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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시아버님이 보여주신 배려와 사랑

by 일본의 케이 2017. 10. 4.


깨달음이 잠긴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정막감이 맴돌았다.

아무도 안 계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안방, 부엌, 이층, 그리고 마당까지 

그 어디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고

냉냉하고 차분한 공기만이 맴돌았다.

방문들을 열어 먼저 환기를 시키고

 깨달음은 마당에 나가 아버님이 

애지중지 키우시던 화초들에 물을 주었다.

시부모님이 집을 비운지 채 10일도 되지 

않았는데 포도는 주렁주렁 열렸고, 

감나무에 감도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교토에 사시는 서방님이 시간이 날 때마다

시댁에 들러, 집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것을 챙겨 요양병원에

갖다드렸다고 하던데, 방 여기저기엔

뭔가 물건을 찾은 듯한 흔적,

덜 닫힌 서랍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린 간단한 점심을 먹고

난 어머님 옷장과 장롱, 깨달음은 아버님이

주로 사용하셨던 안방쪽 정리에 들어갔다.

옷장서랍에 빽빽히 넣어진 시아버지 속옷과 

내복들, 여름용, 겨울용으로 분리해서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리고 어머님이 취미로 하셨던 뜨게실들이

서랍 한 곳 가득했다.

이번에 우리가 시댁에 내려온 이유 중에 하나도

집안 정리를 위해서였고 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버려할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해야했다.

[ 깨달음,,,이거 버려도 될까? ]

[ 응,,새것들 빼놓고는 그냥 모두 버려,,

어차피 놔 두어도 다시 뜨게질을 할 일도 없고,,]

[ 근데,,,너무 아깝다...]

[ 아까워도 할 수 없지..]

[ 색색이 예쁜 조각천들도 몇 박스가 있는데..]

[ 그래도 그냥 버려야지...]

[ 여기,,기모노도 버려? ]

[ 음,,,기모노는 엄마한테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처분해야할 것 같은데..]

[ 알았어, 그럼 그냥 둘게...]

두분이 살아계시는 생전에 이런 정리를 하는 것도 

기분이 묘했고,,막상 돌아가신다면 또 얼마나

복잡한 심경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있을지..

별로 생각하고 싶은 않은 미래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우리가 집을 나선 시간은 병원의 

면회시간인 오후 1시였다.


[ 아버님,...저 왔어요,.]

[ 오,,케이짱이 왔구나,,케이짱, 몸은 어떠냐?]

[ 네, 좋아졌어요, 제가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해요]

[ 입원했다고 해서 우리가 걱정을 많이 했단다.

이렇게 다시 얼굴 볼 수 있어 참 다행이구나,

지금은 다 나았어? ]

[ 네, 괜찮아요,,다 나았어요..]

이 때, 깨달음이 핸드폰에서 내가 입원중일 때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사진을 보여드렸다.

나도 처음보는 사진이여서 깜짝 놀랬는데 

 마취에서 깰려고 헤매고 있을 때

몰래 찍었다고 했다.



[ 사진 속에 케이짱 얼굴이 다른 사람 같구나,,

아프지는 않았니?, 정말 다 회복 된 건지,,,

힘들텐데 이렇게 와 줘서 너무 고맙구나 ]

[ 아니에요, 이제야 오게 되서 죄송해요,

근데 아버님 살이 좀 빠지신 것 같아요 ]

[ 응, 3키로나 빠졌어..그 대신 니 엄마는

2키로 쪘단다..걷는 것도 좋아지고,,]

[ 식사가 불편하셨어요? ]

[ 아니,간식을 못 먹게 해서 군살이 빠진 거란다 

슈퍼가 근처에 없어,1층에 자동판매기 뿐이야,,]

[ 그래서 좋아하시는 아이스크림도 과자도

못 드시는 거에요? ]

[ 응,,그래서 뱃살이 빠졌단다..]  

아버님이 하신 농담에 잠시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음이 오전중에 찾은 통장들을  

보여드리며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했다.

집 문서와 각종 관련서류는 모두 남동생인

서방님에게 넘겼고, 통장에 남은 잔금,

연금, 적금들도 하나씩 해지를 하다는

 재산관리 상황을 설명해 드렸다.

다음으로 행여 수술을 해야할 일이 생기거나

생명연장 치료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을 하듯 의견을 물었고 두 분 모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셨다.

[ 그래,,모든 건 니네 형제 둘이서 알아서 하렴,,

아, 장례식 비용도 필요할테니

그것도 좀 생각해 두길 바란다 ]

[ 물론, 다 생각하고 있어, 검소하게 할 거니까 

장례비용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거야,,]

아주 덤덤하게 얘기하는 깨달음이 좀 달리보였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집에서 챙겨온 것들을

꺼내 보여드리고 서랍에 넣었다.

[ 속옷이랑 양말, 수건에도 두 분 성함을 여기에

 다 적어 두었으니 분실하지 않으실 거에요 ]

[ 케이짱,,,고맙구나,,근데,,이 마후라를 여기서

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 왜요, 곧 추워지니까 필요할 거에요,

또 저희랑 다음에는 같이 외출해서

아버님 좋아하시는 스테이크랑 초밥 드시러 갈 때

마후라 하시고 가면 좋잖아요..]

[ 그렇구나,,그래,,그 때 하고 가야겠구나,,]


우린 마트에 가서 필요한 것들과

간식거리를 사서 다시 들어왔고 마침

저녁식사를 끝낸 어머님이 쇼핑수레를 밀고

병실로 들어오셨다.


[ 어머님, 완전히 많이 좋아지셨네요,

걸음걸이가 예전으로 돌아오신 것 같아요]

[ 응,,걷는 게 아주 편해졌어..]

[ 다행이에요, 그럼 저희들 다시 올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시고,,]

[ 응,케이짱 얼굴 봐서 다행이고,

먼 길 와 줘서 고맙고,,아프지 말거라,,

그리고 이젠 우리 걱정 말거라,,여기서 모두

알아서 해주니까 마음 놓고 있으렴..]

[ 네,,]

병실을 나오자 복도엔 아버님이 귀하게 여기신

분재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지금 시부모님이 계신 곳은 병원에 병설된 

건강보호 요양센터이다.

두 분이 들어갈 요양원에 자리가 나올 때까지

지금 이곳은 임시 요양원처럼 계신다고 했다.

이틀에 한번은 목욕도 시켜주고, 

삼시세끼 잘 나오고, 몸상태에 따라 약도

 처방해 주고 빨래도 해줘서 

너무 편하시다고 했다.

월요일은 붓글씨 쓰기, 화요일은 종이접기

수요일은 가라오케, 목요일은 악기연주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며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접으셨단다.

뭐니뭐니해도 아내와 함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는 아버님..


http://keijapan.tistory.com/1005

(부모님 마음을 우린 감히 알 수 있을까,,)

어머님이 입원하고 계시는 동안,무엇보다 

외로워서 너무 싫으셨다는 아버님..

당신의 몸이 자유로우면 어머님 대신 모든

집안일을 하고 싶은데 그것도 안 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님이 또 고생을 할 것 같아서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굳히신 아버님..

내가 작은 목소리로 집에 돌아갈 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가시겠냐고 넌즈시 물었을 때, 

집안일 하느라 어머니가  입원할지 모르니 

당신만 참으면 모든게 원만하게 진행되니까

이렇게 적응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미소를 보여주셨다.

 아내를 위해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집을 떠나

이 생활을 택하신 아버님이 참 위대하게 보였다.

마지막은 꼭 집에서 맞이하고 싶다고 눈물까지 

흘리셨던 분이,,아내를 위해 포기하신 거였다.

아버님이 3키로나 살이 빠지신 것도

어쩌면 이 요양원 생활이 썩 편하지만은

않아서인지 모른다. 하지만 두 늙은이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마지막까지 아내랑 함께 지내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아버님 얼굴은 아주 편안하게 보였다.

이 선택은 부부로서 아버님이 마지막까지

 어머님께 보여준 배려이고 사랑이 아닌가 싶어

왠지 숙연해진다.

 병원을 나서며 우리 자식들은 정작 두분께 

해드린 게 별로 없음을 깨달았다.

 그저 건강한 하루를 보내시길 기도 

드리는 것 밖에는....

 그렇게 우리들은 부모곁을 또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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