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가 끝나면 난 설거지를 마치고
열대어들의 상태를 살핀다.
깨달음은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는 경우가 많고
나도 컴퓨터를 하며 함께 즐길 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해야할 일이 많거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면 노트북을
챙겨 내 방으로 들어간다.
컴을 다시 켜고 라디오 채널을 맞춘다음
가습기를 틀어 놓고 자리에 앉는다.
부탁받은 원고를 써야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적어 내려가는 것과
의뢰를 받아 글을 쓰는 건 마음상태부터
달라 술술 써 내려가지 못한다.
그렇게 내 방에서 한시간쯤 지났을 무렵, 깨달음이 문 앞에서
고개를 쭈욱 내밀고 묻는다.
[ 뭐 해?]
[ 왜? 티브이 재밌는 거 안 해? ]
[ 응,,당신이 뭐하는지 보려고,,]
그러면서
쭈뼛쭈뼛 들어오더니 침대 위에 올라 앉는다.
[ 나 계속 작업해야 되는데...]
[ 알아,,나 그냥 여기서 티브이 볼래..]
[ 그래..그럼..]
그렇게 30분쯤 지나 뒤돌아 봤더니 멍하니
티브이를 보고 있는 모습이
좀 짠하기도해서 쥐포를 한마리 구워서 내줬다.
두 손으로 잡고 후후 불어가며 먹는 모습이
귀여워 카메라를 갖다 댔다.
[ 왜 찍어? ]
[ 귀여워서...]
[ 여기서 이렇게 먹고 있으니까 연애 때
당신 집에서 먹었던 기억이 나네..
그 때도 당신은 공부를 했고
난 침대에 앉아당신이 내 준 과자를 먹었잖아..]
[ 아,,그랬지..]
[ 그 때 당신이 초코파이를 줬어..]
[ 그래? 뭘 줬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 아마 그 때 처음으로 내가 한국 과자를
먹었을 거야]
[ 그래서 지금도 초코파이 좋아하는 거야? ]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처음 먹었던 과자여서
선명하게 기억이 나..머시멜로가 들어가 있던
초코파이 맛을...]
그랬다...
대학원 시절 내 원룸 방에는 붙박이 침대와
손으로 채널을 돌려야하는 소형 티브이가 있었다.
내가 논문을 써야했기 때문에 주말에 데이트를
하더라도 식사만 잠깐 하고 바로 집에 들어와
공부를 해야했다.
좁은 방이여서 잠 잘 때만 펴는 붙박이 침대를
펼쳐놓으면 깨달음은 그 침대에 올라 앉고
난 책상 겸 밥상으로 쓰던 네모난 테이블을
펴고 노트북으로 논문을 정리했다.
그러면 깨달음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티브이를 봤었고 난 괜시리 미안해 져서
아끼던 한국과자를 하나씩 꺼내 주었다.
이불을 배까지 올려 덥고 얌전히 앉아 과자를
맛있게 먹는 깨달음을 보면 마치 엄마가
일하는 동안 혼자서 조용히 놀고 있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공부를 하다가 힐끔 뒤를 돌아다보면
과자를 입에 넣고 씨익 웃던 모습도 생각난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한 공간에서
따로 따로 보내다 막차시간이 다가오면
시간에 맞춰 깨달음은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 아, 그리고 어느날은 당신이 라면도 줬어]
[ 왠 라면? 신라면 끓여준 거? ]
[ 아니, 생라면,,라면을 스프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면서 잘게 부셔서 나한테 줬어..]
[ 별 것을 다 기억하네...]
[ 신라면도 그 때처음 먹었던 것 같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추억이네..]
[ 당신은 그 때 안 심심했어?
내가 공부에만 집중해야했던
시기였잖아..별로 재미 없었지?]
[ 아니..심심하다고 생각 안해봤어..
당신이 공부하는 모습도 싫지 않았으니까.]
[ 지금 생각해 보니까 당신 참 착했던 거 같애]
[ 나 원래 착해..]
[ ....................... ]
[ 당신 원룸에서 뭐 먹었는지 다 기억해..
모든 게 처음 먹어보는 게 많았어.,
새우깡 같은 것도 먹었던 것 같고,,
고구마 맛이 나는 것이랑....
또 다른날은 당신이 생선 말린 것도 내줬어.
고추장에 찍어 먹으라면서,,그걸 먹으면서
이런 걸 한국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평상시에 먹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어..]
[ 아,,북어포, 평상시에 먹는다기 보다는
그냥 줄 게 없어서 반찬할 걸 줬나보네..]
[ 근데 왜 항상 뭘 나한테 줄려고 했어? ]
[ 당신 혼자 티브이 보게 하는 게 미안해서..]
[ 그 때 당시, 오늘은 또 무슨 새로운 과자를
먹을 수 있을까, 솔직히 기대하며
기다리기도 했어. 히히...]
[ 가난한 유학생이 무슨 돈이 있었겠어..
그래도 코리아타운 가게 되면 당신에게
줄 과자를 골랐던 기억이 있어..싼 걸로,,,
아, 그리고 당신이랑 마트가면 항상 물었잖아,
쌀 있냐고...그것도 생각난다..]
[ 나도 시골에서 도쿄로 올라와 대학 다니면서
많이 가난하게 살았어..근데 쌀만 있으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거든, 그래서 당신에게
쌀 있냐고 물었을 거야,,]
[ 그래,당신이 쌀 많이 사 줬지, 갑자기 슬퍼진다 ]
[ 뭐가 슬퍼? 나는 재밌던데?]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 그 외에 또 기억 나는 거 있어?]
[ 음,,당신이 부침개를 많이 해 줬잖아.
비 오는날은 한국에서 부침개 먹는다고,,아,,그리고
상추튀김이라는 것도 해 줬어대학원
후배 두 명이랑 좁은 방에서 같이튀김을 상추에 싸 먹었어..
광주에서만 먹는
음식이라면서 다들 처음 먹는다고 그랬는데
내가
거기 간장에 들어있던 청량고추를 모르고
먹고 기침하고 콧물 흘리고 난리였잖아..]
[ 진짜 당신 별 걸 다 기억한다..
그럼 그 중에서
제일 맛있거나 기억에 남은 게 있어? ]
[ 딱 하나만 고르기는 그렇고,,,역시 초코파이..
그리고 부침개,그 뒤로 나도
비 오면 부침개를 먹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
[ .............................. ]
그러고보니 깨달음이 지금도 한국 과자와
주전부리를 좋아하게 만든 건 아마도 연애시절
내가 하나씩 꺼내 준 과자때문이
아니였나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궁색하고, 조금은 초라하게 보여질
한국인 유학생과 그것을 청승맞게 바라보지
않았던 깨달음..분명 심심했을텐데
깨달음은 불만 한번 없이 잘 참았던 것 같다.
인스턴트 라면을 생으로 먹으라고 내 놨을 때
깨달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북어포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도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오늘 쥐포를 맛있게 먹는 깨달음은 그 어느 날,
내 청춘의 한 페이지에 있었던 모습과
별 반 차이가 없다.
깨달음 기억 속에 처음으로 맛 본 한국맛에는
내 원룸에서 먹었던
초코파이, 생라면,
북어포, 부침개가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내겐 조금 슬프고 궁핍했던 젊은 날의 초상이지만
깨달음에게는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한국의 맛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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