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도 아닌데 나고야(名古屋)에서
이가우에노(伊賀上野)까지 가는 길은
교통체증이 심했다. 사고로 인해
도착시간이 지연될 거라는 운전기사의
멘트가 있자 깨달음이 남동생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중반쯤 진행이
되고 있었고 앉은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화장장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했다.
장례식장이 달라진 만큼 어머니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자꾸만 낯설게 했다.
엷은 화장을 한 아버님은 마치 낮잠을
주무시는 듯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화장을 하기 위해 옮겨진 곳에서
개개인이 정말 마지막으로
아버님 얼굴을 보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깨달음은 아버님 얼굴을 만지며
잘 키워주셔서 고맙고
사랑 많이 주셔서 고맙고
장수해 주셔서 고맙다며
몇 번이고 아리가토를 외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스님의 불경 소리가
울리면서 장내에 슬픔이 번져나갔다.
자식들 손에 화구에 옮겨지는 과정이
너무 슬퍼서 난 또 친정아빠와 시어머니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아버님의 유골함을 들고 있는 내내
깨달음은 두눈을 뜨지 않았다.
깨달음 눈가가 촉촉해진 걸 본 서방님이
유골함을 받아 들고 어머님이 계신 곳에
함께 넣어드렸다.
약 20분간 스님이 아버님의 극락행을 위한
불경을 읊혀 주시고는 두 형제에게
어머님과 아버님을 이렇게 몇 달 사이로
보내드린 게 결코 나쁜 게
아니라며 위로를 해주셨다.
그때까지 깨달음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기도를 하는지 혼자서 계속 눈을 감은 채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차라리 소리 내어 울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슬픔 속에 가둬버린 것 같아서
더욱더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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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들의 염려와 기원 속에
아버님을 무사히 잘 보내드렸습니다.
개인적으로 메일 보내주신 분들이 많은 신데
한분, 한분, 답변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늘 저희들에게 위로와 격려해주셔서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은 어머님 때처럼 덤덤한 모습이지만
슬퍼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듯합니다.
마음 추스르고 다시 소식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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