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웃님께서 소포를 보내주셨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소포여서인지 깨달음이 박스를
보자 입꼬리를 올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누가 보내주신 거야? ]
[ 블로그 이웃님이, 저번에 말했던 그 분 ]
[ 아,,,근데 이제 안 받기도 하지 않았어? ]
[ 그랬는데 보내주신다고 그래서 그러면
내가 필요한 걸 보내달라고 그랬어 ]
내 말은 반으로 흘려 들으면서 소포 내용물을
하나씩 꺼낸다.
[ 이거 뭐지? 쥬스? 이건 또 뭐야? 미역? ]
미역귀, 냉면, 비빔면,카스타드.누룽지 등을 꺼내고
제일 밑에 있던 쌍0탕을 보고 넙죽 인사를 한다.
[ 나는 당신 이 과자를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
[ 아니야, 난 이 감기약이 더 좋아 ,이 과자는
아버지가 맛있다고 해서 드릴려고
당신이 부탁했구나? ]
[ 응, 그런 것도 있고, 당신도 오랜만에 맛 보라고]
[ 역시, 당신은 착한 데가 있어..]
[ ............................... ]
참 귀하게 맺어진 블로그 이웃님이다.
뭔가를 보내고 싶어하시는 마음을 나도 알기에
염치없지만 필요한 것을 부탁드렸다.
난, 한국에서 온 소포를 받을 때마다 아직도
가슴이 찡해온다.
내가 부탁을 해서 받은 소포일지라도
누가 보낸지 알고 있더라도 우체부 아저씨가
인터폰을 통해 [국제소포입니다]라고 하면
그 때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18년 전, 내 유학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교가 끝나면 난 바로 아르바이트를 해야했다.
집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공부하고 생활을 해야했던 나는 옆 방
유학생들에게 날아온 한국 소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김치를 시작으로 각종라면, 과자, 책까지
부모님과 친인척, 그리고 친구들이 보내주었을
크나큰 소포박스를 자랑하듯 양 손으로 품고
무거워서 밀면서 자기 방에 가져가는
유학생들이 참 많이 부러웠었다.
나도 우리 가족들에게 좀 보내달라고 했으면
보내줬을건데 난 그 때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왜 못했는지, 아님 안 했는지 확실한 이유가
있진 않았지만 그냥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것과 행여 말했다가 안 보내주면 많이 속상할 것
같아서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 같다.
룸메이트는 집에서 매달 생활비를 받아서
유학생활을 했고, 소포도 자주 왔었는데 그녀에게
소포가 오는 날이면 난 방에 들어가기를
왠지 주저했고 그런 날이면 1층 컴퓨터실에서
어슬렁 어슬렁 괜시리 시간을 보냈었다.
룸메이트가 같이 먹자고 꺼내서 주면 왜 그렇게도
쑥쓰럽고 미안하고 아니 스스로가 초라했는지..
나이 30넘어 뒤늦은 유학길에 올라 어린 대학생들과
함께 바둥거리며 치열하게 버티고 있는 내 모습이
위태롭기도 하고 한없이 작아져가는 듯했다.
괜찮다고 난 별로 안 좋아한다고
방을 나서기도 했었다. 신라면을 맛있게
끓여먹으며, 땅콩카라멜을 조심히 하나씩
빼 먹는 게 느껴지면 난 내 책상에 앉아
다 외운 한문 노트를 꺼내 거기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덧쓰기를 또 하고 또 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선 거의 먹지도 않았던 새우깡,자갈치,
초코파이가 왜 그리도 먹고 싶었던지...
코리아타운에 가면 없는 것 없이 다 팔고,
단돈 200엔이면 각종 라면이며 과자를 맘껏
사 먹으면 됐으련만 난 왜 그리도
궁색한 생활을 택했는지
참 못났다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한다.
그 당시 내 머릿속엔 100엔이면 달걀을 사서
반찬을 하나 더 할 수 있고 200엔이면
신주쿠까지 전철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기숙사비를 낼 수가
없었고 행여 성적이 떨어지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는 강박증이 가득했던터라 궁상맞은
시간들을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생긴 아련한 기억 때문인지 알 수없지만
난 결혼을 하고 한국에 소포를 보내는 게
작은 기쁨이 되었다.
물론 경제적, 정신적으로 많은 여유가 있어서도
소포보내기를 즐겨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골라
보내는 재미가 상당히 크다.
보내는 거라고 해봤자 요즘 일본에서 인기 있는
과자나 사탕, 내가 써 보고 좋았던 주방기구,
그릇, 효과가 괜찮았던 화장품이나 상비약 등,,
값으로 치면 별 거 아니지만 하나씩
챙길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지고 즐겁다.
소포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도 참 재밌고
기분이 좋아진다.
[ 저번에 보낸 콘후레이크 너무 맛있어서
우리 애들이 서로 먹으려고 난리야 ]
[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이렇게 다 보냈어.
그냥 했던 말인데 그걸 기억하고 보내주면
미안하잖아,,,,.]
[ 종합선물세트 받은 기분이래, 우리 남편이 ]
[ 우리 아빠가 일본 싫어하는데 니가 보내준
그 약이 너무 좋다고 나보고 사오라고 그랬어 ]
[ 언니,,소포 받고 눈물 났어요,..그 시절이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학생활을
같이 했던 후배들이다.
지난번에 우리 큰 언니가
[ 너 소포 보내는 게 취미지? ]라고 했었다.
[ 응, 취미야, 그니까 말리지 마..]
보내지 말라고 해도 보낸다는 걸 잘 알기에
다들 포기 한 것 같았다.
내가 한국에 소포를 보내는 이유는 18년전,
여러모로 그리움과 허허로움이 쌓여가던
고된 유학생활 중에 가끔씩 받아 보는
한국 소포는 뭐라 말로 형용할 수없을 만큼
가슴 벅찬 기쁨이고 행복이였다.
물건 하나하나에 보낸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지쳐있는 나에게 잘 하라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고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최고의 선물이였음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한국에 보내는 소포가
비록 작고 별 게 아니지만 가족, 친구, 선후배,
블로그 이웃님들 모두가 조금이나마
기분전환이 되고 잠깐이나마
유쾌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만약에 내가 유학시절, 윤택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했다면 아마도 한국에서 온 소포가
담고 있는 정성과 관심, 사랑을
온전히 못 느꼈을 것이다.
조금은 초라하고 궁색했고 힘들었던
유학생활이였지만 내게 살아가는데 잊지
말아야할 소중한 가치를 가르쳐 주었기에
지금은 그 시간들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에겐 여전히 불편한 일본의 이 문화 (6) | 2019.06.21 |
---|---|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니다 (22) | 2019.06.04 |
일본 시어머니가 처음으로 보여준 모습 (3) | 2019.05.14 |
블로그 권태기에 서 있는 우리 부부 (48) | 2019.04.22 |
출장길에 남편이 사온 선물 (3) | 2019.04.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