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러 온 깨달음이
헌금함에 서서 지폐를 조심스레 넣었다.
다른 교인들은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봉투에 헌금을 넣는데 자기는 그냥 돈이
보이게 넣으려니 왠지 쑥스러웠다며
봉투를 준비해 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매주 나를 따라 교회에 참석하는
깨달음은 설교시간에 자주 졸아서
내가 도중에 몇 번 깨우곤 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설교가 시작되자
꾸벅꾸벅 졸다가 내 눈치를 한번
보고는 참으려고 애를 쓰다가
다시 또 졸았다.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오다이바로 이동하는 길에 캐롤이
울려 퍼지자 깨달음은 콧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렸다. 크리스마스다운 분위기를 어디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택했다며 내가 뷔폐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예약되는 곳이 이곳밖에 없었다며
음식보다 와인이 괜찮은 게 많으니
술을 마시자고 했다.
오늘은 유명 가수의 디너쇼가 있어서인지
호텔 로비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 메리 크리스마스 ]
[ 메리 크리스마스, 내년에는 일본이
아닌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면
좋겠다. 그치? ]
[ 응, 따뜻한 나라로 가면 좋겠다 ]
깨달음이 조금씩 음식을 가져와 맛을 보며
내년은 어디가 좋은지 얘길 나눴다.
그리고 이제 크리스마스 선물이 서로가
필요치 않은 나이가 됐다며 점점
늙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짠하니 서로
위로하자며 건배를 또 했다.
[ 오늘,목사님이 예수의 탄생에 관한 설교 했잖아 ]
[ 당신 안 졸았어? 졸던데 ]
[ 자다가 듣다가, 자다가 듣다가 했어 ]
[ 근데..당신,,궁금한 게 있는데 매주 나랑
같이 교회 나가잖아, 벌써 3년이 넘은 것 같은데
거의 설교 시간에 졸잖아,,그리고 믿음 같은 게
전혀 안 생긴다고 했지?,,그래서 말인데
그냥 집에서 쉬어도 돼, 꼭 교회 안 나와도 돼 ]
[ 싫어, 그래도 교회 나갈 거야,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졸아, 그리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언젠가 불연듯, 성경말씀이
진심으로 믿어지는 날이 오겠지,
안 오면 어쩔 수 없고,,]
[ 그냥,,집에서 편히 쉬면 좋을텐데.. ]
[ 아니야,,난 교회에 나오는 게 재밌어.
말씀이 재밌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랑
같이 기도하고,,같이 움직이는 게 ]
[ .......................... ]
결혼을 하고 내가 주일마다 교회를 나가면서도
자기에게 한 번도 같이 가자고,
기독교를 믿으라고, 예수가 어쩌고,
성경이 어쩌고 자신의 종교에 대한 강요를
한마디 하지 않는 내 모습이 좋았단다.
그렇게 5년정도 지나던 어느 날 예수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기독교의 탄생 같은 걸
알게 되었고 교회가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
나름 공부를 하게 되었단다.
깨달음이 교회에 오게 된 이유는 단순히
아내인 내가 일요일마다 성실히 나가는
교회라는 곳이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무슨 내용의 설교를 하는지 궁금해 자기도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컸고
또 다른 이유는 휴일을 자기 혼자
보내는 게 싫어서 따라 나섰다고 한다.
횟수로 치면 벌써 3년을 아주 착실히
주일을 잘 지키지만 여전히 성경말씀에
의문점이 많고 목사님 설교가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자기는
교회 체질이 아니라고 했다.
[ 근데.. 왜 내가 한국 가고 없을 때도
혼자 교회 나갔어? ]
[ 그냥, 습관처럼 나간 거야, 별 뜻은 없어 ]
성경 말씀이 나온 얘기들이
과학적, 논리적,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면서
내가 없을 때도 착실히 교회에 나가는
깨달음의 심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튼, 깨달음은 깨달음대로 아니, 일본식으로
믿고 싶은 신을 그때, 그 때 상황에
맞게 골라 믿고 있다.
오늘도 교회엔 새로 온 사람들이 많이 와서
예배를 봤다. 그걸 보고 있던 깨달음이 분명
이 교회에서 결혼한 커플일 거라며 예수님
생일날을 같이 축하해 주러 온 거라고
내게 귓속말을 했었다.
와인을 다 마셔갈 즘, 케익을 두 접시나
담아온 깨달음.
[ 케익 먹는 거야? ]
[ 응, 크리스마스는 케익 먹어야지 ]
[ 치킨도 먹을 거지? ]
[ 아까 하나 먹었어 ]
[ 깨달음, 내년에 이뤘으면 하는
소원 같은 거 있어? ]
[ 없어, 당신은? ]
[ 나도 없어.. 근데,,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면 설교시간에 되도록이면 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
[ 알았어,, 노력은 해 보겠는데.. 그래도
잘 것 같아,, 설교가 재미없으면..]
[ 그래.. 그럼 당신 맘대로 해..]
깨달음은 마지막 와인잔을 부딪히며
한국말로 [ 예수사마, 생일 축하해요 ]
라며 환하게 웃었다.
결혼은 기독교식으로 교회에서 목사님 앞에서
서약을 하고 예식이 끝나면 절에 가서
결혼했다는 신고식 같은 걸 하는 일본인들은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날은
별 의식없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케익과 치킨을 꼭 먹는 날일 뿐이다.
설날에 떡국 먹는 것처럼...
블로그 이웃님께도
[ 메리 크리스마스, 좋아요~ ] 랍니다.
어느 해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순신 장군, 일본에서 만나다 (0) | 2024.08.13 |
---|---|
6개월, 블로그를 쉬었다 -1 (28) | 2024.07.14 |
20년만에 연락 온 친구에게 (5) | 2023.12.04 |
요즘의 블로거,,그리고 나 (7) | 2023.11.14 |
일본인들 사이에는 없다는 그것 (1) | 2023.11.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