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25일,우린 각자의 월급에서 2만5천엔씩,
한달에 5만엔(한화 약57만원)의
여행경비를 모은다.
어느정도 금액이 모아지길 기다리지는 않고
그냥 이렇게 모아두면 좀 더 편한게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취지에서 결혼하고
바로 여행비 명목으로 따로 챙겨두었다.
작년에는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모아져
친정엄마와 시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이 돈을 여행비로
사용하기 보다는 가끔 비지니스석으로
변경하거나 호텔을 좀 더 괜찮은 곳으로
선택하는데 지출했던 것 같다.
해년마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 맞춰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아무곳도 갈 수가 없다.
[ 깨달음,, 꽤 모아졌는데 ...? ]
[ 그냥,,뒀다가 내년에 쓰면 되겠지,, ]
갑자기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올 해
가려고 했던 피지(Republic of Fiji)를 못 가게
됐다며 아직도 가보지 못한 나라가 이렇게 많은데
언제 다 돌아볼 수 있을련지 까마득하다면서
더 늙기전에 보고, 먹고, 느끼고 싶단다.
[ 아프리카도 가야 되는데...
페루하고 이스라엘도 가야 되고,,
스페인의 가우디 건축물도 또 보고싶고..]
깨달음의 버릇인 혼자말이 시작됐다.
이럴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못 들은 척해야
그 혼잣말이 없어지는 걸 알기에 난 살며시
거실을 빠져나와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 무렵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스크는 잘 쓰고 다니는지, 집에서 뭘 하고
지내는지, 하루 세끼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여러가지로 걱정이 많으셨다.
그리고 깨서방 회사는 타격을 받지 않았는지
집 근처에 큰 병원이 있는 것까지 염려하셨다.
뭔가 필요하면 보내주겠다고 하시면서
한국에 올 생각은 없냐고 넌즈시
물으셨다. 한국은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있는데 일본은 아직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뉴스에서 그럴 때마다 불안하시단다.
통화를 하면서 깨달음에게 엄마와 통화중임을
알리고 대화하겠냐고 했더니 하겠단다.
[ 오머니, 깨서방입니다. 식사하셨어요? ]
[ 응 나는 먹었는디 어찌까,,깨서방이 코로나
때문에 꼼짝을 못하고 고생이 많것네.]
[ 괜찮아요 ]
[ 뭐 먹고 싶은 거 없는가? ]
[ 괜찮아요, 없어요 ]
[ 한국에 와서 좀 쉬었다 가믄 좋은디..어차피
회사도 안 나가고 집에만 있응께 여기와서
좀 있다가 가믄 좋겄다는 속없는 생각이 드네 ]
엄마가 한국에 와서 좀 쉬였으면 한다는
말에깨달음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한국에 가고 싶어도 지금 일본인은
한국에 갈 수없다며 내게 엄마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 드리라며전화기를 넘겼다.
엄마에게 지금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 국적인
깨달음이 예전처럼 무비자로 자유롭게
한국에 갈 수 없음을 말해드렸더니
그러냐고 오고 싶어도 못오는 거냐며
안쓰러워하셨다. 그리고 인삼이
면역력을높이는데 좋으니 좀 보내주신다고 하셔서
사양을 하고 코로나가 깔끔하게 끝나면
깨서방이랑 같이 한번 가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자기방에 들어가 있던
깨달음에게 갔는데
스텐드만 켜놓고
도면을 정리하고 있었다.
[ 안 어두워? 왜,,불을 안 켰어? ]
[ 집중하고 싶을 때는 스텐드가 좋아,
어머님이 뭐라셔?]
[ 조심하라고 그러시지. 당신 걱정
많이 하셨어. 맛있는 거 많이 해 먹이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고 하셨어 ]
아까 장모님과 통화를 하면서 자기가 한국에
못 간다는 걸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정말 가고 싶을 때 갈 수 없다는
현실이 갑자기 슬퍼졌다고 한다.
[ 깨달음,,오바 하지마,,코로나 끝나면
바로 갈 수 있잖아, 그래서 엄마한테
잠잠해지면 가겠다고 말씀 드렸어 ]
난 다음달 6월에 잠시 한국에 다녀와야한다.
아마도 깨달음은 그 때 나와 함께 가고 싶은데
일본이 6월에도 코로나를 막아내지 못할게
분명하고 그렇게되면 외국인인 자기가
한국에 가기 위해서는 특별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자기는 받을 자격이 안 된다고 했다.
[ 깨달음,,비자 조건도 알아봤어? ]
[ 응, 당신이 6월달에 갈 때 나도 가고 싶어서]
[ .......................... ]
나랑 같이 가기 위해 비자조건을 알아봤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서울에 가면 종로 뚝배기 된장찌개도 먹고,
광장시장에 빈대떡, 서촌에서는 만두,
일미집에 간장게장도 먹고 싶고
먹고 싶은게 천지인데 언제 가게 될지
전혀 계획을 세울 수 없어
짜증난다는 깨달음..
[ 깨달음,6월에는 무리일지 모르지만 여름쯤이면
코로나를 잡지 않을까?]
[ 당신도 봤잖아, 어제 아베총리 기자회견,
지금이 벌써 5월인데 이제서야 PCR검사센터를
설치한다고 하니 한숨만 나와,,
아직도 멀었다는 소리야, 즉, 나는
6월에 못 갈 확률만 더 높아진거야 ]
약간 흥분기미를 보이는 깨달음에게
혹 이번에 함께 못 가더라도 사태가 좋아지면
바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달랬다.
깨달음은 긴급사태가 5월6일로 끝나면 조금씩
여행도 다니고 6월에 한국에 갈 생각에
꾹 참았는데 또 한달가량 연장한다고 하니까
참았던 스트레스가 폭발할 것 같단다.
5월말까지 우린 또 지금처럼
외출을 삼가하고 스테이홈을 지켜야한다.
깨달음과 예전처럼 자유롭게
함께한국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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