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난후 출근을 하려던 깨달음이
무표정으로 프린트물을 내밀었다.
2020년,굿디자인 어워드에 깨달음 회사에서
완공한 아파트가 디자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디자인컨셉과 포인트, 그리고 설계 디자이너의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 당신 사진은 없네? ]
[ 나는 안 내지...직원들이 나와야지..]
[ 그래도 축하해~~]
[ 축하할 일 아니야, 100선에 들어야 하는데
100선에 못 들어서 별로야 ]
[ 그래도 상 받았으니까 좋은거지 ]
[ 하나도 안 기뻐 ]
정말 기쁘지 않다고 했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자기 생각대로 디자인변경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고 직원(디자이너) 의견을 존중해
주다보니 수정하고 싶은 곳이 있었지만 참았단다.
조금만 더 수정을 했으면 100선에 들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많단다.
깨달음이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나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냥 당신 작품이 아니라
생각해라, 그래도 회사 실적으로 남았으니
좋은 게 아니겠냐고 했는데도 미련이 남는단다.
코로나로 인해 긴급사태선언이 됐을 무렵,
깨달음 회사의 계약이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었다.
급기야 지난달엔 한꺼번에 계약 취소가 잇달아
생기면서 깨달음은 요즘 의기소침해 있었다.
직원들은 반 이상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회사를 나가도 훵하고 할 일이 별로 없다며
최근들어서는 4시반이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와중에 받은 디자인상인데도
깨달음은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하나도 기쁘지 않다는 말이 자꾸 신경쓰여
깨달음에게 저녁에 술을 한 잔 사겠다고 하고
약속장소에서 기다렸다.
[ 당신은 축하할 일 아니라고 했지만
난 축하해주고 싶어. 그래서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거야 ]
[ 그럼 나 오늘, 술 많이 마실거야 ]
[ 응, 마셔~맘껏 ]
주변 사무실에서는 축하한다고 부러워했지만
자긴 지금 생각해도 많이 아쉽단다.
마지막 도면체크를 할 때 마음에 안 드는 디자인이
많아서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직원 사기도 있고 그렇게 성장하며 배워 갈거라
생각해서 그냥 그대로 제출하게 했단다.
[ 그래도 상 받았잖아, 그리고 또 그 직원은
자신감도 생기서 더 열심히 하겠지 ]
[ 그래서,,그냥 나도 축하해줬어 ]
포상금도 줄 생각이야 ]
[ 얼마 줄건데? ]
[ 월급 반만큼은 줘야지 ]
어느샌가 아늑한 분위기로 변해버린 실내를
둘러보며 우린 잠시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운하를 유유히 지나는 유람선엔 커플들이
추운지 서로 부등켜안고 있었다.
[ 깨달음,,,회사 많이 힘들어? ]
[ 꼭 그런 건 아닌데,,자꾸 계약이 취소되니까
힘이 빠져서 그래..]
[ 혹시..회사가 많이 힘들어지면
바로 세우려고 애쓰지마,, ]
[ 무슨 말이야? 애 안 쓰면 어떡해? ]
[ 그냥, 쉬라고,,. 힘들게 고민하지말고 ]
[ 그럼 돈을 어디서 벌어? 노후는 어떡해? ]
[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책임지든지..]
내가 책임진다는 말에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다그치듯 재차 물었다.
정말 자길 책임 질 거냐고, 진짜 회사 접으면
자긴 놀아도 되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신을 먹여살릴 것인지 말해달란다.
예전부터 지나가듯 했던 말이긴 한데
이번에는 좀 더 확신을 줘야할 것 같아서
내 나름 계획세웠던 노후생활과 경제상태도 좀
알려주고 내가 책임질테니까 그냥
힘들면 쉬라고 다시한번 얘기했다.
[ 진짜지? 약속하지? ]
[ 응 ]
[ 그래도 좀 미안하니까 귀국 할 때까지는
내가 돈을 벌고, 한국에서 살 게 되면
당신이 버는 걸로 해도 되겠다 ]
[ 아니, 한국에 안 가더라도 내가 책임질게,
아무튼, 혹시나 회사경영이 힘들어지면 몸고생,
마음고생하면서 회사를 다시 일으키려
하지 말라는 말이야, 그냥 야마모토 군에게
회사를 넘겨 주고 놀러 다녀~~ ]
내가 너무 포인트만 꼭집어 얘기해서인지
어리둥절하다며 자기 회사가 안 망할 거라
알고 있으니까 자기한테 그런 소릴 자신 있게
하는 게 아니냐면서 의심스럽단다.
책임질 자신이 있어서 하는 말이라 강조했지만
여전히 의심에 눈초리로 날 바라봤고
우린 그렇게 옥신각신 얘기하다 맞은편에 있는
바 라운지로 자리를 옮겼다.
[ 당신이 나를 먹여살리겠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으면서도 왠지 이상해,술을 한 잔 더 해야겠어 ]
[ 많이 마셔 ]
깨달음은 위스키를, 난 모히토를 시켜
차가워진 밤바람을 맞으며 한숨에 들어켰다.
깨달음에게 난 다시 정리해서 말했다.
아까 말 한 것처럼 행여 회사가 기울어지면
일 거리가 없다고 속 끓이고, 마음 쓰고 그러지
않았으면 해서 그러는 거라고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야할 이유도 없고,
연금도 나올 것이고,,뭐 이래저리 털어보면
우리 둘이 죽을 때까지 그럭저럭 살 수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안단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그런데 회사일이 잘 안 풀리면 제일 먼저 직원들이
걱정되고 그러다보면 조급함이 생기기도 한다면서
회사가 망해도, 돈 안 벌어도 괜찮다고
말해줘서 고맙단다. 그리고 너무 든든해서
정말 기분이 좋아졌고 왠지 짊어진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는 깨달음....
[ 한국에서 살게 되면 내가 다 한다고 했잖아,
당신이 여기서는 열심히 해줬으니까 ]
[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마음이 편하네.
그럼,, 나 매달 용돈도 줄 거야? ]
[ 응, 줘야지, 얼마 필요한데 ]
[ 음,, 200만원 줄 수 있어? ]
[ 200만원? 좀 많지 않아? ]
용돈은 그 때 가서 다시 협상?하기로 하고
우리 바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뒷모습엔 여전히 쓸쓸함이 묻어 있지만 훨씬
밝아진 표정인 깨달음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오너로서 가장으로서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이 꽤나 무거웠을 것이다.
그 짐을 조금씩 덜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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