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 잘 지내지? ]
아침 일찍부터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년 크리스마스때 통화를 하고 4개월만이다.
[ 언니, 한국 안 가? ]
[ 안 가는 게 아니라,,못 가지..]
[ 그렇겠구나,,근데 오늘 한국 뉴스에 40대
일본거주자가 한국에 귀국했는데 감염자였대.
일본에 있을 때부터 열나고 그랬대..
그래서 귀국했겠지? 한국에서 치료받으려고? ]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다는 게 느껴져서
먼저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 그건 그렇고 넌 회사 안 나가지? ]
[ 응, 난 재택근무 하는데 우리 회사 반 이상은
아직도 회사 출근해..걔네들은
집에서 재택근무할 준비가 안 됐거든..]
[ 그래, 아무튼 조심해, 우린 특히 조심해야돼 ]
[ 알아,근데 언니네 아베노 마스크 왔어? ]
[ 아니, 아직 ]
[ 그 마스크 어린이용 아니야?]
[ 적긴 적지,,우린 안 쓸거야 ]
[ 나도 안 쓸거야, 근데 얘네들 정말 웃기다.
자기네들끼리는 아베가 멍청하네, 마스크 필요없네,
너무 대응이 늦여서 이렇게 됐네 하면서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막상 사람들이 코로나대책에
대해 말이 나오면 입을 꼭 다물고
아무말도 안 한다니깐, 못하는 건지..
참 웃겨 죽겠어 ]
미선이는 근 4개월간 하지 못했던 얘길 오늘 다
해버릴기세로 하고 싶은 말들을
계속해서 쏟아냈다.
미선이는 내가 석사과정일때, 학부2년생이였다.
내 논문 앙케이트를 도와줬던 학생이였는데
졸업을 하고 지금은 디자인회사에 다니고 있다.
나보다 훨씬 어려서 나한테 이모라가 부르겠다고
농담을 했던 그녀도 이젠 서른 중반을 향하고 있고
일본생활도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 미선아, 그나저나 너 마스크랑
소독약 같은 건 충분히 있어? ]
[ 있어. 괜찮아, 근데 언니, 왜 얘들은
감염경로를 말 안 할까? 말을 안하는 게
더 민폐인걸 모르나 봐, 우리 거래처 직원이
코로나 걸렸는데 미팅도 하고 그랬어.
그랬는데 그 미팅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민폐라고 말을 안했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자기가 자주가는 레스토랑도
자기 때문에 손님 안 올지 모르니까
미안해서 말을 안 했대. 어이없지? ]
[ 그니까 지금 감염자가 늘어나는 거잖아]
[ 얘네들은 메뉴얼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머리를 써야 되는데 임기응변이 전혀 안 돼.
코로나 대응하는 걸 보면 답답해 죽겠어.
하는 짓이..]
그리고 그녀는 사회인으로 일본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 내가 해줬던 얘기들을 섞어가며
울분을 터트리기도 하고 새롭게 깨달은 것들도
마음껏 얘기했다. 한국에 돌아가는 게 좋은지,
좀 더 일본에서 경험도 쌓고 인맥을
넓히는 게 중요한지 자신의 미래에 관한
걱정도 많았다.
[ 아, 언니,잠깐,우리 팀장님한테 메일왔다.
내가 조금 있다 다시 할게 ]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점심 시간을 훌쩍
넘어서야 카톡이 왔다.
여유분의 마스크를 건네주고 싶은데
시간 내는 게 쉽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녀가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는게 한편으로 안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깨달음은 출근을 했다.
깨달음이 회사에 간 이유는
직원이 미팅을 위해 출근을 하기 때문이고
회사를 비워둔 동안 우편물과 거래처에서
왔을 팩스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가 미팅을 온라인으로 하는 게 좋지 않냐고 했을때
한달전, 처음으로 거래처에서 화상미팅을 했는데
대화내용이 선명히 들리지 않고 자꾸 끊겨서
원활한 미팅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자신들처럼 아날로그 연령층은 온라인이
쉽지 않다고 했다.
긴급사태를 실시한지 2주간, 일본내
재택근무를 실행하고 있는 곳은
종업원 300명 이상의 기업이 57.1%,
50~ 299명이하는 28.2%,
50명미만의 중소기업은
14.4%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안 되는 이유로는
회사내 온라인 체계가 잡혀있지않고
각 직원들에게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사이버 환경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퇴근해서 온 깨달음이 내 노트북에
월급봉투와 마스크 한박스를 내려놓았다.
[ 깨달음..월급은 25일 아니야?
그리고 이 마스크는? ]
[ 거래처에서 여러가지 죄송하다며
직원들에게도 한박스씩 소포로 보내왔어 ]
[ 무슨 일 있었어? ]
계약 얘기가 오고 갔었는데 그것도 사라지고
소개했던 거래처도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닫게 되서 추진하던 일들이 멈추게
되니까 이래저래 미안해서 보내 온 것이고
월급은 오늘 직원들에게 미리
주면서 자신 것도 챙긴거라 했다.
[ 혹시, 직원들 월급삭감되고 그런 건 아니지?]
[ 응, 아직까진 괜찮아,,]
난 오전에 후배와 나눈 얘기를 하며
앞으로 경영자와 직원들이 이 코로나를
어떻게 이겨내는 게 현명한지 의견을 나눴다.
[ 깨달음,,고마워,,한달간 수고했어 ]
[ 당신도 한달간 수고했어~]
[ 월급날이면 내가 당신에게 맛있는 거
사주는 날인데,,,외식을 못하네..]
[ 괜찮아,,다음에 한꺼번에 하면 되지]
늘 월급날이면 감사한 마음을 서로에게
전하는데 오늘 깨달음이 내민 월급봉투는
좀 더 다른 무게가 실려 있는듯해
마음까지 묵직해져왔다.
드디어 일본에서도 한국의 드라이브스루방식을
채택하겠다고 했다. 모두가 안심하며
지낼 수 있는 날이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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