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데 난 잠깐 일이 있어 외출을 했다.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는 그 분을 만나기 위해
그분이 약속장소로 지정한 우에노(上野)로 나갔다.
간단히 차를 한 잔 할 거라 예상했는데
역 근처 맛있는 디저트로 유명한 곳이 있다며
그곳으로 가자고 하셨다.
난 달달한 것들은 거의 먹지 않지만
언제나처럼 그분의 의견을 존중,
한시간정도의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마음의 상처는 사람에게서 받고, 치유 또한
사람에게서 받아야하는 아이러니한 불변의
법칙에 약간의 진저리가 났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나머지 일들을 처리하고
깨달음은 거실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오후 5시무렵 내 방 문을 5센치정도 열고
왼쪽 눈과 입술만 문틈 사이에 넣고서는
저녁엔 잡채가 먹고싶어요라고 했다.
[ 왜? 들어와서 말하지 ]
[ 아니, 당신 공부하는 거 같아서 방해 안하려고 ]
[ 잡채 먹는다고? ]
[ 응,,먹고 싶어. 유튜브에서 봤거든..]
[ .......................... ]
잡채에 서비스로 달걀말이까지 해줬더니
엄지척을 한 번 보이고는 맛있게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설지지를 하는데 시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지난 2월부터
아버님은 거의 매일 우리에게 전화를 하신다.
오늘은 잘 익은 포도가 세송이나 도착했는데
달고 맛있어서 간호사들이랑 나눠드셨고
어머님은 포도를 싫어해 쥬스를 사드렸다고 한다.
또 우리가 보내드린 과자박스도 함께 받았다며
센베가 아주 고소하고 맛있다고 하셨다.
우체국에서 정기적으로 보내드리는
제철과일과 각지역의 특산물들 이외에
우리가 이틀에 한번씩 보내드리는
먹거리들이 도착할 때마다 전화를 하신다.
보내줘서 고맙다는 말씀이 끝나면 코로나로
면회사절이 된 요양원 사정을 얘기하시고
이렇게 죽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빠트리지 않으신다.
그런 말씀을 하실때면 깨달음은 안 돌아가시니까
괜찮다고 좀 성의없이? 대답을 하곤 한다.
매번 같은 소릴하셔서인지 깨달음도 그러러니 하고
대충 가볍게 넘어가려하는 게 보인다.
통화를 끝내고 우린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언제나처럼 깨달음이 먼저 안부인사를 묻고
나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엄마는 요즘 많이 힘들다고 하신다.
아무곳도 갈 수 없고, 추석 준비로 시장에
가야하는데 시장에도 자유롭게 갈 수가 없으니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하시면서 이대로 죽어도
많이 살아서 후회도 없고 미련도 남지 않았단다.
그래도 잘 챙겨드시고, 올 해만 잘 버티시면 내년에는
다시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옆에서 깨달음이
갑자기 내 쪽을 향해 [ 어머니, 반찬 먹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많이 많이~]라고 하자 엄마가
뭔가가 울컥 하셨는지 훌쩍이셨다.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 엄마,깨서방이 올 추석에 맞춰서 가고 싶어 했는데
못 가서 그래, 원래 엄마 음식 좋아해서
계속 먹고 싶다고 그랬거든 ]
[ 긍께말이다..뭐든지 맛나게 먹는 깨서방이
나도 보고 싶은디 오도가도 못하고 환장하것다.
테레비에서 일본말 하는 사람이 나오믄
깨서방 생각이 나고 언제나 다시 얼굴을 볼란가
모르것고,,,, 지금 생각해본께
니기들이 1년에 두번, 세번씩 그 멀리에서부터
여기 시골까지 자주 와 줬는디 더 잘해줄 것인디,
맨날 못해준 것만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 그런말 마시라니까..왜 그래..]
[ 맛난 것도 좀 더 해주고, 깨서방도
더 이뻐해주고 그럴 것인디..]
[ 아이고,,엄마만큼 깨서방 이뻐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걸 알고 깨서방이 얼마나 건방진데.
너무 이뻐해줘서 탈이야 ]
엄마와 어렵게 통화를 끝내고 깨달음에게 당신이
보고 싶다고 하니까 엄마가 우셨다고 했더니
언제 어머니를 만났는지 물었다.
[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때 엄마집에서 케익
먹었잖아,,그 때보고 못 뵙지..]
[ 그러네..우리가 가야하는데,,올해는
못 갈 것 같고,,당신이라도 가면 좋을텐데 ]
9월 중순경, 재입국 허가(영주권자)를 조건없이
수용하겠다는 얘기가 있긴 했지만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선 모르겠고 재입국허가가
풀린다해도 외국인인 깨달음은 갈 수가 없다.
https://keijapan.tistory.com/1332
( 우리가 더 미안해요. 엄마 )
[ 어머님이 또 무슨 말씀 하셨어? ]
[ 혼자 계시는 게,,너무 외로우신 가 봐,,,]
[ 그러니까, 당신이 그냥 10월에 한국에 들어가지?]
[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 재입국 안 되면 그냥 계속 어머님이랑 있어,
재입국이 풀릴 때까지.. ]
[ 여기 일은 어떻게 하고? ]
[ 그냥 쉰다고 그래, 아니 그만 둬 버려 ]
[ .......................... ]
자식이 5명이나 있는 우리 엄마,,남들은
자식들이 그렇게 많으면서 왜 홀어머니를 모시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변명밖에 되지 않지만 자식이 5명, 10명이여도
모실 수 없는 상황이면 못 모시는 것이다.
모든 게 핑계이며 불효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한편,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주변과 타협하며
함께 살아가는 자식들도 꽤 있다.
난, 엄마가 계시는 광주에서 작은 갤러리를 하며
나는 그림을 그리고 깨달음은 우동을 빚으며
살아가는 노후를 꿈꿔 왔었다.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 가야하는데....
현실이 자꾸 내 발목을 붙들고 있고,
시간은 자꾸만 서둘러라 재촉한다.
지난 크리스마스날, 케익을 앞에 두고
아이처럼 즐겁게 손벽을 치시던
엄마 모습이 아련해서 가슴이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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