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물건을 내 눈으로 확인한 건 딱 일주일 전이였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우동집에서
허겁지겁 우동 한 그릇씩 비우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함께 주문한 유부초밥을 몇 개 집어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깨달음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 이쑤시개 여기 있어]
[ 아니, 다른 거야..]
깨달음이 가방에서 꺼내 건 한국상표가
눈에 띄인 작고 네모난 것이였다.
휴대용 크린팩이였다.
[ 어디서 났어? ]
[ 지난번 어머님이랑 슈퍼 갔을 때 샀잖아?]
[ 언제부터 들고 다녔어? ]
[ 그날 이후로,,]
[ 남은 거 가져가려고? ]
[ 응, 아깝잖아,,]
[ 그래도 스탭에게 물어 봐 ]
[ 괜찮아,,물어 볼 것 도 없어,,]
[ 가게 마다 다르잖아,반출이 되는 음식도 있고
반출 자체가 안 되는 음식이 있잖아,]
[ 저기요,,여기 남은 거 가져가도 되죠?]
[ 네..괜찮습니다]
스탭의 대답이 떨어지기 전부터 비닐을
펼친놓고 남은 유부초밥을 반 정도
넣고 있어서인지 아주 순식간이였다.
그리고 일루미네이션을 보러 갔던 이번 토요일
치킨에 시원한 맥주를 너무 맛있게 먹다보니
독일 소세지는 손을 대지 못했다.
깨달음이 스탭에게 한마디 물어보더니
소세지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담았다.
[ 당신,,,하는 게 완전 아줌마 같애.
그리고 일본 할머니들이나 이렇게 남은 음식
가져가는 것 봤어도 그것도 남자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챙기는 건 처음 봐,,
좀 안 창피해? ]
[ 뭐가 창피해? 반출이 가능한 곳에서만
가져오는데 뭐가 이상해? 원래는 당신이
해야하는데 당신이 안 하잖아, 지난번에
이 크린팩 두 개 사서 당신에게도 하나 줬는데,
당신은 왜 가방에 안 넣고 다녀?]
[ ..........................]
[ 식당에서라도 음식을 남기고 그러면 안 돼.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어떤 음식이든 함부러
하지 말라고 했어, 음식을 소홀히 하면 벌 받아、
사람들이 뷔페에 가서 먹지도 못할만큼
덜어와서는 남기고 버리고 그러잖아,
그런 건 정말 안 좋은 행동이야...]
그리고 어제 고깃집에서 또 그걸 꺼냈다.
고기를 실컷 먹고 배가 부른 상태인데
꼭 청국장 찌개를 먹겠다고 주문하더니 역시나
먹지 못하고 지나가는 스탭을 또 불러세웠다.
[ 저기요, 이 찌개를 넣을 용기 없나요? ]
[ 죄송합니다,,저희 가게에 준비가 안 되서..
비닐봉투라도 드릴까요? ]
[ 아니요,,괜찮아요..]
숟가락으로 후후 불어 모두 식힌다음 봉투에 넣었다.
보다 못해 내가 한마디 하고 말았다.
[ 국물 있는 거 까지 너무 한다....]
[ 한국에서는 국물도 다 포장해주잖아
언젠가 칼국수 집에서 1인분 봉투에 넣어주는 거
내가 봤어. 봉투에 넣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단호하게 주장을 해서 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 퇴근해서 내민 건
다키고미고항(炊込み御飯
-야채와 고기를 넣고 지은 밥)이였다.
[ 작은 가마솥에 지어서인지 진짜 맛있더라고,
미팅 끝나고 별도로 주문해서 가져온 거야,
당신 좋아하니까 먹어보라고,,]
[ 랩으로 쌌네? ]
[ 응, 스탭이 줬어. ]
[ 아, 그래서 지퍼팩에 담아 준 거구나 ]
[ 아니 지퍼팩은 내가 가지고 있던 거였어 ]
[ ....................... ]
[ 크린팩 말고 지퍼팩도 가지고 다녀?]
[ 응, 지퍼팩도 쓸모가 있을 것 같아 넣고 다녀 ]
[ 직원들 앞에서 안 창피했어?]
[ 뭐가 창피해? 창피할 이유가 뭐야?]
음식들을 챙겨오는 게 조금은 쑥쓰럽고
어색할텐데도 전혀 그런 내색없이 가져온다.
오늘은 따로 주문을 했다니...
[ 당신은 어쩌면 점점 아줌마 같아지냐,,]
[ 왜? 아줌마가 나빠? ]
[ ....................... ]
[ 당신도 가지고 다녀, 역시 어머님이
왜 가방에 넣고 다니는지 알았어.
쓰레기도 담을 수 있고 아주 좋아,
그리고 한국 비닐은 두꺼워서 튼튼해,
뭘 담아도 아주 든든해~
다음에 한국 가면 좀 많이 사올 거야 ]
깨달음의 이런 행동들을 보면
자상했던 우리 아빠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가방 속에 각종 사이즈의 지퍼팩을 넣고 다니는
엄마를 연상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착실하고 자상하지만 어찌 말하면
청승맞기도 하다.
분명 감사하고 고마워해야할 부분인데
난 솔직히 안 그랬으면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그 강한 맨탈과
음식을 함부로 대하지 않은 마음가짐이
참 대단해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일본에서는 가게마다 방침이 달라
남은 음식 반출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 있다.
그 이유는 반출된 음식이
식중독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책임을 질 수 없어 금지하고 있으니 일단은
가게측에 물어봐야한다.
깨달음은 어디까지 날 놀라게 할 것인지..
가방에 휴대용 크린팩, 지퍼팩을,
그것도 한국산으로 넣고 다니는 남자는
아마 깨달음뿐일 것이다.
아줌마화 되어가는 건지, 노인화?가
되어가는 건지 분석하기엔 애매하지만
날이 갈수록 깨달음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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