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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시부모님 1주기, 모든 걸 덮었으면 좋겠다

by 일본의 케이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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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우린 아침 일찍 신칸센을 탔다.

전날 잠을 설친 탓인지 아침부터 더운 탓인지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서방님에게서 시부모님 1주기를 한다며

날짜를 알려온 온 것은 2주 전이었다.

우리 스케줄도 묻지 않고 통보만 해 오는

서방님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그러러니하자 했다.

시부모님도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서방님을 볼 날이 앞으로 얼마나 있겠냐

싶은 것도 있고

언제가 될지 모를 마지막까지

가족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나만의 인간관계 마무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나고야에 도착해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뛰는데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깨달음도 땀 범벅이 된 채로 버스에

올라타  바로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배가 고파왔지만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었고 버스안에서 뭘 먹는다는 게

싫어서 우린 그냥 모든 행사를 마치고

차분히 먹는 걸로 했었다.

버스가 두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가우에노 (伊賀上野)는 내가 결혼하고

처음 왔을 때 모습과 별 변함없이 

그대로 그렇게 있었다.

우린 시부모님이 좋아하셨던 것들을

사기 위해 깨달음이 어릴 적부터

다녔다는 가게를 찾아갔다.

아버님이 좋아했던 센베이와

어머님은 앙코빵, 그리고 

꼭 같은 브랜드의 녹차를 마셨던 게

떠올라 녹차도 한통 샀다.

[ 깨달음,, 이거 제사 끝나면 

그 절에서 드시는 거지? ]

[ 그렇지, 오소나에모노(공양품-お供えもの)는

절에서 사는 가족들이 먹어. 여기 일본은

스님도 다 결혼해서 애 낳고 살잖아,

한국은 안 그렇다며? ]

[ 응, 종파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스님들은 거의 독신이지 ]

[ 일본은 목사님처럼 스님들도 결혼하고

이혼하고 일반인하고 똑같아 ,

가리는 음식도 거의 없어 ]

[ 알고는 있었는데 한국하고 많이 다르네]

우리가 절에 도착하고 10분쯤 후에

서방님 내외와 큰 딸 부부가 어린 아들과

함께 법당 안으로 들어왔다.

서방님이 준비해 온 과일상자와

우리가 가져온 것을 모두 불단에 올리자 

오늘은 돌아가신 두 분의 1주기와

곧 다가오는 오봉( お盆 추석)을 함께 

기린다고 식이 시작되기 전에

스님께서 잠깐  말씀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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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 시작되고 스님이 염불을 하시는데

난 역시나 시부모님 성함과 자식들

이름이 불리어진 것 외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해석이 되지 않은 채로

눈을 감고 들었다.

남녀호렝교라는 단어가 들리기는 했지만

불교용어이기 때문이 아닌 스님이 

불확실한 발음으로 흘리듯 읽어가시는

염불은 도통 알아듣기 힘들었다.

한차례 염불이 끝나면 가족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향을 올렸고

또 바로 스님이 염불은 이어졌다.

법당 안에서 모든 의식이 끝나고

다음은 두 분의 유골을 모신 곳으로

나가 다시 잠깐의 기도? 같은 걸 하고

다시 법당으로 돌아와 마지막

염불을 하고 끝이 났다.

두 분이 돌아가셨던 날도 

쨍쨍한 한여름처럼 날이 좋았는데

오늘도 비 한 방울 없이 청명한 날이라며

덥긴 하지만 비가 쏟아지지 않는 건

조상님이 멀리서 찾아오는 자식들을

위해 힘을 쓴 거라는 역시나

스님다운 말씀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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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우리 다시 

도쿄로 돌아와야 해서 마지막 버스에 올랐다.

깨달음은 피곤한지 바로 눈을 감았고

난 창밖을 보며 어젯밤 깨달음과 나눈

얘기들을 다시 상기시켰다.

깨달음 나름대로 가지고 있던

서방님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다가

죽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서운해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며

자기에게 하는 짓들이

어릴 적 기억 속에 있던 동생과는 많이

다르지만 어쩔 수 없다며

아무튼, 자기보다는 동생이 부모님께

훨씬 더 효도를 많이 했으니 부모님에게는

착한 아들로 기억돼서 다행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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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에게서는 아직까지도

시부모님이 남기고 가신 유산에 대해

전혀 말이 없다고 한다.

깨달음은 더 이상 돈의 행방에 대해

묻지 않기로 했다며 계속 자신이

궁금해하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편히 눈을 못 감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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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힐긋 쳐다봤는데 자는 것 같지는

않고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였다.

지금 깨달음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깨달음 말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돌아가신 시부모님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깨달음 자신을 위해서라도

   모든 걸 덮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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