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퇴근을 한 우린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깨달음은 요즘 리조트 건설 때문에
이곳저곳 탐방하느라 출퇴근 시간이
들쑥날쑥이고 난 나대로 모 협회에서
10년 이상 쓰고 있던 감투를 벗어버린
덕분에 시간적으로 많이 여유로워졌다.
이 레스토랑은 중국차를 멋지게? 따라주는 게
특색이며 그렇게 따라준 중국 전통차 맛이
일품으로 입소문이 나있었다.
한 방울도 떨어트리지 않고 잔에 뜨거운 물을
따르는 걸 유심히 봤더니 긴 주전자?
손잡이 부분에 브레이크처럼 물길을
잡는 장치가 있었다.
차 마시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주셨는데
생각보다 향이 진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단 맛이 은은히 올라오는 차가 마음에 들었다.
우린 쇼코슈(紹興酒)로 건배를 했다.
중화요리를 먹을 때면 늘 쇼쿄슈를
마시는데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리면서도 입안을
개운하게 해 줘서 즐겨 찾는다.
찐 찹쌀로 비진 술이어서인지 뒷 끝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다음날 속이 쓰리거나
머리가 아프지 않아서 좋다.
전채요리가 나오고 우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며 먹다가 장식으로 깔린 양상추를 보고
문득 생각난 게 있어 깨달음에게 물었다.
지난번 한국에서 내 후배를 만나 식사하면서
깻잎을 떼어주던데 왜 그랬냐고 했더니
그게 무슨 질문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되물었다.
[ 당신이 식사할 때 김치가 너무 크니까
가위로 잘라주고, 깻잎도
잡아주고 그랬잖아, 후배한테 ]
[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
[ 아니, 난 전혀 상관없는데 한국에서
한참 그런 얘기들이 있었어 ]
깻잎 논쟁이 있었던 걸 일단 설명을 하고
그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묻는 거라고 했다.
[ 같이 밥 먹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깻잎이 붙어서 못 떼니까 먹기 편하게
잡아주는 것이고 김치가 너무 커서
한입에 못 먹으니까 잘라 주는 것이지.
그게 신경 쓰일 일이야? ]
[ 아니, 난 괜찮다니깐, 깻잎을 떼주든, 김치를
잘라주든 상관없는데,, 상대가 남자였으면
떼어주지 않았을 거라는 거지,
아무튼, 여성이었기에 관심을 보였고
신경을 썼다,,뭐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 같아]
[ 그건 그러네,,,남자면 안 떼 주지 ]
[ 그것 봐, 그니까 괜히 오해를 하기도 하고
상대에게 오해를 산다는 거야,
그래서 친하든, 안 친하든 깻잎을
떼주면 안 된다는 여론이 많더라고 ]
아무 감정이 없이 친절함을 베푼 건데 무슨
오해를 하냐며 갑자기 흥분을 하는 깨달음.
먹기 불편해하니까 잡아 준 거뿐인데
떼어서 밥에 올려준 것도 아니고
신체를 접촉한 것도 아닌데
뭘 그런 걸 신경 쓰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며 4년 전, 자기 회사 해외연수로
싱가포르로 갔던 얘기 꺼냈다.
[ 그때, 다카하시(高橋)가 당신이 나한테
음식을 떠 먹여주는 게 너무너무 부럽다고
다시 태어나면 한국 여자랑 결혼하다고
막 그런 얘기했을 때
당신이 한 번씩 다 떠 먹여줬잖아 ]
[ 응, 기억 나 ]
[ 그것도 무슨 감정 있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 ]
[ 응, 아저씨들이 너무 짠해서. 태어나
한 번도 여자한테 받아먹어 본 적이
없다고 그랬잖아 ]
[ 그 거랑 같은 거야, 말하자면
아무런 이성적인 감정이 없는 행위!
그게 가장 중요해, 그걸 모두가 알기 때문에
전혀 불쾌하거나 이상하지 받아들이지
않다는 거지 ]
[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
배우자나 여친, 남친에게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작은 일에도 신경을 곤두 세우는 게
아니냐며 한국인들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했다.
[ 사랑한다는 확신이나 서로 간에 믿음이
굳건하면 아무 것도 아닌 거잖아.
단순한 친절로 보면 되는데...]
[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마도 친구의
애인이나 배우자하고 눈 맞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경계하는 차원에서 그런 가 봐 ]
디저트로 나온 포춘 쿠키를 먹으며 우리는
상대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전혀 없기에
깻잎뿐만 아니라 새우껍질도 얼마든지
까줄 수 있다고 같은 생각을 나눴고
깻잎이나 새우가 아니어도
사고 칠 사람? 은 어떻게든 사고를 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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