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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부모와 자식. 일본인, 그리고 남편

by 일본의 케이 2019.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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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서둘러 집에 가고 있는데

먼저 가게에 가 있겠다며 깨달음에게서

느닷없이 카톡이 왔다.

출근 전에 비빔면 먹고 싶다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갑자기 이자카야로 나를 

부르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저쪽에 계신다며

바로 안내를 해준다.

건배를 하는데 왠지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 뭔 일 있어? ]

[ 아니, 더워서, 맥주 한잔 하려고 ]

[ 진짜, 뭔 일 있는 거 아니지? ]

[ 응 ] 


 맥주잔을 금세 비우고는 와인을 마실 거냐고

묻는다.

[ 응, 괜찮아, 근데 왜 그래? ]

[ 아니야, 아무것도 ]

[ 말 해, 얼굴에 적혔어. 뭔 일 있다고 ]

[ 아니야, 그냥 마시고 싶어서..]

그렇게 깨달음은 말 꺼내기를 주저했었고

괜한 헛기침만 반복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을 때, 답답할 때 나오는 저 헛기침은

끝내 숨기지 못했다.

[ 깨달음,,무슨 일인지 말해 봐 ] 

[ 아버지한테서 아까 전화가 왔어 ]

[ 뭐라고? ]

어머님이 엊그제부터 자신이 식사를 했는지

가물가물해서 아버님에게 몇 번 같은 말을

물어보고 오늘 아침에는 식사시간에 식당 내려가

밥을 잘 먹었는데 앞에 앉은 할머니가 먹고 남긴

반찬을 먹고 싶다면서 고집을 피우셨단다.

[ 우리 어머니가 먹탐을 내시는 분이 

아니고 완전 소식을 하시는데 너무 놀랐어.

정말 쇼크였어,,남이 남긴 것을 먹으려고

했다는 게...믿을 수가 없어.. ]

[ 우리 아빠도 치매 걸리셨을 때 전날 밤에

 저녁밥을 안 먹었다고 우기셨어..]


[ 어찌하면 좋을까 모르겠어..요즘엔..]

[ 난 당신이  모시고 싶다면 괜찮아, 

한 집에 사는 게 아니라 우리집하고 

가까운 요양원에 모시는 게 좋겠다고 

지난번에도 얘기 했잖아 ]

[ 그러긴 한데, 도쿄로 오시는 건 힘들어.

그리고 두 분이 안 오신다고 했고 ]

지난 2월, 깨달음 동창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장남인 친구분이 자신의 집 앞마당에 별채처럼

집을 지어 그곳에서 치매 걸린 어머님을 7년동안

돌봤었다. 데이서비스에 도움이 있었기에

7년간 돌 볼 수 있었다고 자식된 도리로

장남이라는 입장이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모시게 되더라고 했단다.


[ 그니까, 행여 내가 신경 쓰여서 그런다면 나는

괜찮다니깐, 전혀 문제 없어 ]

어머님의 치매 소식을 듣고나서부터 언젠가는

모셔야할 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해와서인지

그렇게 부담스럽거나 심란하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치피 모신다고 해도 집이 아닌 요양원에 

가셔야하기에 복잡할 것도 없다.

연로하신 노부모가 언제 돌아가실지 알수 없어

전전긍긍 애가 타는 것보다는 가까이 

모셔두고 자주 살피는 게 훨씬 정신적으로도 

안정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였기에

나는 깨달음이 모신다고 하면 

흔쾌히 받아들이겠다고 강조를 하는데

깨달음은 갈등을 많이 하고 있었다.

[ 나는 효자가 아닌 가 봐...장남인데..

도쿄로 모셔오는 것도 쉽게 마음이 안 내켜,,]


[ 행여 내가 갑자기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되거나

의식이 없거나 그러면 당신은 미련을 갖지 말고

나를 안락사 시켜줘 ]

[ 왜 갑자기 그런 얘길 해? ]

[ 그냥,,]

[ 깨달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마음이

시키는대로 해, 그러면 후회를 덜 하게 돼 ]

[ 후회는 안 할 거야 ]

깨달음은 자신도 몰랐던 이기적인 면에 

스스로가 놀랐단다부모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냉정해지는 자신이 

있다며 정이 있고 없고가 아닌 이성적으로 

서로가 피곤한 상황을 절대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확고 하단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아내인 내가 싫어한 것도 아닌데

부모님을 도쿄로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자기도 그런 결단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며 오늘은 좀 더 냉정히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한다.

진심이 무엇인지, 진정 부모를 위해,

자식으로 어떤 선택이 모두에게 행복한 건지..

[ 난,, 역시 일본인인가 봐..]

 [ 그게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부모님 생각

하는데 그런 게 무슨상관이야? ]

[ 근데 왜 나는 안쓰러우면서도 적극적으로

  내가 당연히 케어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안 드는지 잘 모르겠어,..]

와인을 깨끗이 비우고 가게를 나오면서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우린 침묵이 계속됐다.

 깨달음은 분명 가까이서 모시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고 있는

자신에게 많이 놀란 듯했다.

아무리 부모자식 관계가 냉철한 일본인이라

하지만 이렇게 갈등하는 자체가 

가슴이 아프다는 증거이다. 

난 깨달음이 조금만 더 이성이 아닌 가슴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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