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가게로 가기 위해 탄 전철 안에서
깨달음이 한 뭉치, 한 뭉치 종이를 풀어서
내게 내밀었다.
이건 어디서 산 것이고, 이건 얼마에 샀는지
깨달음도 나만큼 기억하고 있었다.
미니츄어들을 결혼하고 모으기 시작했다.
실물과 100프로 일치하진 않지만
작디작게 만들어진 소꼽놀이 같은 소품들을
보면 소인국 나라에 온 것처럼 마냥 즐거웠다.
동심의 세계로 빠져서 어린 나를
만날 볼 수 있고 이젠 거의 남아있지 않은
순수함의 파편들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하나, 둘 모아서 진열을 해놓고
행복해했는데 모두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작년 말에는 유일한 취미로 15년 이상
즐겨했던 물생활을 정리하며
수조를 처분을 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어린 왕국에 주인공들을
죄다 아이템 별로 나눠서 종이에 곱게
싸서 챙겨 나왔다.
[ 정말 처분하면 서운하지 않겠어? ]
[ 괜찮아, 그렇게 좋아했던 열대어랑
관상새우들하고도 헤어졌는데..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종이에 조심히 담은
아이템들을 다시 보니 위로받았던 기억들이
떠올라 얼른 가방에 넣었다.
어느 해, 12월 31일, 사이타마 경기장에서 열린
격투기대회에 가서 아키야마 (秋山) 경기를 보며
목이 터져라 응원 했던 그날도 추성훈
굿즈들을 잔뜩 사 왔었다.
하지만, 모든 걸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언제 이곳을 떠나더라도 홀가분할 수 있게
주변을 만들기 위한 작업 중의 하나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내 결심에 깨달음도 덩달아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묵은 LP판들을
캐리어에 담아서 따라나선 길어었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애니메니션의 주인공들,
그리고 해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빈티지 가게 한 구석에
중고거래하는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템 박스가 없어서 헐값이 될 수 있는데
괜찮겠냐고 묻길래 괜찮다고 답했다.
그렇게 감정시간 30분이 지나고
내게 주어진 금액은
아이템 한 개에 100엔씩 1,500엔
작은 피큐어 하나에 20엔씩 80엔,
그래서 총 1,580엔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2개 아이템은 일본산이 아닌
생산지가 불분명해서 거래가 성립이
되지 않아 반품되었다.
레코드 가게에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깨달음은 아무리 오래되고 커버가
더럽다고 해도 레코드 한 장에 100엔도
하지 않는다며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내가 술 한 잔 살테니 가자고 했더니 금방
얼굴색이 밝아진 깨달음을 데리고
오키니와( 沖縄)이자카야(居酒屋)에 들어갔다.
뭔가 홀가분하고 하나씩 정리되고나니 점점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라고 했더니
자기는 너무 싸게 넘긴 것 같아서 속상하다면서
내게 왜 마음을 그렇게 단단히 먹었냐고 물었다.
[ 그렇게 좋아했던 열대어들을 처분할 때가
힘들긴 했지만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언제 떠나더라도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없게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컸으니까 ]
[ 일본생활 정리한다는 거잖아 ]
[ 그러긴 하지만, 행여나 내가 죽거나
그러더라도 물건이네 뭐네,, 뭐가 많으면
남은 사람들이 수고롭잖아,, 그래서..]
ㅅ실은 나와 친하게 지냈던 관계는 아니지만
지인의 지인들이 지병으로 또 갑작스런 사고로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일들이
연말부터 세 건이나 있었다.
언제 어떻게 어떤 형태로 내게도 닥쳐올지
모를 상황을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들이 뭉쳐서 겸사겸사 못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미련 없이 하고 있는 중이다.
[ 그래서 은행도 다 정리한 거였어? ]
[ 응, 대출통장하고 내 개인통장만 남기고 ]
[ 카드도 자르고,, 지난달엔 옷장에 옷도
리사이클숍에 두 박스나 갖다 줬잖아,,]
[ 응,, 난,, 솔직히 깨달음 당신도 좀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이야 ]
[ 죽음을 대비해서? ]
[ 아니, 꼭 죽음이 아니어도 물건들이며
뭐며, 주변에 많으면 신경 쓰이잖아 ]
[ 난,, 당신처럼 냉정하지 못해서...
근데...나도 정리해야 되긴 해....]
일본은 죽어서도 이혼을 한다
지난주 미용실 원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그냥 해 봤다고 늦더위가 계속되는데잘 있냐는 안부 문자를 받았는데그건 머리 다듬을 때가 되지 않았냐는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계획대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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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 당신이 회사를 빨리 정리 안 해서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시간들이
누적되어 가고 있다는 건 알지? ]
[ 응,, 알아,,]
[ 그니까,, 회사 이외의 것들이라도 나처럼
정리를 좀 했으면 좋겠어..]
[ 알았어..]
한국행이 언제가 될지 아직도 확정되지 않은 채로
흘러가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난 그냥 심플하게 그리고 어떤
찰라나 상황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싶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내가 일본을 떠나든 말든당신이 무슨 상관이십니까?내가 60이 돼서 가든, 70이 되든왜 당신이 신경을 씁니까?몇 년 전부터 한국에 들어가려고해도 못 들어가는 내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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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만원이 주는 자괴감
점원이 내가 들어가자 바로 우리가늘 앉는 테이블로 안내해 주었다.[ 저, 오늘 혼자니까 카운터로 앉을게요 ][ 아,,그러세요, 그럼 여기로 ][ 남편은 오늘 송년회가 있어서..]늘 깨달음과 함께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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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데있어서 최소한에 것들만 남겨두고
언제가 떠나게 될 이곳을 정리하는
의미와 행여나 마지막이 찾아아도
깔끔하게 마무리를 스스로 짓고 가야겠다는
생각들이 굳어갔다.
깨달음이 회사를 쉽게 접지 못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다그칠 생각은 없다.
되도록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기에
난 그냥 조용히 기다릴 생각이다.
모든 건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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