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빨갛게 끓어오르는 김치찌개
냄비에 듬성듬성 썰어둔 두부를 넣었다.
온 집안에서 묵은지 냄새가 진동하지 못하게
환풍기를 틀고 거실 창문을 열어두었다.
일본에서 청국장 끓이다가 아파트 주민들
신고?로 관리인에게 엄중주의를 받았다는
한국인 지인 얘길 듣고 난 후부터는
나름 신경이 쓰여서 늘 환풍기와 통창문을
열어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집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고 가장 끝집이다 보니
냄새가 사방으로 덜 퍼져나가지만
늘 주의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먹는 걸 상당히 중요시하는 깨달음 덕분에
매일 아침식사를 좀 거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점심식사를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영양가치나 소화에 도움이 되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에너지가 될 수 있는
재료들을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아침 스케줄이 있어
집을 먼저 나서게 되면 혼자 남은 깨달음은
냉장고에 있는 모든 반찬을 꺼내
자기가 좋아하는 그릇들에 담아
파도 쫑쫑 썰어 올리거나 미니토마토로
장식도 하고 삶은 달걀을 슬라이스로 잘라
카페 분위기로 연출해 놓고 먹곤 한다.
그런 상차림을 볼 때면 가끔 장난 삼아 나도
당신이 혼자 그렇게 멋지게 차려먹은 것처럼
한번 그런 밥상을 받아보고 싶다고 하면
싫다고 단번에 잘라버린다.

[ 왜? 당신도 그렇게 예쁘게 차려 먹으면서
아내한테도 한 번쯤 차려줄 수 있지 않아? ]
[ 그건,, 당신이 없으니까 혼자 쓸쓸하지 않게
화려하게 남자가 차린 밥상처럼 안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야,,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
[ 응, 난 혼자 밥 먹는 거 싫어하잖아. 그래서
더 멋을 부려 상을 차린 거야 ]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깨달음은
여러모로 자기애가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사람인 건 분명했다.

결혼하고 15년 동안 깨달음이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려준 적이 손으로 꼽을 정도인
3,4번이었고 내가 아파서 누워있을 때도
손수 차리기보단 식당에서 테이크아웃을 하거나
마트에서 산 도시락으로 대처했다.
실은 요리실력이 꽤나 좋은데도 아내인
나를 위해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기애가 충만한 깨달음은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관계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고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기적이라기보다는
애고이즘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그 후로는 남편에게, 아니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일말의 기대 같은 걸 하면 안 되는 거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 어떤 희망도 품지 않게 되었다.

요 몇 년 동안 아침식사 이외에
서로 외식이 잦은 생활이 늘어나면서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식생활 패턴이 자리 잡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숍에서 식후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저녁시간을 느긋히
보낼 때가 많아졌는데
그때도 자기애와 식탐이 비례한 깨달음은
내가 주문한 모든 것을 마치
자기 몫인양 자연스럽게 먹는다.

그래서 나는 먹기 전에 미리 반을
잘라 주거나 깨달음 쪽으로 접시를
밀어주는데 그럴 때마다 꼭 안 해도 되는
변명 같은 말을 늘어놓곤 한다.
[ 나는 이런 생크림이나 샌드위치에
들어있는 햄을 먹어도 위가 튼튼해서
아무 탈이 없는데 당신은 속이
불편해하니까 내가 대신 먹는 거야 ]
[ 그래.. 그런 말 안 해도 되니까 그냥 먹어 ]

한 겨울에도 팥빙수를 꼭 주문해 먹다가
기관지가 약해 기침이 나오면
기침을 멈춰야겠다며 내가 먹고 있던
따끈한 팥죽을 떠먹는다.
그날도 기침이 나니까 먹는 거라고 하길래
한없이 작게 보이는 사사로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버릇처럼 자기만의 이유를 늘어놓는다.

난 결혼생활을 하며 터득한 게 하나 있다.
이 결혼을 잘 유지하는 방법 중에
가장 큰 것은 상대를 포기하는 게 아닌
상대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대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없으니 내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고 해서
서운해할 것도 없고 마음에 둘 여지가 없어졌다.
자기애가 넘치고 자기밖에 모르며
애고이즘의 끝판왕이지만 깨달음은
그런 사람이다 인정해버리고 나니
어느 것 하나 기대하지 않게 돼서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일본 주부들 사이에 인기 있는 이 소스
코리아타운에 잠깐 들려 사고 싶은 게 있다는 메이짱은 사람들이 줄이 서 있는 가게마다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새로 생긴 카페가 완전 한국식 인테리어라며 케이크랑 빵도 지금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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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을 함께 지내며 이렇게 결혼유지를 위한
나만의 방법을 굳힐 수 있었던 건 배우자가
외국인이라는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분명 한국인 남성에게는 없는 정서를 갖고
있어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린 게 사실이지만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에
포기할 필요도 없이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내 감정을 상대에게 이입시키지
않도록 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처음으로 하는 얘기
4교시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난 후,5.6교시 체육시간에 입을체육복을 미리 갈아입고이어 달리기를 같이 할 친구들과 바통으로 까불고 있을 때 선생님이 오늘은 오후 수업이 없으니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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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서 일본인 기질이 보일 때.
주문했던 생수와 생필품, 과일이 도착하자생수는 깨달음이 발코니에 넣어두고나는 주방에 넣어야 할 것들을 챙겼다. 깨달음이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도 동시에도착해서 하나씩 정리하는데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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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연중에 부부로서 하는 기대감이나
남편이기에 원하게 되는 바람 같은 걸
서서히 놓아버리자 각자의 객체로
아주 심플하고 쿨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게 되었다.
내가 만들어놓은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오는
실망감, 좌절감, 상실감, 속상함 같은
감정소비가 줄게 되니 평정심을 찾은 듯
심리적 불만상태가 사라져 갔다.
오늘도 깨달음은 자기가 좋아하는 소바를
먹으며 아주 행복한 미소를 띠며
엄지 척을 해 보였다.
깨달음은 깨달음대로, 나는 나대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지만
그것 역시 존중하며 살아가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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