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소주를 두병 가까이 마신 깨달음은
의외로 팔팔했다.
아침으로 해장국이 좋겠다는 했더니
전혀 속이 불편하지 않다고 생선이
먹고 싶다길래 아침식사가
되는 곳을 찾아 생선구이를 시켰다.
[ 여기.. 맛집이라고 나왔지? ]
[ 나름 맛집이라고 하는데 나도 처음이야]
[ 근데, 반찬도 그렇고 생선구이 맛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았다. 초벌구이를 해 둔
생선은 기름기가 다 빠져 퍼석퍼석했고
생선 고유의 풍미가 나질 않았다.
남들은 맛집이라해도 우리 입에 안 맞을 수 있고
처음 가보는 곳은 위험부담이 있으니까
실패 없이 우리가 검증했던 곳을
가야 한다고 이 생선구이집을 들어서기 전부터
얘길 했는데 직접 우리 입으로 확인해보자고
해서 왔더니 역시나 만족하지 못했다.
솥밥에도 손을 대지 않고 나온 깨달음은
그 근처 김밥집으로 들어가
우동과 김밥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깨달음은 두 번 떠먹고
그대로 나오더니 청계천을 따라
아침산책을 하자고 했다.
한화빌딩이 마음에 들었는지 주변을
이동해가며 사진을 찍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산책을 하다 재즈가 흘러나오는 카페에
들러 치즈케이크와 카페오레를 마시면서
이제야 맛있는 걸 먹게 됐다며 좋아했다.
[ 그니까,, 맛집, 아니 당신 입에 맞는 집을
찾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거 알았지? ]
[ 알지.. 근데.. 아까 거긴 너무 했어..
내 소중한 한 끼인데.. 망쳤잖아,,
한국에서 먹어봐야 하루 세끼니까
매 끼가 나한테는 엄청 중요해 ]
[ 알아,, 아는데 그 맛집이라는 게
우리가 먹어봐야 아는 거잖아..
다른 사람들은 맛있게 먹었다는 거야.
우리는 아니지만..]
[ 그러겠지.. 하지만, 난 단 한 끼도
특히, 한국에서 실패하고 싶지 않아 ]
커피를 마시고 우린 성수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에 오면 꼭 가고 싶다며
리스트에 적어둔 곳이다.
뚝섬에서 내려걸어 올라가면서
깨달음은 연신 감탄사를 내뿜었다.
자기가 한국에 못 온 사이에 이렇게나
새로운 거리가 생겼다는 것도 놀랍고
센스 넘치는 카페며 레스토랑이
멋져서 흥분된다며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골목골목 사진을 찍다가
어느 가게에 긴 줄이 서 있는 걸 보고는 분명
맛집일 거라며 무슨 가게 인지도
모른 채 깨달음이 얼른 줄을 섰다.
[ 여기, 뭐 파는지 알아? ]
[ 몰라, 일단 줄을 서고 보는 거야 ]
[............................... ]
깨달음이 줄을 서 있고 난 입구에서 메뉴를
확인했다. 라자니아를 파는 곳인데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가장
연장자였다.
[ 라자니아 전문점 같은데 먹을 거야?]
[ 응, 무조건 먹을 거야 ]
약 20분쯤 기다렸다 맛을 본 라자니아는
깨달음을 꽤 만족시켜 줬다.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를
알겠다며 맛있게 먹으며 하루 세 끼도
소중하지만 이렇게 간식처럼 먹는 것도
자기에겐 너무 중요한 일이라며
맛있는 걸 먹어서 행복하단다.
성수동 카페거리를 2시간 넘게 둘러보고
우린 후배를 만나 인천으로 빠져나갔다.
싱싱한 꽃게와 새우들이 한창이라는 말에
그걸 먹기 위해 소래포구 시장으로 향했다.
방금까지 살아있던 새우가 빨갛게
익어가는 동안 먼저 나온 꽃게를 통째로 들고
껍질채 씹어 먹는 깨달음 얼굴은
행복 그 자체였다
[ 깨달음, 좋아? ]
[ 응, 행복해.. 맛있는 걸 먹잖아,
그래서 소주도 맛있어 ]
[ 다행이야, 맛있어서 많이 먹어 ]
해물칼국수와 파전으로 마무리를 하고
배가 빵빵할 정도로 해산물을 먹은
깨달음은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노을을 보며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익선동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카페들이 문을 닫는 중이었고
깨달음은 그냥 호텔에 들어가기 서운하다며
한문으로 주점이라 적힌 곳을 발견하고는
막걸리를 한 잔씩 하자고 했다.
내가 적당히 시킨 해물 누룽지탕을 처음
먹어본다는 깨달음은 누룽지와의 조화가
환상적이라며 자기 입맛에 맞는 메뉴 선택을
해줘서 고맙다더니 수프를 떠서
입에 넣느라 바빴다.
[ 깨달음, 뜨거워,,조심해.근데 배 고팠어?
아까 많이 먹었는데..그리고,, 당신,
조금 전까지 차에서 졸았잖아,
나는 피곤한 줄 알았는데 ]
[ 아니, 괜찮아, 이렇게 맛있는 거 천지인데
어떻게 내가 잠을 잘 수 있겠어.
잠을 안 자더라도 먹을 수 있을 때
다 먹을 거야 ]
한국에만 오면 먹깨비가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그동안 못 왔던 3년 치 뽕을
뽑을 작정인 듯했다
. [ 나 매콤한 것도 하나 시켜줘 ]
[ 골뱅이 먹을래? ]
[ 아니, 골뱅이는 집에서 당신이 해주니까
다른 걸로 먹을래 ]
낙지볶음이 나오자 소주도 한 병 시켰다.
피곤한지 몇 번 물어도 깨달음은 정말
괜찮다고 했고 내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일본 가기 싫어진다고 했다.
지금껏 서운하다는 말은 자주 했어도
가기 싫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왜 가기 싫냐고 물었더니
가고 싶은 곳이랑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
그 맛있는 것들을 다 못 먹고 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게 짜증 난단다.
[ 먹고 싶은 걸 다 못 먹어서
일본 가기 싫다는 거야? ]
[ 응, 일본에는 없잖아, 코리아타운에 가도
이 맛이 나질 않아. 한국에서 먹어야만이
나는 맛이 있단 말이야, 한국 맛 ]
[ ............................. ]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먹는 것에 진심인지 몰랐다. 깨달음은
하루 세끼 이외도 길거리 먹거리들도
하나씩 다 맛보고 싶단다.
군밤, 튀김, 떡볶이, 붕어빵, 호떡, 핫바, 찐빵,
사라다빵, 만두, 꼬치구이, 등등,
이 많은 간식거리들을 언제 다 먹는다는 건지..
아무튼 내일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맛집 탐방을 하면서
최대한 먹을 거니까 말리지 말란다.
도대체 얼마나 먹어야 후회 없이 일본에
돌아갈 수 있다는 걸까..
내일은 소화제라도 준비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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