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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삶의 자세가 남다른 일본 시부모님

by 일본의 케이 2018.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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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옷가지를 챙기고 있었다.

시댁에 가기 전에 나고야에서 미팅이 있어

새벽 첫차로 떠나야했다.

[ 난 미팅 끝나고 오후쯤에나 시간이 될거야,

당신은 시간 맞춰서 와,,..]

[ 응,,알았어, 가지고 갈 것은 다 챙겼어? ]

[ 응 ]

[ 아침에 일어나지 마~나 그냥 갈테니까 ]

[ 알았어..]


혼자 타는 신칸센은 특별한 기분을 준다.

이렇게 그린석을 탈 때면 노트북을 펼쳐놓고

프레젠 연습을 했던 그 때가 떠오르고

 가끔 내다보는 창밖의 풍경은 사뭇

한국과 별반 다름 없음을 느낀다.


미팅이 끝난 깨달음과 나고야역에서 합류한 우린

바로 버스에 올라 2시간 남짓 달리는 동안,

깊은 잠에 빠졌다.

시댁에 도착해 바로 현관입구에  

가방을 넣어두고 벌레 퇴치약을 뿌렸다.

시부모님이 집을 비운지 6개월이 되어가다보니

점점 폐허처럼 변해가는 집안에는

 사람이 아닌, 동물과 벌레들이 자꾸만

자리를 잡으려는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현관입구에 세워놓은 나무꽃병도 넘어져있고

여기저기에 쥐똥이 눈에 띄였다.


깨달음은 조상님을 모시는 불단을 열어

촛불을 켰고, 난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도 역시,, 물건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매달 한번씩 서방님이 오셔서 물건을

조금씩 정리하신다고 그랬는데

그래서인지 모든게 제자리에 있지 않고

흐트러져있어 낯설었다. 

어느정도 청소를 마치고 마트에 들러 

쇼핑을 한 우린 요양원으로 향했다.



[ 어머님, 아버지, 잘 계셨어요? ]

[ 케이짱 왔구나,,여기 앉거라,,]

[ 두분 모두 아프신 곳은 없으세요?

어머니,지난번에 기운 없다고 하셨잖아요.

요즘은 식사 잘 하세요?  ]

[ 응,그 때 케이짱이 이것저것 반찬거리를 많이

 보내줘서 식사 때마다 꼬박꼬박 먹었더니

입맛이 돌고 지금은 잘 먹고 있단다.

그 덕분에 다른 노인들이 많이 부러워해서

 아버지랑 우쭐한 기분으로 식사를 한단다. 

다 케이짱 덕분이야. 고맙다..]

[ 다행이네요. 제가 또 챙겨서 보내드릴게요 ]

[ 아니다. 그리고 그 때 함께 보내준 홍0정을 

꾸준히 먹었더니 많이 건강해진 느낌이고

피곤함도 많이 사라졌어~ ]

[ 아, 그래요, 또 보내드릴게요 ]

[ 아니야,이젠 보내지마라. 아직 한병 남았고,

저거 간호사에게 물어봤더니 꽤 비쌀거라고 

하던데 지금 있는 거 다 먹으면 우린 이젠 

그만 먹어도 된단다. ]

[ 아니에요.  보내드릴게요~]

옆에서 아버님이 홍0정을 복용한 후로 혈압이

안정되고 몸이 따뜻해져서 좋았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정도면 충분하니 더 이상 보내지

 말거라. 조금더 오래 산다고 좋을 게 없단다,

한국에 어머님은 건강히 잘 계시지? ]

[ 네..잘 계세요.,,.]

[ 그래..어머니께 잘 해드려라, 우리는 둘이지만

어머님은 혼자 계시니까 자주 찾아뵙도록 해 ]

[ 네.자주 가고 있어요, 걱정마세요. 친정엄마도 

그렇고 한국에 어르신들 모두 인삼 드시고

장수하시니까 두분도 100살까지 

저희들 만나셔야죠~ ]

[ 고맙다..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그저 장수하는게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란다 ]

 아버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단호함이 엿보여

그래도 오래오래 사시라는 말을 못했다.



깨달음이 가방에서 간식들을 꺼냈고

난, 그것들을 서랍장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그리고 마트에서 사온 아이스크림을 드렸더니

요양원에 들어와서 처음 먹어 본다며

너무 맛있게 드셨다.

우리 아버님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서

사시사철 냉장고에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가득 채워두시고 드셨는데 이곳에 와서는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조차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계셨다.

[ 아버님,,너무 참지 마세요..참으면 병 나요,

특히,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여기 주임에게

 얘기해도 되니까 뭐든지 말씀 하세요~]

[ 아니다..아이스크림은 맨날 먹었던 건데

이젠 안 먹어도 되는 것이고,,하고 싶은 거

다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는 것은

젊었을 때나 하는 거란다. 오늘은 이렇게

케이짱이 사와서 먹는 거지,, 안 먹으면 

전혀 생각도 나질 않으니까 괜찮단다 ]

옆에서 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빨아 드시는 어머님께 물었다.

[ 어머니, 지금 하고 싶은 일 있으세요? ]

[ 응,하고 싶은 거 없어.그냥 우리는 되도록이면

 아버지랑 한날한시에 조용히 눈을 감고 

하늘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자식들이 찾아와 주면 고맙고 기쁘지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어서,,..]

다시 분위기가 썰렁해졌을 때, 간호사가 들어와

저녁에 마실 물을 조심히 놓고 갔다. 

깨달음이 아버님께 집을 부동산에 내 놓은 게 

좋겠다는 대화를 했고, 어머님과 난

지금 시댁에 있는 물건들을 어떻게 처분하는게

좋은지에 관한 얘기를 했다.


[ 안방 장농에 넣어둔 그릇이며 옷가지는 

모두 처분하면 되고, 혹 케이짱이 맘에 드는 게

있으면 모두 가지고 가거라. 부엌 서랍장에

 있는 00자기로 만든 그릇은 좀 가치가 

있을 거니까 그것도 괜찮으면 가져가거라]

[ 네..]

그렇게 두분과의 시간을 보내고 저녁 막차를 

타기 위해 우린 다시 작별을 해야했다.

또 올게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

[ 그래,,케이짱, 잘 가거라~~]

방을 나오는데 어머님이 따라 나오시려고 했다.

[ 어머니, 나오지 마세요~~]

[ 아니,,오늘은 너희들 가는 걸 보고 싶어서..]

 힘든 발걸음으로 한발 한발 움직이는 어머님의

 배웅을 받자니 코끝이 찡해와서 얼른 어머님 

손을 잡고 못 나오시게 방으로 밀어드렸다.

[ 어머니,나오지 마세요.저희가 못 가겠어요]

[ 그래.그럼,여기서,,,잘 가거라..]

요양원을 나와 택시를 기다리며 호주머니에

넣어둔 지폐를 다시 꺼내보았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7년간,난 우리 시부모님께

 용돈을 드린 적이 없다. 아니, 드렸지만 

한번도 받으신 적이 없고 모두 돌려 주셨다.

그래서 금액을 낮춰 1만엔( 한화 약 10만원)을

간식 사드리라는 명목으로 드려봤지만

그것 역시도 다시 다 돌려 주셨다.

오늘 역시도 어머님은 완강히 거부하셨다.

어머님은 내가 시집 올 때부터

늘 입버릇처럼 하셨던 말씀이 있다.

자식들에게 돈을 받아야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들이 모아둔 것으로 쓰면 되고

없으면 없는대로 그냥 살겠다고,,

자식의 삶에 민폐가 되어서도, 특히 부모라는

이유로 경제적으로 불편한 존재가 되어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굳게 가지고 계셨다.

부모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한다는 철학엔 여전히 변함이 없으셨다.

일본분이여서 더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주변의 일본 시부모님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볼 때마다 끝까지 청렴하고 바르게 사시려는

두분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늙으면 본능적으로 자식들에게 의지하게 

된다고 하는데 두분은 항상 내게 

삶의 자세를 가르쳐주시는 것 같다.

언젠간 두분과 이별을 하겠지만 그때까지

 건강하시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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