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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남편의 짐을 조금 덜어주다

by 일본의 케이 2020. 10. 9.

아침을 먹고 난후 출근을 하려던 깨달음이

무표정으로 프린트물을 내밀었다.

2020년,굿디자인 어워드에 깨달음 회사에서

완공한 아파트가 디자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디자인컨셉과 포인트, 그리고 설계 디자이너의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 당신 사진은 없네? ]

[ 나는 안 내지...직원들이 나와야지..]

[ 그래도 축하해~~]

[ 축하할 일 아니야, 100선에 들어야 하는데

100선에 못 들어서 별로야 ]

[ 그래도 상 받았으니까 좋은거지 ]

[ 하나도 안 기뻐 ]

정말 기쁘지 않다고 했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자기 생각대로 디자인변경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고 직원(디자이너) 의견을 존중해 

주다보니 수정하고 싶은 곳이 있었지만 참았단다.

조금만 더 수정을 했으면 100선에 들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많단다.  


깨달음이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나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냥 당신 작품이 아니라

생각해라, 그래도 회사 실적으로 남았으니

좋은 게 아니겠냐고 했는데도 미련이 남는단다.

코로나로 인해 긴급사태선언이 됐을 무렵,

 깨달음 회사의 계약이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었다.

급기야 지난달엔 한꺼번에 계약 취소가 잇달아

 생기면서 깨달음은 요즘 의기소침해 있었다.

직원들은 반 이상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회사를 나가도 훵하고 할 일이 별로 없다며

 최근들어서는 4시반이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와중에 받은 디자인상인데도 깨달음은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하나도 기쁘지 않다는 말이 자꾸 신경쓰여

깨달음에게 저녁에 술을 한 잔 사겠다고 하고

 약속장소에서 기다렸다.

[ 당신은 축하할 일 아니라고 했지만

난 축하해주고 싶어. 그래서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거야 ]

[ 그럼 나 오늘, 술 많이 마실거야 ]

[ 응, 마셔~맘껏 ]


주변 사무실에서는 축하한다고 부러워했지만

자긴 지금 생각해도 많이 아쉽단다. 

마지막 도면체크를 할 때 마음에 안 드는 디자인이

많아서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직원 사기도 있고 그렇게 성장하며 배워 갈거라

생각해서 그냥 그대로 제출하게 했단다.

[ 그래도 상 받았잖아, 그리고 또 그 직원은

자신감도 생기서 더 열심히 하겠지 ]

[ 그래서,,그냥 나도 축하해줬어 ]

포상금도 줄 생각이야 ] 

[ 얼마 줄건데? ]

[ 월급 반만큼은 줘야지 ]


 어느샌가 아늑한 분위기로 변해버린 실내를

둘러보며 우린 잠시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운하를 유유히 지나는 유람선엔 커플들이

추운지 서로 부등켜안고 있었다.

[ 깨달음,,,회사 많이 힘들어? ]

[ 꼭 그런 건 아닌데,,자꾸 계약이 취소되니까

힘이 빠져서 그래..]

[ 혹시..회사가 많이 힘들어지면 

바로 세우려고 애쓰지마,, ]

[ 무슨 말이야? 애 안 쓰면 어떡해? ]

[ 그냥, 쉬라고,,. 힘들게 고민하지말고 ]

[ 그럼 돈을 어디서 벌어? 노후는 어떡해? ]

[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책임지든지..]

내가 책임진다는 말에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다그치듯 재차 물었다.

정말 자길 책임 질 거냐고, 진짜 회사 접으면

자긴 놀아도 되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신을 먹여살릴 것인지 말해달란다.


예전부터 지나가듯 했던 말이긴 한데

이번에는 좀 더 확신을 줘야할 것 같아서 

내 나름 계획세웠던 노후생활과 경제상태도 좀

 알려주고 내가 책임질테니까 그냥 

힘들면 쉬라고 다시한번 얘기했다.

[ 진짜지? 약속하지? ]

[ 응 ]

[ 그래도 좀 미안하니까 귀국 할 때까지는 

내가 돈을 벌고, 한국에서 살 게 되면

당신이 버는 걸로 해도 되겠다 ]

[ 아니, 한국에 안 가더라도 내가 책임질게,

아무튼, 혹시나 회사경영이 힘들어지면 몸고생,

 마음고생하면서 회사를 다시 일으키려 

하지 말라는 말이야, 그냥 야마모토 군에게 

회사를 넘겨 주고 놀러 다녀~~ ]

내가 너무 포인트만 꼭집어 얘기해서인지 

어리둥절하다며 자기 회사가 안 망할 거라 

알고 있으니까 자기한테 그런 소릴 자신 있게 

하는 게 아니냐면서 의심스럽단다.


책임질 자신이 있어서 하는 말이라 강조했지만

여전히 의심에 눈초리로 날 바라봤고

  우린 그렇게 옥신각신 얘기하다 맞은편에 있는

바 라운지로 자리를 옮겼다.

[ 당신이 나를 먹여살리겠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으면서도 왠지 이상해,술을 한 잔 더 해야겠어 ]

[ 많이 마셔 ]

깨달음은 위스키를, 난 모히토를 시켜

차가워진 밤바람을 맞으며 한숨에 들어켰다.  


 깨달음에게 난 다시 정리해서 말했다.

 아까 말 한 것처럼 행여 회사가 기울어지면 

 일 거리가 없다고 속 끓이고, 마음 쓰고 그러지 

않았으면 해서 그러는 거라고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야할 이유도 없고,

연금도 나올 것이고,,뭐 이래저리 털어보면

우리 둘이 죽을 때까지 그럭저럭 살 수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안단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그런데 회사일이 잘 안 풀리면 제일 먼저 직원들이

 걱정되고 그러다보면 조급함이 생기기도 한다면서

회사가 망해도, 돈 안 벌어도 괜찮다고

 말해줘서 고맙단다. 그리고 너무 든든해서

 정말 기분이 좋아졌고 왠지 짊어진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는 깨달음.... 

[ 한국에서 살게 되면 내가 다 한다고 했잖아,

당신이 여기서는 열심히 해줬으니까 ]

[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마음이 편하네.

그럼,, 나 매달 용돈도 줄 거야? ]

[ 응, 줘야지, 얼마 필요한데 ]

[ 음,, 100만원 줄 수 있어? ]

[ 100만원? 좀 많지 않아? ]

용돈은 그 때 가서 다시 협상?하기로 하고

 우리 바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뒷모습엔 여전히 쓸쓸함이 묻어 있지만 훨씬

 밝아진 표정인 깨달음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오너로서 가장으로서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이 꽤나 무거웠을 것이다.

그 짐을 조금씩 덜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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