주일 살기 했으면 아마
이렇게 날마다 먹고 다녔겠지? ]
[ 그랬겠지..]
[ 이번에는 못 갔지만 정말 다음에는
꼭 일주일 살기 할 거야 ]
[ 그래.. 꼭 해..]
서울 일주일 살기를 못한 대신으로
여기서 열심히 먹었다는데
아무튼,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고
서운한 마음을 달랬다고 하니 참 다행이다.
그나저나 깨달음 바지 벨트가 한 칸 늘어난 걸 보니
2킬로는 찐 것 같은데.. 다이어트를 어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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