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깨달음은 뭔가 특별한 걸 먹고
싶어 한다. 숯불갈비를 먹으러 갈까 망설이다
최근 건강다큐를 본 게 기억났는지
굽는 것보다는 삶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보쌈을 먹자고 했다.
보쌈을 먹으려면 생김치가 있어야할 것 같아
마트에 갔는데 배추가 엄청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 깨달음,, 좀 넉넉히 사서 담글까? ]
[ 나야 좋지만 당신이 힘들지 않아? ]
[ 어차피 보쌈용 김치 할 거니까 ]
김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빠르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담는 김에 담아두자는 생각이였는데
막상 배추를 씻고 절이고보니 너무
많이 사 온 것 같아 약간 후회했다.
[ 깨달음,, 보쌈 오후에나 먹겠는데 ..]
[ 괜찮아 ]
내가 배추를 씻는 동안 깨달음에게
깍두기를 썰어달라고 했더니 얌전히
아주 알맞은 사이즈로 잘 썰었다.
[ 이 깍두기도 친구들 줄 거지?]
[ 어떻게 알았어?]
[ 김치를 이렇게 많이 담는다는 건 친구들에게
보내려는 거잖아, 마침 날도 추워지고 해서
다들 받으면 좋아할 거야 ]
맞다. 날이 추워지면 내 김치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하는 김에
넉넉히 담는 거였다.
오후가 돼서 난 김치를 버무리기 시작했고
깨달음은 마트에서 막걸리와 굴을 사 왔다.
보쌈 익어가는 냄새가 나자 깨달음이
한국에서 김장하던 날 분위기가 난다고
하면서 주방에 서서 보쌈을 쳐다보고 있었다.
[ 깨달음. 볶은 깨 좀 건네줘 ]
[ 깨달음. 그리고 우체국에 전화해서
저녁에 와 달라고 해 줘]
[ 깨달음, 보낼 곳 주소도 다 적어 둬 ,
아, 또 박스랑 사이즈 맞춰 준비해 줘 ]
[ 너무 시키는 거 아니야? ]
[ 그럼, 당신이 좀 버무릴래? ]
[ 아니 그냥 이거 할게 ]
가끔 자기가 버무리겠다고 하던 깨달음이
오늘은 손대고 싶지 않아 했다.
박스도 준비를 다 하고 나서
우린 밥상을 차렸다.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생김치에
보쌈을 싸서 먹는데 내가 사진도 찍기 전에
깨달음 입안은 보쌈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맛있냐고 물어도 입이 꽉 차서 말도 못 하고
엄지 척만 올렸다.
[ 대박, 대박, 정말 맛있어. 죽인다.
오늘이 최고로 맛있는 거 같아.
김치도 간이 딱 맞고 막걸리도 대박이야 ]
난 대박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깨달음은 적절할 때 잘 표현하고 있다.
배가 고팠던 것도 있고 먹고 싶어 했던
보쌈이어서 더 맛있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 이 김칫소가 핵심인 것 같아. 굴이랑
같이 먹으면 입에서 녹는다, 녹아 ]
종로에 유명한 맛집이라 갔던 보쌈집에서
실망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역시 보쌈은 김치 맛이 좌우한다고
또 입안 가득 넣으며 친구들이
받으면 좋아하겠다고 했다.
[ 코로나가 아니면 집에서 한식파티 할텐데..
그러면 이렇게 보쌈도 먹을 수 있고 좋은데 ]
[ 그러지..파티하면 다 온다고 그럴거야 ]
결혼하고 일본 친구들, 한국친구들 모두 불러
매년 한식 파티를 했었는데 내가 갱년기를
맞이하고 여기저기 병원을 다니면서
못했고 이번에는 코로나로
파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https://keijapan.tistory.com/1280
막걸리에 보쌈을 음미하며 즐긴 다음,
깨달음이 만들어준 상자에 김치와 깍두기
창난젓 무침을 넣어 포장을 하고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다.
[ 오늘은 4명만 보내는 거야? ]
[ 응, 창난젓이 떨어져서 내일 사다 양념하고
나머지 친구들한테는 보낼 생각이야, 근데
레시피 이번에는 안 넣었는데 괜찮겠지? ]
[ 무슨 레시피? ]
[ 김치찌개랑 돼지김치볶음, 김치 부침개 ]
[ 이젠 안 가르쳐줘도 잘 먹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김치랑 치즈 올려서
샌드위치 만들어 먹었다는 녀석이 있을
정도니까, 우리가 염려할 필요 전혀 없어 ]
레시피 이외에도 김치에서 신맛이 날 때
물이 나왔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메모를 적어두었는데 오늘은 정신없이
하다보니 생략하고 말았다.
https://keijapan.tistory.com/1464
오후 6시. 우체부 아저씨가 가져가고 나서 난
마지막 설거지를 했고 깨달음은 거실을
닦으며 뒤처리를 하면서 완전 김장을
한 것처럼 힘들다고 한국사람들이
왜 사 먹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했다.
[ 깨달음, 아마 나도 한국에 살았으면 이렇게
매번 김치 담지 않았을 거야 ]
[ 그랬겠지.... 우리 먹는 것보다 친구들
주려고 담는 경우가 많으니까..당신도
피곤하지? 김치 하느라 ]
[ 아니. 괜찮아 ]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렇게 피곤함은 느끼지 못한다.
https://keijapan.tistory.com/791
https://keijapan.tistory.com/1310
내 주변, 일본인 친구들뿐만 아니라
한국 지인들에게 전라도식 김치를 맛보게
하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받는 이들이
여러 용도로 김치를 이용해 요리를 만들어
먹는 걸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일반 슈퍼나 마트를 가면 누구나, 어디에서나
쉽게 살 수 있는 김치이지만 그래도
한국인인 내가 직접 만들어 주는 김치맛은
조금은 특별할 거라고 생각한다.
굳이 특별하지 않더라도 본고장의 맛을
볼 수 있음에 기뻐하고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내가 일본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계속해서 담아 보내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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