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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새벽에 울린 카톡...

by 일본의 케이 2021.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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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하러 찾은 병원엔

크리스마스트리가 외롭게 서 있었다.

좀 더 풍성하고 좀 더 따뜻함이 묻어 나오게

장식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진찰실로 향했다. 

옵션으로 신청했던 검사까지 마치고 나면

10시가 넘을 거라고 했다.

시력부터 시작해 마지막 부인과까지

순조롭게 진찰을 하는데 부인과 초음파를

하는 중에  갑자기 의료진과 간호사가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 자궁근종 수술하셨죠? ]

[ 네...]

[ 근데.. 여기,, 또 뭐가 보이네요..]

좀 더 초음파로 관찰하려는 자와

저지하는 자,, 커튼 뒤에 있는 의료진의

실루엣과 말소리만 들리는 듯하더니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바지를 입고 앉자 자궁내막이 아닌 곳에

혹 같은 게 보이는데 좀 크기 때문에 정밀검사를

따로 하셔야겠다며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한다.

혹이 있다고 해도 난 별로 놀랍지도

않았고 그냥 그러러니 했다.

수술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모든 진료를 마치고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간단히 미팅을 끝내고 점심을 꼭 같이 먹길

원하는 사토(佐藤) 상을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올 해에 마지막 식사이여서 서운하다며

내 옆으로 바짝 붙어 걸었다.

사토 상은 점심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업무에 관한 얘길 했고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대응했다.

손님이 없는 가게를 찾아왔지만 런치타임은

어딜 가나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차분히 식사를 할 수 없다.

[ 정 상, 한국에 전혀 못 갔지..]

[ 네.내년에는 만사 제처 두고라도 갈려고요 ]

[ 그래야지.. 정 상, 올 해는 이걸로 끝이네 ]

[ 네.. 그러네요..]

[ 내년에도 자주 도와줬으면 좋겠어 ]

[ 네.. 그래야죠 ] 

[ 아, 오늘 건강 검진했다며? ]

[ 네.. 부인과에서 혹이 보인다고

정밀 검사하라네요 ]

마치 남의 일처럼 덤덤히 얘기했더니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화제를 바꿔

한국 날씨가 홋카이도처럼

춥다며 폭설, 화이트 크리스마스,

그런 얘길 했던 것 같은데 내 머릿속은

새벽에 받은 카톡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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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 너도 카톡 받았어? ]

[ 응, 언니한테도 왔어? ]

[ 응,, 안 보낼 생각인데..은근 신경 쓰인다.

아니.. 솔직히 안 보내고 싶어서..]

[ 보내지 마. 뭘 보내..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5년도 넘지 않았어? 아마 언니는 의리가 있어서

부조금을 낼 거라 생각했겠지. 그 언니,

꼭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이잖아 ]

그 친구와 나의 관계를 훤히 알고 있는

후배는 정곡을 찔렀다.  

 

[ 너는 보냈어? ]

[ 나도 솔직히.. 연락을 안 하거든,,

그래서 안 보낼 생각이야...]

친구 어머님의 부고를 알리는 카톡이었다.

새벽 5시 17분에 울리는 카톡 소리에 아침부터

왜 나한테 이걸 보냈을까 생각에 빠졌었다.

요즘, 아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참석을 못 할 경우, 축의금이나 부조금을 계좌이체로

하는 걸로 아는데 나한테 부고 소식을 보냈을 때는

부조금을 보내달라는 뜻이 포함이 됐을 텐데

고민이 됐던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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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는 절친이라면 절친이었다.  

고교 때부터 친구였으니 횟수로 치면

30년이 넘은 친구인 셈이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백일과 돌,

카페를 개업한다고, 분식집으로 변경했다고,

갈빗집을 개업한다고, 새 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했을 때마다 난 이곳에서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했었다.

그녀가 살아가는데 치렀던 각종행사? 에

기꺼이 축하를 해줬고 함께 기뻐했었다.

그랬던 내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관혼상제의 하나인 상례(喪禮)

지금 모른척하고 있다.

내 마음이 이리도 차갑게 변해버린 이유는

분명히 있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그저 난 더 이상 그녀에게 줄 게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곰곰이 그녀와의 마지막 시간들을 되돌려봤다.

나보다 더 이기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좋아했고, 필요할 때만 친구를 찾는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 외에는 변변히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그래서도 그녀를 응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마도 난 그녀에게 지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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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친구에게 보내는 김치

주말이면 깨달음은 뭔가 특별한 걸 먹고 싶어 한다. 숯불갈비를 먹으러 갈까 망설이다 최근 건강다큐를 본 게 기억났는지 굽는 것보다는 삶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보쌈을 먹자고 했다. 보쌈을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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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곳에 물질이 간다는 말이 있다.

새벽에 받은 부고 소식에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도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끝내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5년이 넘도록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간관계를

전혀 하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를 시켜가며 모른척했다.

그녀에게 화가 나는 것도 없고 특별히

서운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미운 것도 아닌,

그냥,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일본에서 20년을 살아보니

[ 케이야, 괜찮아? 일본 또 심각해 지더라.. 어쩌냐?] [ 그냥 조심하고 있어 ] [ 한국에 나올 수도 없고,,정말 답답하겠다 ] [ 응, 이젠 그냥 포기했어..한국에는 언제갈지 기약을 못할 것 같애 ] [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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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게 해 준 친구에게

올 해 손녀를 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껏 휴가를 제대로 내 본 적이 없던 친구가 손녀를 보기 위해 3개월이라는 긴 휴가를 냈었다. 이번 휴가동안 한국에서 날 만나게 되면  많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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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의 친구란

가족과 마찬가지로 기쁨과 슬픔,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사람이 친구인데

난 그녀에게 어떤 친구였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어쩌면 난 그녀가 좋은 친구이길 바랬던 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난 진정 좋은 친구였나라는 반문도

해보고 이젠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변했음을  

스스로 인식하기로 했다.

친구라 불리워지기 위해서는 서로가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했고 노력이 있었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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